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락달그락] 이영춘을 기억하는 사람들

쌍천 이영춘과 제3회쌍천학술문화제 현장 ① ‘쌍천 이영춘’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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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군산 농촌 지역 보건의료의 초석을 세운 쌍천(雙泉) 이영춘 박사(1903~1980)가 지역사회 발전에 남긴 발자취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 평안남도 용강의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그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이라는 격변 속에서도 농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이다.



이 박사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황해도 평산에서 공의로 활동하며 농촌 주민들이 극심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현실을 목격했다. 이후 의료 혜택이 거의 없던 농촌 보건을 스스로의 삶의 과제로 삼고, 1935년 전북 옥구군 개정면으로 내려와 본격적인 농촌 의료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1935년 4월 전북 옥구군 개정면에 소재한 구마모토(熊本) 농장 자혜진료소 소장으로 부임하여 농장 소속 소작인 3,000세대, 20,000명에게 무료 진료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전액 무료진료를 시행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진료 첫해에만 3만 명이 넘는 주민이 진료를 받았고, 그는 자전거와 기차로 전북 일대를 직접 돌며 출장 진료를 이어갔다. 기근이 들었을 때는 어린이에게 주먹밥 급식을 제공하는 등 지역 구호 활동에도 앞장섰다.



1939년 그는 국내 최초로 초등학교 양호실과 양호교사를 도입해 학교 보건 체계를 세웠고, 결핵·기생충·성병 같은 농촌의 대표적 감염병을 치료하기 위해 일본과 서울을 오가며 치료제를 구해냈다. 더불어 간호 인력이 부족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간호사 양성소를 설립하는 등 인력 기반 마련에도 주력했다.



광복 이후에도 그의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1948년에는 개정중앙병원과 농촌위생연구소를 세워 지역의 종합 보건 시스템을 구축했고, 연구소는 이후 한국 농촌 보건사업의 모델이 됐다. 한국전쟁 때는 부산에서 임시 경찰병원 설립을 돕기도 했다.



‘쌍천’이라는 그의 호는 농민의 정신과 육체를 건강하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곧 그가 지향한 농촌 보건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농민의 생활과 건강을 함께 돌보는 통합적 지역보건 모델은 오늘날에도 지역 의료의 중요한 기준으로 평가받는다.



이영춘 박사가 군산에서 펼친 활동은 단순한 의료봉사를 넘어, 농촌 보건·교육·사회복지를 아우르는 지역혁신의 시도였다. 그가 남긴 발자취는 지금도 군산을 대표하는 지역 인물로서 큰 의미를 지니며, 농촌 보건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② 제3회 쌍천학술문화제 현장 취재



지난 6일 군산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서 ‘제3회 쌍천 학술 문화제’가 열렸다. 쌍천이영춘학술문화제는 쌍천 이영춘기념사업회가 주관을 했고 쌍천 이영춘 연구회와 전북특별자치도 의사회, 군산시, 국립군산대학교가 후원했다. 이 학술문화제는 이영춘박사의 위대한 업적을 되새기고, 군산의 문화적 역량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 추진되었다 올해 주제는 ‘한국의학 의료에 관한 스승과 제자의 대화’로 이영춘 박사의 스승과 제자들이 이어온 가치를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군산 강임준 시장은 쌍천학술문화제에서 사람 존중의 가치가 현대 사회에서 더욱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며, 이번 행사의 의미를 강조했다. 강 시장은 군산에는 현재 이영준 박사를 기리는 기념사업회만 존재하지만, 앞으로 재단을 설립해 그의 사랑과 존중의 실천 정신을 전국적으로 확산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강 시장은 또 이날 행사에 시정 관계자와 시·도의원들이 함께한 점을 언급하며, 관련 논의를 이어가 실질적인 추진 동력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참석자들의 참여와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번 학술문화제가 향후 군산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실천으로 연결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군산 신영대 국회의원은 축사에서 매년 쌍천학술문화제를 열정적으로 이끌어온 이강우 이사장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며 지역 의료의 가치가 계승되는 점을 의미 있게 평가했다. 그는 최근 정부의 의사 수 증원 결정이 충분한 논의 없이 비합리적으로 추진됐다며 비판하고, 의료인을 단순한 이익집단으로 보는 정부 인식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의사와 필수의료 인력 확충 논의는 결국 의료 현장에서 헌신하는 인물과 소명의식이 부족해진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며, 이영츈 박사와 같은 의료인의 정신이 후배들에게 계승된다면 강제적 정책 없이도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신 의원은 의료인이 보람을 느끼며 일할 환경을 만드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이번 학술제가 이러한 논의를 깊게 다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주요 학술제 타임 라인은 전북대학교 김두헌 교수님의 ‘근대 군산지역 종교 연구 현황과 전망’ 이었다. 군산지역의 종교는 서해와 금강·만경강에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 속에서 포구 문화와 민속신앙이 발달하고, 동학·독립운동·기독교·천주교 포교 등 다양한 사회·종교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지역으로 평가된다. 특히 임병찬의 독립의군부 참여자 다수가 군산·옥구·임피 일대 출신이었을 만큼 민족운동의 기반이 탄탄했으며, 호남 최초의 3·1운동 발상지 중 하나로도 기록된다. 이러한 지역사적 토대 위에서 불교·천주교·개신교·동학 등 여러 종교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지역사회에 뿌리내리며, 교육과 의료, 민중 조직화에 기여해 왔다.



종교사 연구 현황을 보면, 불교는 백제 시기 사찰과 나한 신앙 등 잠재적 연구 자원이 많음에도 연구가 부족하고, 천주교는 의주 출신 이주민들의 정착 과정과 야학 활동이 핵심 축으로 확인된다. 개신교는 남장로교의 의료·교육 중심 통전적 선교가 두드러지며, 향후 한국인 지도자 연구가 과제로 제시된다. 동학과 천도교는 군산·임피 일대에서 강한 사회적 기반을 형성했고 3·1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종합하면 군산은 다양한 종교와 사회운동이 교차하며 근대 지역사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지역으로, 향후 종교 간 관계·지역 인물 연구·비교사 연구가 요구된다는 점이 강조됐다.



연세대학교 윤상림 교수의 ‘한국 근재 의학의 시작’은 이영춘 박사의 스승이었던 오긍선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근대기 의료 선교의 핵심 인물인 오긍선은 한학 교육을 받으며 입신양명을 꿈꾸던 청년에서, 근대 문물과 기독교 교육을 접하며 새로운 길을 선택한 지식인으로 성장했다. 배재학당 진학 이후 스테드먼·불(Bull)·알렉산더 등 선교사들의 신앙·사상적 영향을 깊이 받았고,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사건을 통해 조선의 근대화와 민족의 장래를 고민하는 청년 지도자로 자리 잡았다. 그의 성품과 학구적 태도는 선교사들과 주변 인물들에게 깊은 신뢰를 주었고, 자연스럽게 교육·통역·어학 지도 역할을 맡으며 선교·교육 활동에 헌신하게 했다.



오긍선은 “민족을 구하는 공부는 의학”이라는 소명을 품고 1902년 알렉산더 선교사의 후원을 받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루이빌 의과대학 등에서 도제식 의학교육을 받으며 임상 경험을 쌓으려 했지만, 인종적 제약과 언어 장벽 속에서 실습 기회를 얻기 위해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인디애나 주립 정신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며 실습을 이어가는 등, 의학적 전문성 확립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오긍선의 여정은 조선 청년이 의료·선교·교육의 분야에서 근대적 전문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밖에도 정운현 연세대 교수의 ‘스승과 제자의 대화’, 최현우 군산대 교수의 ‘일제하 한국 의료 체계’, 여인석 교수의 ‘현대 우리나라 의료 제도 속의 쌍천’ 주제 발표가 진행되었다. 특히 학술제 중간에는 뜻을 이어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시민들에 대한 장학금 전달식이 이루어졌다. 이영춘 이야기를 동화책으로 만들고 있는 서동애 작가와 향토사를 탐구하고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는 군산 청소년자치공간 달그락달그락의 어스토리 자치기구가 주인공이었다. 특히 어스토리 자치기구 청소년들은 이영춘을 알리는 영상, 보고서, 책자를 제작해왔다.



어스토리 청소년들은 “처음에 활동금을 저희 어스토리가 수여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진실로서 자각하자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저희가 해왔던 노력들이 마치 보상받은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도 이영춘 박사를 개인을 넘어 지역 사회를 넘어 국가에 이르기까지 알리기를 바라며 노력할 것을 저와 어스토리는 맹세합니다.”는 소감을 밝혔다.



취재후기



이영춘 박사를 이전까지는 그저 ‘군산 간호대학을 설립한 사람’ 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이영춘 박사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또 이영춘 박사의 스승에 대한 이야기까지 알게 되었다. 앞으로 이러한 학술문화제가 더욱 발전하고, 활발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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