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락달그락] “충무공 이순신 같은 지도자 필요해”
■ 12월 개봉한 영화 `노량'을 보고
지난 해 12월 개봉한 영화 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이어진 임진왜란의 해전 중 노량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난 1일, 청소년기자단은 영화 을 감상하고 우리 역사에 대해 알고 평화에 대한 생각을 공유했다.
임진왜란의 수많은 전투 중에서도 대표적인 해전은 한산도 해전, 명량 해전, 노량 해전이 있다. 작중에서 노량해전의 발단은 명나라의 장군이 뇌물을 받고 일본의 배 한 척을 풀어주며 시작된다. 그 한 척이 일본의 지원군을 이끌고 왔고, 이순신 장군은 이들을 조선 수군이 없다고 생각할 만한 곳으로 유인하여 포위하고 선봉대를 궤멸시킨다. 이를 본 일본의 장군은 명의 수군을 뚫고 탈출하기로 하나, 이순신 장군의 도움으로 일본 수군은 탈출에 실패한다. 다시 포위된 일본 수군은 생각을 바꿔 이순신 장군이 있는 방향으로 진격하여 탈출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조선과 명의 연합군, 일본군 양측의 거센 접전이 일어나고, 이 때 이순신 장군은 일본군의 총에 맞아 전사한다. 그 혼란을 틈타 일본의 장군은 탈출하고, 그렇게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 모두 큰 타격을 입으며 전쟁은 끝나게 된다. 그 규모는 2만 여 명의 적군과 선박 300여 척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작중에서 일본군은 뚫고 도망치는 것보다는 조선 수군에 전면전을 펼치려 했고, 실제로 이순신 장군은 도주하던 일본 함대를 추격하다 전사했다는 부분에서 고증이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는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부분으로 보여졌다.
임진왜란 발발 과정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을 감상한 청소년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 정00 청소년(16, 여)
일본군 병사와 조선군 병사가 대비되어 나타났는데, 일본군은 집과 가족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싸웠지만 조선군은 나라 전체를 위해 싸웠어요. 일본군, 조명연합군을 보며 세 나라가 평화롭게 지낼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운 아들 이희가 물에 뛰어들어 최후를 맞은 모습이 수모를 겪지 않고자 했던 행동이었을 것 같아요.
○ 장00 청소년(16, 남)
이순신 장군님의 감정선이 잘 드러난 영화였고, 군사의 규모를 숨기기 위한 전법과 일본군의 일선을 처리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영화 초반에서는 명의 도독이 이순신 장군의 말에 반박하며 조명연합군의 협상이 결렬될 위험에 처했지만, 함께 싸우며 목숨을 구해지고 나서는 이순신 장군을 위해 싸우고 전사하기까지 했어요. 그런 절박함이 기억에 남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한 이순신 장군과 조선군의 절박함을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다. 조선의 병사들은 패배하면 돌아갈 곳이 없었기에 더욱 승리에 절박했을 것이다. 가능성이 희박한 싸움이었는데도 승리로 이끌어낸 주역은 충무공의 정신과 국가를 지키기 위한 간절함이었을 것이다.
한반도 역사에는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것을 모두 극복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생각한다. 권력을 업은 주변인들 탓에 잘못된 정치를 하는 왕과 대통령들이 많았는데, 본인의 소신대로 행동해 성공한 사람들과 같이 주변 또는 권력층보다는 이순신 장군과 같이 백성을 생각할 수 있어야 좋은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또, 평화는 어렵게 만들어져 유지되고 있음에도 서로가 다른 생각과 사상을 주장하며 갈등을 겪고 있다. 이렇게 무기 없는 내전이 사라지고, 하나로 뭉친 나라가 되길 바란다. /이준엽 인턴 청소년기자
취재후기
‘비호하다’ 같이 단어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들이 있었지만 노량해전과 평화에 대해 생생하게 알 수 있는 기회였다. 결과론으로 보일 수 있는 역사 속에서도 배워가야 할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지면 : 2024-01-11 16면
http://sjbnews.com/8037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