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이 만난 사람>손으로 지켜온 '전통의 바람' 'K-컬처’ 의 주역 되다

선자장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문화유산상 대통령상을 수상한 방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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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 의 주역 방화선 전북특별자치도 무형문화유산 선자장(扇子匠·부채 만드는 기능을 보유한 장인)은 아버지 방춘근(전북무형문화유산 선자장 보유자)선생의 뒤를 이어 60여 년 동안 전라감영이 자리한 전주에서 활동하며 국내외에 알려왔다. 미국, 일본, 스페인, 프랑스 밀라노, 중국, 대만, 사우디 아라비아 등 10여 개국에서 해외 초대전을 가지면서 호평을 받고 있다.

그가 9일 선자장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문화유산상 대통령상(봉사활용부문)을 받았다.

전통 부채를 만들어 온 국내 유일의 여성 선자장으로, 전통기술의 전승 뿐만 아니라 전통양식을 재해석한 현대적 작품 제작 및 해외 전시 등 대중화·세계화에 기여한 공로 때문이었다. 편집자 주



방선자장이 낫으로 가늘고 긴 낭창낭창한 왕죽을 한웅큼 베어 왔다. 돌 하나 올리고, 별 하나 얹고, 바람 하나 얹고, 시 한 편 얹고, 그 위에 여름의 땀방울을 떨어 뜨려 소망의 돌탑 하나를 촘촘하게 쌓았다. 대나무의 파란 기상을 생각하며, 위안부 할머니의 가슴 뭉클한 사연을 심장 깊숙이 간직한 채 태극 하늬선을 만들었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참 알 수 없는 일이지 않나.

곡두선 앞면에 무궁화를, 뒷면에 태극기를 담았으며, 하얀사 고운 백선에는 백의민족의 혼을 고스란히 담았다. 그는 하늘이 우리 선조들이 눈물을 너무 흘러서 파란색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진중하게 작업에 임했다.

“더위도 달래고 광복절의 기쁨도 나누면서 그 날의 함성을 같이 공유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부채는 바람을 타야 하고, 광복은 자유를 타야 함이 마땅할 터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아픔없는 독립은 없지 않나.

“오늘,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인 모두에게 잘 될 것이란 희망 바람 '솔솔솔' 선물합니다. 우리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나는 곧 당신입니다”

"탁- 탁- 탁- 탁-"

목탁 두들기듯 나무를 내리치는 소리가 건물 가득 울려 퍼진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Korea Sori Arts Center)을 둘러보다 보면, 어디선가 손맛을 느낄 수 있는 소리에 이끌리고, 어느새 펼쳐진 오색빛깔의 부채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는 평생 부채를 만들어 온 장인이 있다.

전당 국제회의장 1층 작업장, 돗자리 위에 앉은 제자들과 함께 방선자장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굵은 대나무를 돌판 위에 세우고 칼로 일정하게 갈라 부챗살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2년 이상 자란 왕대나무를 겨울에 베어낸 뒤 기계가 아니라 손으로 1mm 두께로 고르게 자른다.

“가느다란 부챗살이 손잡이 중심부터 퍼져나가는 모습을 본떠 둥글다는 순우리말을 붙여 방구부채라 불렀지요. 아침 해가 천지 만물을 일깨우는 형상을 지녔다 표현하기도 하고요. 부챗살에 비단, 종이를 붙여 만든 이 단선(團扇)은 위로 퍼져나간 부챗살이 자루(손잡이)로 모이기 때문에 살의 윗부분은 얇고 자루 박는 부분은 튼튼해야 합니다. 보세요. 부챗살의 위아래 굵기가 조금씩 다르죠?”

그는 부채 하나하나에 자신의 철학과 전통을 담아 바람이 지나는 길을 아름답게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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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코리아 나라장터 엑스포'에도 초대,

태극선을 비롯, 드림선, 파초선 등 100여 점을 전시했다. 일본방문단 부채체험은 물론 2024 전주세계무형유산 투어리즘 포럼' 세계외국대사관 직원 대상 교육 프로그램 '태극선 만들기' 행사를 가졌다.

2024년 창덕궁에서 열린 제10회 궁중문화축전에 부채를 소개,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호평을 받았으며, 전시 작품이 국가유산청 유물로 등록됐다.

방선자장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도 많다. 그의 공방을 방문해 부채를 구입한 한 외국인 관광객이 다시 찾아와 "이 부채를 손에서 놓을 수 없다"며 같은 부채를 여러 개 더 사 갔다고 한다. 이유를 묻자 그는 "이 부채를 펼치면 손끝에서 기분 좋은 바람이 흐르는 것만이 아니라, 마치 전통의 온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한 유명 화가가 그의 부채에 직접 그림을 그려 특별한 작품을 만들었고, 이는 전시회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몇 해 전 유럽 초대전에 공예 작가들과 참가한 방선자장은 스페인의 한 식당에서 다 떨어진 태극선을 보물처럼 소장하고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외국 사람들은 우리 부채를 보면 정말 아름답다고 감탄해요. 유럽 초대전 때였는데, 같이 전시하는 다른 작가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세일을 했어요. 저는 전통문화가 헐값에 팔려 가는 게 내키지 않아 끝까지 제값을 받았죠. 결국 한 점도 못 팔고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가치를 지켰기에 후회는 없어요"

외국인들은 다른 작품이 세일을 하니 당연히 부채도 세일할 것이라 생각해 느긋하게 기다렸다. 세일 없이 전시가 끝나자 다급한 마음에 현지 문화원과 주최 측으로 사고 싶다는 문의가 이어졌다. 수소문 끝에 한국에 돌아온 방선자장과 연락이 닿은 이들은 부채를 모두 제값에 구입해갔다.

방선자장은 전주세계소리축제, 전주 풍남제, 무주 반딧불축제 등에 부채 관련 행사를 갖는 가운데 100여 회의 국내 전시와 국외 전시, 다양한 부채를 선보이고 있다. 2002년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 상설체험장을 만들어 전주세계소리축제를 통해 국내,외에 부채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부채살에 비단이나 종이를 붙여 만든 둥근 모양의 그가 만든, 방구 부채는 접고 펴서 쓸 수 있는 합죽선과는 또 다른 전통미를 보여 준다. 선면은 둥근 것을 기본으로 하지만 주로 식물의 잎과 꽃잎의 모양을 응용하고 있으며, 장수와 구복을 바탕으로 한 십장생과 우주의 원리를 담고 있는 태극문양 등이 미적 가치를 더한다.

부채 자루의 조각 솜씨도 부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 꽃봉오리나 줄기 모양을 따오거나 넝쿨이 올라간 복잡한 모양새를 맵시 있게 조각해 선면의 단순함을 보완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서민들의 생활속에서 그들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방구부채가 일으키는 시원하고 선한 바람이 선조들의 넉넉한 웃음을 떠올리게 한다.

유물로 전하는 곱장원선, 까치태극단선, 방아실부채(듸림부채), 화엽선, 태극선, 세미선(통영의 부채)을 만들 줄 알며, 복원도 할 줄 안다. 또, 최근엔 곱장단선(옻칠), 곡두연엽선(채화칠, 옻칠), 곡두오엽선, 단청선녀선, 선녀선민화, 선녀선목어, 주칠오엽선, 선녀선주칠, 태극옻칠선, 알태극유지선, 목단알태극 등 무수히 많은 작업을 바탕으로 전통을 재현, 그 맥을 잇고 있다.

그중 태극선은 방선자장에게 특별한 부채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부채를 배웠다 할 만큼 일상이 온통 부채였지요. 우리 집에 부채 만드는 일꾼만 160여 명이 있으셨으니까요”

그의 아버지는 대한민국 명장이자 전북 무형문화재 1호였던 고 방춘근 선자장으로 방구부채 중에서도 특히 태극선 명인으로 불렸다.

전주 가재미골은 명품부채의 산실로 1960년대까지만 해도 부채장인 30여 가구가 모여 살았다. 조선시대 전주에는 부채를 만들고 관리하는 관청인 선자청이 있었다. 현존하는 대한민국 무형문화재 4명이 모두 전주시민이라는 점도 이 같은 배경과 무관치 않다. 어느 누구는 인후동 가재미골은 풍수지리설을 들어 마을의 지형이 마치 가재미(가자미) 모습 같다고 하며, 또 누구는 가잠동(可潛洞), 가장곡(可葬谷)을 가재미골이라고 한 바 감여가(堪與家)의 설에 의한 것으로 보는 등 옛 지명에 이견이 많다.

구전하는 60년대 이야기 중에는 중앙동 근처에 비단 장사와 사복(부채를 고정하는 금속제 고리)을 만드는 곳이 있었고, 오거리에도 사복을 만드는 곳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중앙동 작업의 형태를 보면 일본인들이 자본을 대고, 장인들이 작업을 관리하면서 밑에 많은 일꾼들을 거느리고 있는 형태였다. 단선(태극선, 한지선 등) 쪽에는 한경필 선생과 그 제자인 방춘근 선생이 주를 이루었고, 합죽선 쪽에는 문준하 선생 아버지와 문준하 선생이 많은 일꾼을 거느리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해방이 되면서 일본인 자본이 사라지고 중앙동이 발전하면서 부채 장인들은 이분 들을 주축으로 인후동의 가재미와 안골, 아중리의 석수리로 터를 옮겨 새로운 자본가를 중심으로 공방들을 형성하게 된다.

가재미골은 그때부터 부채골로 형성된다. 당대의 부채의 명인인 방춘근 선생과 이기동 선생, 엄주원선생 등이 가재미에서 모두 터를 잡고 산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국가무형유산 김동식선생, 방화선선생 등이 바로 이곳 출신이다.

2남 3녀 중 맏이인 그는 형제 중 유일하게 가업을 물려받아 부채를 만들고 있다.하지만 중학생이었던 1970년대, 집집마다 선풍기가 보급되면서 부채 주문이 급감했다. 새마을운동이 끝나고 전주에 공단이 들어서자 부채를 만들던 일꾼들은 일제히 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지만 방춘근 명인은 부채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다섯 남매 중 방선자장만이 아버지 곁을 지켰다.

“아버지를 돕겠다는 맏딸의 책임감도 있었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 그리고 제일 잘하는 것이 부채라는 생각이 더 앞섰던 것 같아요. 다른 길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공부하라고 하셨지요. 그렇다고 갑자기 부채를 포기할 수 있었겠어요"

방선자장이 나고 자란 전주에는 조선 시대부터 궁에 진상하는 부채를 생산하는 선자청이 있었다.

전주 부채는 단옷날 임금께 올릴 만큼 전국 부채 중 단연 으뜸으로 꼽혔다. 질 좋은 한지와 단단하고 곧게 뻗은 대나무, 지역 공예인의 예술적 감각이 더해져 탄생한 명품이었다.

전주에서도 단선 장인으로 소문난 고 방춘근 명인 집은 계절과 관계없이 늘 부채 만들기로 분주했다. 방선자장은 그런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부채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 "사람들이 찾는 한옥마을 인근에 전주시가 ‘선자청’을 복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연간 1,500만명이 찾는 전주 한옥마을 문화시설 특화 축제'에 관광객 대상 야외 강연 및 시연을 진행, 한국의 무형문화 홍보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한국조폐공사가 그의 장인정신을 벤치마킹, 2022년과 2023년에 무형문화유산 시리즈 기념 메달 1호의 주인공이 됐다.손흥민 선수 기념 메달은 축구선수로서는 최초로 선보였다.

이와 함께 전주공예품전시관, 한국전통문화의전당,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등에서 십 수년 동안 수 만 명의 전주 시민들에게 공예의 전승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013년엔 천년 전주 기네스 인물에 선정됐으며, 2010년 전라북도 문화재 선자장으로 지정, 국내 유일의 여성 선자장 장인이 됐다.

1994년부터 방화선부채연구소를 설립, 30여년 동안 운영하고 있으며, 2025년엔 전주시민의 장 문화예술 대상을 받았다.

또, 지역예술가로 혁신적 도전정신으로 국가지정(문화체육관광부, 중소벤처기업부) 인증을 획득했다.

201년부터 2012년까지 전주시 평생학습센터에서 ‘한스타일 하는 학교 만들기 사업’에 참여, 초등학생과 고등학생,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3,540명에게 부채제작 과정을 가르치면서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전주문화재단의 ‘전주한옥마을 전통창작예술공간 입주작가’로 선정돼 전주 한옥마을에 입주, 전통부채 아카데미 운영, 시민 체험 프로그램, 전통 부채 전시, 전통공예 학술활동을 견인하면서 부채의 전통을 잇는 한편 미학적 가치를 추구, 부채의 재도약을 위한 선봉장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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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전주 관왕묘(지방 문화재자료 제5호)의 ‘신장부채(관우를 지켜주는 부채라고 함)’를 제대로 재현하고자 이 곳을 찾아 품을 팔았습니다. 전국 곳곳에 숨어있는 부채를 전통 방식으로 살려내 햇볕을 볼 수 있도록 내 삶의 모든 궤적에 더욱 열정을 쏟고 싶습니다”

그가 만드는 태극부채선의 경우, 대나무 선별 작업(2-3년생)부터 마디 자르기 등 자룻대 및 사복박기 등 48개의 과정을 거쳐 명품으로 태어난다. 특히 민가에서 사용한 단선은 물론, 궁중에서 약을 다릴 때 쓰는 듸림부채을 완벽하게 복원, 눈길을 끌고 있다.

선면의 위쪽이 넓고 아래쪽이 좁거나, 선면의 길이가 길어 오리발을 연상케 하는 ‘듸림부채’의 응용들을 통해 심미의식의 발현과 예술적 탐색의 징후들을 보여준다. 또, 옛 문살틀이나 목재로 만들어진 생활 용품들을 오브제로 사용해 이를 부채와 연결시켜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써 독특한 미학도 선보인다.

그녀는 민가에서 사용한 단선은 물론, 궁중에서 약을 다릴 때 쓰는 듸림부채을 완벽하게 복원, 눈길을 끌고 있다.

" '듸림부채' 의 뼈대는 댓가지나 가는 통대로 얽고 앞뒤 양쪽에 한지를 여러 겹으로 발랐으며 한끝에 긴 자루를 붙였다. 그리고 자루와 몸 사이 한두 곳에 가로로 띠를 잡아매어서 힘을 받도록 했다"고 했다.

한 사람이 말 따위에 올라서서 키에 담은 곡식을 천천히 흘리거나 넉가래로 떠서 공중으로 흩뿌릴 때 이를 두 손으로 쥐고 위아래로 흔들어서 바람을 일으킨다. 선면의 위쪽이 넓고 아래쪽이 좁거나, 선면의 길이가 길어 오리발을 연상케 하는 ‘듸림부채’의 응용들을 통해 심미의식의 발현과 예술적 탐색의 징후들을 보여준다. 또, 옛 문살틀이나 목재로 만들어진 생활 용품들을 오브제로 사용해 이를 부채와 연결시켜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독특한 미학도 선보인다.

'듸림부채'는곡식에 섞인 까끄라기나 검부러기를 날리는 부채다. 듸림부채의 ‘듸림’은 ‘무엇을 들이다.’라는 뜻으로, 바람을 불러들이는 부채라는 말이다. 전북에서는 부뚜부채라고 부르며, '한국토지농산조사보고2-경기도·충청도·강원도'에서는 풍선(風扇)으로 칭하면서 경기도의 인천과 장단군에서 쓴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국토지농산조사보고3-경상도·경기도·전라도'에서는 ‘곡식 날리는 부채(穀扇, 곡선)’로 적혔다. '부뚜'는 곡식의 잡물을 날리기 위하여 바람을 일으키는데 쓰는 돗자리를 말한다. 내용지역에 따라 ‘부뚝(경남 영산)·풍석(風席)·북두’라고도 하는데 '해동농서'와 '월여농가'에는 붓돗(&;席)으로 적혀 있다. 너비 50㎝, 길이 250㎝ 정도의 자리로, 손으로 쥐기에 편리하도록 ‘부뚜손’이라는 둥근 막대가 붙어 있다.

사용 방법은 '농사직설'에 “긴자리의 가운데를 밟고 양끝을 들어올린다”라고 쓰여 있듯, 발로 가운데를 밟고 양끝을 손으로 쥐고 흔들어 바람을 낸다.

방선자장은 "이를 부뚜질이라고 하는데 다른 한 사람이 곡식을 높이 들고 조금씩 쏟아내리면서 곡식에 섞여 있는 검부러기나 쭉정이 등을 바람으로 날린다" 고 했다.

‘당신이, 새롭게 우뚝 솟아오르는 태양과 같이 솟아오르는 대나무처럼 언제나 울울창창했으면 참 좋겠다. 당신이, 상현달처럼 모두에게 희망을 주고, 건지산처럼 영원히 오래 살았으면 참 좋겠다. 당신이 이지러지~도, 무너지~도 않는,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무성히 행복하게 살았으면 참 좋겠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옛 것을 가지고 있되 새로운 조류를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임을 의미)’ 의 바람으로 흥건한 가운데 그는 오늘도 ‘삼국사기’ 의 ‘견훤조’에 견훤이 고려 태조(재위 918∼943)에게 공작 깃으로 만든 ‘공작선’을 보냈다는 기록을 생각하며, 이를 제대로 복원할 부푼 꿈에 하루 해가 짧음을 속절없이 아쉬워 하고 있다. 그는 ‘더 열심히 파고 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하자’고 소곤소곤 속삭이고 있다.

2025년엔 제자들로 구성된 부채를 사랑하는 사람의 모임 '부사모'가 창립, 그 맥을 잇고 있다.





■방선자장이 걸어온 길



방선자장은 태극선으로 유명했던 故 방춘근 명인의 장녀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부채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내준 부채 숙제를 한 후에야 학교 숙제를 할 만큼 엄격한 부채 교육을 받았다.

부채는 방선장에게는 삶 자체였다. 부채 만드는 공장이 놀이터였으며 하루 24시간을 부채만 생각하며 살았다.

고 방춘근씨는 1992년 대한민국 명장, 1993년에는 문화재가 되었으며, 아버지가 작고한 이후 방화선 선자장도 2000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대나무를 깎고, 살을 놓고, 한지를 오려 붙이기를 60년 가까이 해왔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옛날 전통 방식 그대로를 고수하며 부채를 만들고 있다.

그녀는 단선을 만든다. 태극선을 비롯해 모든 단선 부채를 만들고, 유물을 복원해 옛 부채를 재현내기도 한다. 그가 만드는 단선부채는 대살을 깎아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한지를 붙여 만든 우리 고유의 부채로 예부터 서민들의 필수품이었다.

현재 전주에서도 단선 부채를 만드는 장인들이 몇 있지만, 대를 이어 부채를 만드는 장인은 방선자장이 유일하다./이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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