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 태조 이성계 어진, 디지털로 ‘부활’

고궁박물관 20주년 보존과학 특별전 '절반 소실된 이성계 어진은 어떻게 되살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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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빛과 붉은빛의 유리구슬이 어우러진 위로 글자가 보인다. 즐거움을 나타내는 희(喜)자가 두 개 붙은 쌍희(囍)자이다. 장수와 복, 화합을 기원하는 의미로 널리 쓰여온 문양이다. 언뜻 보기에는 괜찮은 모습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물 곳곳에 빈 공간이 있고 무늬 일부도 사라졌다. 유리구슬을 꿰어 만든 발, 옥렴(玉簾)의 모습을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보존과학자들의 고민과 선택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화재로 소실된 ‘태조어진’이 디지털 복원본으로 되살아나고 세월의 흔적이 쌓인 문화유산이 살아숨쉬는 ‘보존과학’을 주제로 한 전시가 열린다.

국립고궁박물관은 3일부터 내년 2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개관 20주년 특별전 ‘리:본(RE:BORN), 시간을 잇는 보존과학’을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은 박물관 ‘보존과학실’의 20년 연구 성과를 조명하고, 왕실·황실 유산

성과를 조명하고, 왕실·황실 유산이 보존과학을 통해 되살아나는(Reborn)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보존과학을 단순한 복원 기술이 아닌 문화유산의 생명을 연장하고 가치를 미래로 잇는 과정으로 조명한다.

'리:본(RE:BORN), 시간을 잇는 보존과학'은 박물관의 숨겨진 공간 '보존과학실'이 걸어온 역사와 여정을 다룬다.

처음으로 공개하는 옥렴을 비롯해 주요 보존 처리 사례를 한자리에 모았다.

이성계(1335~1408)는 붉은색 곤룡포 차림의 중년의 왕 모습이다. 조선왕조의 정통성과 왕권을 상징하는 대표 어진(御眞) '태조 어진'이 국립고궁박물관 보존과학 20년의 연구·기술을 통해 다시 관람객 앞에 섰다.

태조 어진은 역사적으로 여러차례 화재를 겪으면서 국립고궁박물관 소장본은 절반 가량 소실됐다. 현재 온전한 태조 어진은 전주 경기전에 봉안된 어진이 유일하다. 고궁본은 얼굴과 문양 등이 크게 훼손돼 실물 복원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였다.

특별전에서는 불에탄 고궁본 태조어진이 1910년대 유리건판 사진, 전주 경기전 봉안본과 결합해 디지털 이미지로 완성된 복원도가 네개의 대형 디지털 패널을 통개 공개된다.

이현주 학예연구관은 "보존과학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유물 속 시간과 기억을 읽고 되살리는 작업"이라며 "과학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연구 성과를 조명했다"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 초상화는 '터럭 하나 틀리지 않게'묘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기록을 조사해보니 고궁본은 세종 때 홍포(붉은 옷)로 바뀌면서 장년의 모습으로 새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두 얼굴을 OHP 필름으로 겹쳐 보니 정확히 들어맞아 (연구자 입장에서도) 흥미로웠던 프로젝트였다"고 회상했다.

각각의 유물을 되살리는 과정이 흥미롭다.

전시 들머리에서 소개하는 옥렴은 보존 처리가 한창 진행 중인 유물이다.

대한제국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제작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구슬을 연결하는 끈이 끊어지고 구슬도 많이 떨어진 상태이다. 전시에서는 끈을 튼튼하게 보강하며 작업 중인 모습을 보여준다.

창덕궁에서 옮겨진 옥주렴 역시 전문가의 '손길'이 더 필요한 유물이다.

청색과 투명한 색의 유리구슬을 줄에 꿰어 '성수'(聖壽)·'만세'(萬歲) 글자를 표현한 유물 너머로 그간의 보존 처리와 복원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조선 왕실의 어보(御寶·임금의 도장)와 인주를 담아 이동할 때 쓰던 가죽 가방인 호갑의 보존 처리 전후 모습, 1960년대에 이어 다시 보존 처리한 색회꽃무늬항아리 등도 보여준다.

2023년 일본에서 돌아온 뒤 보물로 지정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어보 등을 과학적으로 조사한 결과와 과정도 소개한다.

태조 이성계(재위 1392∼1398)의 모습을 담은 어진(御眞)을 되살린 과정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옛 문헌과 기록 등에 따르면 태조의 초상은 26점이 제작됐다고 전하지만, 전란과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현재는 전주 경기전과 국립고궁박물관 소장본만 남아있다.

박물관이 소장한 태조 어진은 과거 화재로 절반 정도가 소실된 상태이다.

이에 박물관은 1910년대에 촬영된 유리건판 사진, 국보로 지정된 전주 경기전 봉안본을 토대로 2013년에 어진을 디지털 작업으로 복원한 바 있다.

관람객들은 붉은 곤룡포(袞龍袍·임금이 입던 정복)를 입고 어좌(御座·임금이 앉는 자리)에 오른 태조 얼굴이 복원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정용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시간을 연장하고, 밝히고, 되살려 이어가는 보존과학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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