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펜 끝에 맺힌 행복의 흔적

정인수, 전북특별자치도 서울장학숙서 초대전

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6월 18일 14시17분

정인수 화가가 다음달 31일까지 전북특별자치도 서울장학숙서 초대전을 갖는다.

가끔은 그림이 말보다 더 솔직할 때가 있다. 작가가 잡지 못한 순간들, 스쳐 지나가는 행복의 조각들이 캔버스 위에서 살아난다.

'행복한 시간의 기억'을 주제로 한 이 전시는 그런 날들의 기록이다. 흘려버릴 뻔한 아름다움을, 손끝으로 건져 올리는 일. 종이 위에 번지는 물감이 마치 기억 속의 빛깔을 훔쳐내는 것만 같다. 그렇게 천천히 하나씩 주워 담듯 그린, 소소한 일기같은 시간의 궤적이다.

아침의 첫 빛이 스튜디오 벽을 타고 올라갈 때, 나는 이미 펜을 들고 있다.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는 검정 먹의 냄새, 종이 위에 파인 미세한 요철.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새벽의 의식과도 같다.

창문 틈으로 들려오는 소리들 - 바람불어 나뭇가지 흔들고, 이름모를 새들의 청아한 노래소리, 모란, 작약, 붓꽃, 으아리 등의 꽃들과 취꽃, 당근꽃들의 온갖 살아있는 식물들이 건강과 함께 정신을 일깨우는. 그렇듯 시골 한적한 작업실의 시간은 밀도 있는 몰입을 하기에 적절하다.

작가는 이 소리들을 펜의 움직임으로 번역한다. 물까치 한 마리가 전봇대에 앉아 날개를 퍼덕이는 순간, 펜 끝이 살짝 멈추었다가 빠르게 종이를 스친다. 골목길을 걷다가 본, 뉘 집의 넝쿨 장미에 햇살이 시를 쓰고, 그렇게 흐르는 오후 3시의 풍경을 그릴 때면, 펜의 선이 특별해진다.

크로스 해칭으로 쌓아가는 음영 사이로 그날의 따뜻함이 스민다. 가끔은 실수로 지나친 선도 그대로 둔다. 그게 오히려 진짜 같은 기억이 되니까. 그림은 마치 시간을 포획하는 그물과 같다. 펜의 선은 가늘지만, 그 위에 실린 감각은 두껍다.

세밀한 필치와 아름다운 구도로 살려낸 풍광이 눈에 편안하게 들어온다. 곡선과 직선, 선의 굵기 등으로 자연과 감정을 담아내는 펜화는 먹의 농담과 여백으로 표현해온 우리네 전통 수묵화와 맥이 닿아 있다.

이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모두 이런 사소한 포획의 연속이다. 어떤 날은 한 페이지를 가득 메운 필사적인 스케치가, 어떤 날은 여백 가운데 외로이 떠 있는 섬이 된다. 관객들이 내 그림 앞에서 잠시 멈출 때, 그들 자신의 행복한 기억이 떠오르기를 바란다.

작가는 "펜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빛이었지만, 종이 위에 남은 선들 사이로 그날의 따스함이 배어 나온다면 좋겠다. 또한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내 그림이 스민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작가는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 개인전 16회, 기획초대전 및 단체전 250여회를 가졌다. 한국미술협회 전주지부장을 역임, 현재 한국미술협회, 전주예총 감사, 전주시립미술관 건립 추진위원, 전주 화욜어반스케치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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