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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완전 잃어버린 세대다”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6월 12일 14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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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스타가 사라진 다음에는(지은이 김본, 펴낸 곳 문학동네)'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쓸려나가고 지워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기말”(1999년)도 “새천년”(2000년)도 아닌 ‘1996년’이라는, 뭐라 규정하기 어려운 연도에 태어난 자신을 “잃어버린 세대”라고 정의하는 '라디오 스타가 사라진 다음에는'의 주인공은 김본 소설을 대표하는 화자로 보인다. 화자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급변하던 시기, 불안정한 경제 환경과 극심한 입시 경쟁을 지나온 소위 ‘90년생’이다.

계획 없이 태어나 누구의 주목도 받아본 적 없는 화자가 동세대의 풍경뿐 아니라 이전 세대의 가족, 친구, 이웃 들의 모습을 그린다는 점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그러한 화자가 묘사하는 소설 속 잡음 섞인 라디오, 유행이 지난 유행가, 녹음기, 중고 만화책 등 복고적인 소재는 독자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한편, 현재의 위치에서 과거를 들여다봄으로써 미래를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를 비춰주는 반사경의 역할도 하는 듯하다. '라디오 스타가 사라진 다음에는'은 과거의 흩어진 시간 위에 새로운 목소리를 입히는 ‘뉴-제너레이션’ 소설이라 칭할 만한, 신예 작가 김본의 야심 있는 첫 소설집이다.

소설집의 문을 여는 '슬픔은 자라지 않는다'는 대학생 선주가 동기와 함께 삼 대 삼 미팅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미팅에 함께하기로 약속한 소위 ‘퀸카’ 대신 자신을 ‘폭탄’이라 칭하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의외의 재미를 안긴다. 이십대 시절 교분을 나누었으나 십수 년의 시간이 지나고 점차 관계가 시들해진 선주와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나이든다는 것과 어른이 된다는 것의 과정을 찬찬히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한편, 선주가 오래도록 잊고 있던 ‘폭탄’이라는 존재의 흔적을 맞닥뜨리는 중반부를 통해 시간의 흐름에도 ‘자라지 않는’ 것은 존재한다는 사실, 과거의 슬픔은 극복하기보다는 그저 “보존 서고”(29쪽)처럼 간직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바로 성장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라디오 스타가 사라진 다음에는'은 방송국 구성작가로 일하는 화자 ‘나’가 어릴 적에는 어렴풋이만 알고 있었던 삼촌과 관련된 비극적인 가족사를 들려주는 작품이다. 한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내 귀에 도청장치’ 난입 사건을 일으킨 사람을 둘째 삼촌으로 두었다는 허구의 상상력에 그 시절 횡행한 독재정권의 국가 폭력 문제를 결합해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개인의 아픔을 생생하게 재구성해낸 감동적인 소설이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전승민은 김본의 소설에는 “‘이야기’나 ‘기록’과 관련된 직업을 지닌 이들이 주요하게 등장”(399쪽)한다고 말한다. '슬픔은 자라지 않는다'의 선주가 도서관 서고를 관리하는 사서, '라디오 스타가 사라진 다음에는'의 주인공 ‘나’가 방송국 구성작가라면, '차라리 잠든 밤'의 ‘나’는 방송국 PD이다.

‘나’가 전속 계약 종료를 앞둔 동료 성우 재하의 더빙 오디션을 돕는 이야기인 '차라리 잠든 밤'은 두 사람이 각자 지닌 남모를 상처를 서로를 통해 치유해나가는 모습을 아름답게 그린다. 한때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텔레비전 판인 만화 '슬램덩크'가 재하의 더빙 오디션의 대상 작품으로 등장하는데, 여러 판본이 존재하는 만화 속 작중 인물은 성우에 따라 목소리가 달라서 시청자는 늘 “혼합되고 편집된 '슬램덩크'만을 감상할 수밖에 없”(133쪽)다는 설정은 흥미를 유발한다. 이는 ‘나’가 재하와 함께하는 더빙 연습, 그 ‘목소리들의 겹침’과도 연결되면서 ‘나’가 과거 트라우마로 남은 엄마와의 어떤 사건을 수용할 수 있는 기억으로 변화시켜나가는 과정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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