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1월 08일 08시29분

모든 쾌락을 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기쁨

[책마주보기]C.S.루이스의 ‘예기치 못한 기쁨’(하채현)

어린이영화 ‘나니아연대기’의 원작자 루이스는 연작소설 ‘나니아연대기’ 완결편을 남겨둔 채 ‘예기치 못한 기쁨’을 출간했다.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C.S.Lewis)는 1898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나 영국과 북아일랜드를 오가며 공부한 후,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철학과 문학을 가르쳤다. ‘나니아연대기’를 발표하면서 퀘벡의 라발 대학과 맨체스터 대학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침묵의 행성에서’, ‘사랑의 알레고리’ 등 여러 저서를 남겼다. 바그너가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를 작곡하면서 ‘나는 오페라를 쓰지 않겠어’라고 선언했던 것처럼, 루이스도 ‘나는 여기에 자서전을 쓸 마음이 없다’라는 말로 ‘예기치 못한 기쁨’을 썼다. 그러나 이 책은 한 작가의 탄생부터 서른 중반까지의 삶을 담았으므로 다분히 자서전 같다. 바그너의 오페라가 새로운 오페라이듯. 첫 장에 “예기치 못한 기쁨 - 바람처럼 설레어”라는 워즈워스의 문구를 새겨넣어 이야기의 주제를 밝혔다. 그리고 루이스의 유일한 소원 ‘내 영혼은 내 것이라 부르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담담하게, 세세하고 흥미진진하게 펼쳤다. 소년기 루이스는 경이로운 기쁨을 느꼈다. 경이(驚異)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덮쳐왔다. 한 잡지에서 바그너의 오페라를 읽게 되었을 때, 루이스의 분신인 첫 친구 아서를 만났을 때, 에브리맨 문고판이 든 작은 소포가 배달되는 오후에, 노크선생님이 그리스어로 '호메로스'를 처음 읽었을 때 이와 같은 경이를 루이스는 ‘급습을 당했다’고 표현했다. 나는 처음엔 이 경이로운 기쁨이 예기치 못한 기쁨이라고 착각했다. 청년기를 마친 루이스는 더 이상 기쁨에 사로잡히지 못한다. 그런데 왜 루이스는 ‘나니아연대기’ 완결을 앞두고 느닷없이 ‘예기치 못한 기쁨’을 출간했을까? 나는 책 속에서 이유를 찾아보았다. 루이스는 어느 날 제자 그리피스와 친구 바필드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루이스가 얼결에 철학을 ‘주제’라고 지칭하자, 바필드가 말했다.

“플라톤에게 철학은 주제가 아니었어. 삶의 방식이었지(322∼323쪽)” 서른 살이 된 루이스는 청소년기에 맛보았던 ‘기쁨’이라는 주제를 찾아 들판을 내달렸다. ‘예기치 못한 기쁨’은 삶의 방식이 될 수 없다고 고집을 피웠다.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 기쁨인지 자문하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어릴 적 기쁨에 지나치게 매달린 나머지 눈이 멀었다. 루이스는 자신의 영혼을 자신의 소유로 두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나다’를 버릴 수 없었다. 유물론과 계몽주의, 진화론에 뿌리를 둔 루이스의 발버둥은 계속되었다. 아마도 그는 이쯤에서 자신의 고집과 발버둥을 고백해야 했는지 모른다. ‘예기치 못한 기쁨’을 통해 되찾은 기쁨을 한데 모아 연작소설의 완결편에 실어야 했는지 모른다. 숙원하고 갈망하는 일이 성취되는 순간을 기쁘다(joy)고 하지 않는다. 루이스는 ‘기쁨’을 어떤 만족감보다 ‘그 갈망 자체를 갈망하게 만드는 갈망’이라고 하여, 행복(Happiness), 쾌락(Pleasure)과 구분 짓는다. 기쁨은 차라리 슬픔과 고통과 비슷한 면이 있다. ‘쾌락은 우리 재량대로 얻을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기쁨은 결코 우리 재량에 달린 것이 아니(23쪽)’다. 그렇다면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멀리서 불어올지도 모르는 새로운 바람, 내일의 바람을 다만 상상하는 것일까? 답은 ‘아니다’이다. 기쁨을 향유하거나 관조하지 말고 삶의 방식으로 채택해야 한단다. 상상을 삶의 방식으로 채택하면 할 일이 아주 많아질 것이다. 새해 첫 책을 고르기 위해 서가 앞을 서성이다가 ‘예기치 못한 기쁨’을 뽑아 들었다. 올해 한 번 맛보면 세상 모든 쾌락을 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우리 모두 맛보기를 소망한다. 나아가 ‘하찮은 것들을 들여다보느라(341쪽)’ 정작 우리를 급습한, 불현듯 덮친 기쁨을 놓치지 않기를 2024 새해 소원으로 빌어본다. (이 서평에 담긴 오독(誤讀)의 모든 책임은 작성자인 나에게 있다.)

하채현 작가는

생태에세이 ‘수수에게 들키다’ 저자

출판그룹상상 기획위원

인문도시센터 공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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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1-0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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