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오늘과 내일]소피아 여성의원과 소피아 성당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10월 21일 14시22분

의사들을 흔히 창살 없는 감옥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대학교수나 봉직의 같은 경우에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저처럼 개인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들은 정말 그러합니다. 직업에 따라서 다 다르겠지만 의사는 자기가 근무하고 있는 장소를 벗어나면 모든 경제 활동이 중지되는 대표적인 직업입니다. 따라서 평일에 따로 시간을 내어서 해외에 관광을 간다는 것은 큰맘을 먹지 않고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따라서 저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연휴기간이 긴 이번 추석명절을 이용해서 그토록 가고 싶었던 튀르키에(구, 터키)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왜 이 나라를 오매불망 그렇게 가고 싶어 했냐면 유럽과 동양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으면서 튀르키에의 옛 수도였던 이스탄불에 있는 소피아 성당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도시의 중심부에 위엄 있게 서 있는 건축물이 바로 ‘아야 소피아’ 또는 흔히 ‘소피아 성당’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이 거대한 건축물은 서기 537년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1세 황제가 종교적 목적으로 세웠지만 문명과 권력, 신념과 정체성이 응어리 진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성당이었다가 모스크가 되고, 이제는 박물관이 된, 그 돌과 역사가 말하는 곳을 마주하는 순간, 전주에 있는 우리 병원, ‘소피아 여성의원’이 제 마음속에 클로즈 업 되었습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이 두 공간은, 하나는 여성의 사적인 치유를, 다른 하나는 인류 문명의 상처와 화해를 상징하며, ‘지혜’라는 단어가 지닌 깊고도 다양한 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전주에 있는 소피아 여성의원 이름에는 우리 지역의 정겨운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소피’는 이 땅의 방언으로 ‘소변’을 의미합니다. “소피 누러간다”, “소피 마렵다”는 말속에는 요실금이라는 문제를 겪는 이들의 낯설지 않은 일상과, 그것을 자연스럽게 호명하는 삶의 정겨움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여기에 ‘지혜’를 뜻하는 그리스어 ‘소피아’를 결합시킨 네이밍은 실로 기발하고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증상의 치료를 넘어, ‘소변’이라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쉽게 털어놓기 어려운 요실금 문제를 ‘지혜’롭게, 당당하고 편안하게 해결하겠다는 의지이자 약속입니다. ‘소피아’라는 이름은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는 ‘실천적 지혜’를 의미합니다. 요실금은 단순한 신체적 불편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말 못할 낙인과, 사회적 활동을 스스로 위축시키는 심리적 고립감을 동반하기 쉽습니다. ‘소피아’라는 이름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의학이라는 지식에 세심한 공감을 더해 치유의 길을 제시합니다. 이곳의 지혜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한 여성의 웃음을 되찾아주고, 그녀가 마음 놓고 외출할 수 있도록 하는, 일상의 자유를 회복시키는 데에서 빛납니다. 이것이 소피아 여성의원이 품고 있는 첫 번째 지혜, ‘소피’에서 생겨나 일상을 치유하는 따뜻한 손길입니다.

이스탄불에서 ‘아야 소피아’를 바라보는 순간, ‘소피아’의 또 다른 위대한 의미, 즉 ‘신성한 지혜’의 무게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1,500년이라는 세월을 지탱해온 이 거대한 돔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역사책이자, 문명의 충돌과 공존을 증언하는 기념비입니다. 비잔티움 제국의 황금기를 장식한 크리스트교 대성당으로 태어난 이곳은,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함락된 이후에는 이슬람 모스크로 그 운명이 급변했습니다. 제국의 흥망성쇠와 종교의 갈등, 권력의 이동이 그 돌과 벽화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습니다. 성당의 모자이크는 석고로 덧씌워졌고, 첨탑에는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이 올라갔습니다. 이는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정복한 물리적 증거이자, 인류사가 안고 있는 깊은 상처의 흔적입니다.

소피아 여성의원은 ‘소피’에서 생겨난 요실금이라는 일상의 고단함과 낙인을 ‘지혜’라는 의학과 공감의 빛으로 치유합니다. 그것은 개인의 내면과 신체를 어루만지는, 따뜻하고 세심한 지혜입니다. ‘아야 소피아’는 종교와 문명의 첨예한 대립을 ‘지혜’라는 시간의 품속에서 화해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그것은 인류의 집단적 영혼과 역사를 어루만지는, 거대하고 포용적인 두 번째 지혜입니다.

이번 추석연휴동안, 두 ‘소피아’를 가로지르는 여정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지혜는 서로 다른 것이 교차하는 모든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는 것을. 전주의 한 병원과 이스탄불의 한 성당은 ‘소피아’라는 이름으로, 치유와 화해가 결국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지혜의 열매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과 인류의 문명 모두가, 이러한 지혜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두재균(전주 소피아여성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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