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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가산 김수곤 거사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8월 03일 14시23분

지난번 다룬 ‘서예가 몽연 김진민’을 읽은 독자의 반응이 뜨거웠다. 몰랐던 인물을 알게 되었다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그중 국사편찬위원이자, 평생 편액 연구로 우리 서예사를 풍요롭게 하신 이용엽 선생님의 격려 전화도 있었다. 병환 중임에도 몽연에 대한 글이 너무 반가웠다며 기득권에 빠진 우리 서예계를 질타하셨다.

몽연의 부친은 김수곤이다. 1873년 정읍 태인에서 태어난 그는 오천석꾼 부자였다. 있는 집 자제들이 그렇듯 젊은 시절 누정을 짓고, 시를 읊는 등 풍류를 즐겼다. 그의 아버지는 독실한 불자였다. 그 영향으로 명산대찰 고승들을 찾아다니며 심원(心源)을 탐구하는 등 불가와도 인연을 맺는다.

내장사 주지 학명(學鳴)을 만나 귀의했다. 벽련선원(璧蓮禪院)에서 3년을 안거하며 참구(參究)한 후 계속해서 수행 정진했다. 깊은 선의 도리에 심취한 그는 백양사 청류암에서 좌선하던 중 치사리(齒舍利)를 얻는다. 이 사리는 현재 내장사(內藏寺) 부도전에 안치돼 있다.

김수곤이라는 이름 뒤에 거사(居士)라는 명칭이 붙었다. 승려는 아니지만, 불도를 닦는 사람을 이르는 호칭이다. 1918년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농사를 거의 짓지 못해 아사자가 속출하자, 거사는 곡간을 열어 곡식을 나눴다. 또 명절이면 밤새 시루에 떡을 쪄서 이웃들이 가져가도록 문 앞에 내놓았다고 한다.

1920년, 거사는 옹동면 칠전리 주민들 왕래를 위해 마을 앞 냇가에 돌다리를 놓아주었다. 또 칠보산으로 가는 험한 길을 평탄하게 정비했다. 국가가 감당해야 할 사회기반시설을 사재(私財)로 해결한 것이다. 무엇보다 거사는 불사에 공을 들였다. 불가에서 ‘그분은 불사를 위해 태어나신 분’이라고 할 정도였다.

금강산 유점사에 53불이 모셔져 있는데 그중 13위가 도난으로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은 거사는 불상을 다시 제작해 보충했다. 1935년 금산사 미륵전 본존불이 불에 타 넘어졌다. 복원 불사를 위해 1만6천 원을 부담했다. 또 대원군에 의해 훼철된 법주사 미륵대불 복원에 3만 원을 시주했다.

당시 소 한 마리 값이 7원이었다. 현재 700만 원이니 계산하면 1원은 10만 원 정도이다. 그러니까 금산사에 16억 원, 법주사에 30억 원을 기부한 셈이다. 그 외에도 논산 은진미륵 보수, 소실된 칠보 석탄사 중건, 정읍 상동에 미륵사 건립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거사는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다. 자신의 집에 서당을 차려 마을 아이들을 가르쳤고, 서예에 재능이 있는 딸을 위해 당대 최고의 명필을 서울에서 초청해 지도했다. 또 지역 인재 육성을 위해 토지 3만 6천 평과 거금을 기부해 태인중‧고등학교를 세웠다.

태인 항가산을 거사는 좋아했다. 그래서 호도 가산(迦山)이다. 아들이 없어 양자를 들였다. 그 아들은 평생 가난에 허덕여야 했다. 양부가 재산을 모두 기부해 끼니를 걱정하며 살았다. 그러다 견디지 못하고 대처로 떠난 후 소식을 모른다. 사회에 공헌한 분들의 후손이 겪는 곤궁한 삶을 보면 늘 안타깝다. 좀 서늘해지면 항가산 자락 가산을 찾아봬야겠다.

/김판용(시인‧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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