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책임을 희석하는지 폭로

윤인로‘궐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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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위(지은이 윤인로, 펴낸 곳 갈무리)'는 단지 대통령이나 권력자의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가 아니다. 오래된 질서가 이미 무너지고 있는데 새로운 질서가 아직 도래하지 못한 사이,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 사이에 열리는 정치적 공백의 시간을 가리킨다.

이 책은 특히 ‘아직 아닌’(not yet)주의적 통치공학이 어떻게 정의의 문제를 “나중”으로 미루며 위기의 책임을 희석하는지 폭로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통치공학을 거스르는 힘이 이미 현실 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음을 보고, 그 근원을 “이미(already) 도래중인” 시간의 선재성에서 찾는다.

이 힘은 통치공학의 폭력을 무위로 돌리고, 규범과 예외·법과 폭력의 위계를 잠시 정지시키며, 궐위라는 공백 속에서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을 여는 힘으로 그려진다. 장갑차 앞에서 멈춘 시민의 이미지가 책 전반을 관통하는 것도 이러한 힘의 출현을 시각적으로 응축하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이어 국가이성(레종데타)과 친위쿠데타(셀프-쿠)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보적으로 교차하며 내전적 통치를 구성하는 방식을 분석한다. 또한 후기에서는 ‘물민주권’과 ‘무주공산’의 개념을 도입해 12·3 이후 주권의 재구성을 사유한다.

사물-인간이 함께 주권의 주체로 등장하는 물민, 그리고 누구의 소유도 아니지만 모두의 삶이 공생하는 무주공산이라는 이미지 속에서, 저자는 국민주권을 넘어 물민주권·생태주권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헌정적 상상력을 제안한다. 일지-단편의 형식을 취한 이 책은, 궐위의 시대를 관통하는 병적 징후와 저항의 힘을 함께 기록하며, 광장 이후의 정치철학이 마주해야 할 근본 물음을 제기한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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