[지역의 재발견]기록의 민족, 전쟁통에도 기록물은 사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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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지(전북동부문화재돌봄센터 모니터링 팀장)



타들어갈 듯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입추와 처서를 지나 이젠 아침저녁이 제법 쌀쌀한 것이 가을이 왔나보다. 낙엽수들은 벌써 잎이 떨어지고 노란빛을 띄기 시작한다. 문화재를 보러다니면서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계절의 변화를 시시각각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가을은 굉장히 강렬하다. 전북지역에도 단풍 명소들이 참 많은데 나는 그중에서도 곧 붉게 물들 무주 적상산을 떠올린다. 이곳은 단풍 말고도 특별한 점이 하나 있는데, 호국사찰로 유명한 안국사와 실록을 보관하던 적상산사고지유구가 위치한다는 점이다. 전라북도에는 사고가 한 곳 더있다. 전주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경기전 권역 한켠에 누각형태의 건물이 하나 있는데 이 역시 전주사고를 복원한 건물로 생각보다 그 역사와 의미가 깊다.

조선왕조 오백년, 우리가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덕은 기록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가히 기록의 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재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기록물만 해도 18건이다. 전세계에서 3위, 아시아권에서는 1위다. 그러나 개수보다 질이 더 압권이다. 대표적으로 조선왕조의 역사를 시간순으로 왕 별로 나누어 편찬한 조선왕조실록이 있다. 기록자인 사관은 왕을 따라다니며 왕과 주변 관료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기록한 사초를 만들었다. 사초는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왕 본인도, 그 후대 왕 조차도 결코 볼 수도 수정 할 수도 없도록 하였고 이 원칙이 고수되어 기록 왜곡이나 고의적 탈락 없이 보존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왕조 시기의 원본이 남은 사례이다.

무엇보다 대단한건 컴퓨터도 없던 그 시절, 요즘말로 백업을 참 철저하게도 했다. 그 덕에 이 좁은 땅덩이에서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전쟁, 변란 중에도 살아남은 것이다. 고려실록이 전쟁으로 소실되는 것을 봐서인지, 조선왕조실록은 4~5부를 만들었다. 한부는 한양의 춘추관에 두고, 나머지는 지방에 사고를 설치하여 각각 보관하였는데 처음에 사고는 충주, 전주, 성주에 설치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본을 제외하고 모두 불타버렸다. 전주사고본이 살아남은 것도 기적적이다. 당시 경기전 참봉 오희길과 유신, 유생 안의와 손홍록 등은 13대실록 8백여권이 넘는 책들을 전부 정읍 내장산으로 옮겼고 이듬해 관청에 넘겨줄 때까지 1년여 동안 간신히 지켜냈다. 이후 광해군 때 마니산, 오대산, 태백산, 묘향산에 사고를 마련하고 재편찬하여 총 5부로 만들었지만,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춘추관사고본은 다시한번 불타버렸고 이후, 묘향산 사고본은 적상산으로, 마니산 사고본은 정족산으로 이전된다.

그럼 현재는 전부 남아 있는가? 아니다. 하지만 일부는 살아남았기에 현재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이것도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오대산본은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간토대지진때 소실되었고 정족산, 태백산본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이곳저곳을 전전하고 소실될 위험을 넘겨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과 국가기록원에서 소장하고 있다. 적상산본은 6.25때 평양으로 이전되었다. 아 실로 다사다난했던 수난의 역사이다. 많은이들의 죽음을 불사한 노력이 있었기에 현재 우리 역사가 보존되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현재 무주 적상산 사고지유구는 전라북도 기념물, 전주사고는 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비록 실록이 보관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원래의 건물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지만 깊은 역사가 있었던 의미있는 곳이기 때문에 문화재로 지정하여 이 장소를 기념하고 있으며, 이러한 뜻을 이어가고자 우리 센터에서는 사고지를 대상으로 매년 정기적인 상태 모니터링과 일상관리, 경미한 수리를 진행하며 문화재를 보존하고 주변 관람환경을 개선시키고 있다.

한편, 전북동부문화재돌봄센터는 문화재청의 복권기금과 전라북도청의 지원을 받아 문화재돌봄사업을 진행하며, 올해 도내 동부권역 8개 지역의 380개소 문화재를 관리한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국가지정문화재 및 도지정문화재, 비지정문화재를 관리하며 목조, 석조, 근현대건축, 천연기념물 등 문화재의 재질별 특성에 맞게 정기적인 상태 모니터링과 전문 모니터링을 진행하여 문화재 보존관리에 힘쓰고 있다. 또한 작은 훼손부의 경우 큰 범위로 확장되기 전 경미하게 수리하여 예방보존하고 있으며, 문화재 분야의 전공자와 문화재수리기능자를 중심으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관리를 진행한다. 나아가 매년 초 기초지자체와의 문화재 현황공유, 문화재 소유자관리자교육, 소방안전훈련, 일반인 대상 문화재교육 등 문화재안팎으로 보존환경 개선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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