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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1월 22일 08시27분

상상미학의 현상학

[책마주보기]니꼴라이 고골의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문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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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꼴라이 고골에게 환상은 부조리한 현실을 드러내는 기제로써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즉, 그의 소설은 환상적 아이러니를 통해 현실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 인간 소외의 문제를 폭로한다.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계급(관등)은 인간의 욕망이 가장 극명하게 표출되는 요소로 허위의식을 상징하는데, 이때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내면의 조롱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진한 패러독스를 품고 있다. 그의 소설집 “뻬쩨르부르그 이야기”에는 소소하지만 소소하지 않은 역설적 세계가 환상을 매개로 펼쳐져 있다.

'외투’는 관청에서 정서하는 일을 하는 말단 9급 관료인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라는 인물을 통해 전개된다. 러시아에서 9관등은 더는 승급되지 않는 하급관리다. 그는 특별히 좋아하는 글자를 만나면 기뻐서 미소를 지을 정도로 자기 일을 사랑하는 인물이다. 계급에 대한 욕심도 일탈도 없이 소시민적 삶을 추구하는 인물 유형으로 러시아의 북풍을 피할 번듯한 새 외투 한 벌이면 족했다. 그러나 어렵게 마련한 외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빼앗기고 만다. 아까끼는 고위층 인사를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돌아온 것은 모욕뿐이다. 이때 갈가리 찢어진 듯한 외투 한 벌은 하급관리인 아까끼로 상징된다. 더하여 계급이 갖는 폭력성과 허위의식은 약자의 절망에 귀 기울이지 않는 속성을 보여준다. 한 사람에게는 존재 이유가 되었던 외투를 잃어버렸으나 권력은 과시욕을 드러내며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만약 이 사건이 죽음으로 끝났다면 불쌍한 아까끼에 대한 추모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고골은 아까끼를 외투 유령으로 다시 살려낸다. 현실에서 죽은 자를 다시 살려내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 환상세계로 망자를 불러온다. 그리고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고위관료의 외투를 똑같이 빼앗음으로 두 사람의 존엄을 동일 선상에 올려놓는다. 이로써 인간 존엄에 대한 역설과 부조리한 현실을 드러내는 고골문학의 정수를 만나게 된다. 고골의 또 다른 장점은 유머에 있다. 하급관리인 아까끼에게도 고위관료에게도 동일한 비웃음과 연민을 느끼게 함으로 가해와 피해를 대등한 위치에 둔다. 인간 보편의 허위의식을 폭로한 것이다. 그런데 이 보편적 감정이 권력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그 위력이 인간의 목숨을 위해 할 만큼 강력해진다. 권력의 죄의식은 스스로를 면죄하는 뻔뻔함을 보인다. 그의 또 다른 작품 ‘코’에서도 8관등 꼬발료프의 코가 사라진 사실은 공포라기보다 일상의 일탈처럼 받아들여진다. 그 환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독자는 꼬발료프가 5관등이 된 자신의 코와 대화하는 장면에서 대등하지만, 차별적인 모습과 인간의 이중적인 허위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19세기 러시아 사회에 대한 풍자와 환상소설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까 환상적 공간은 자신의 비극적 현실을 잠시 봉인해 두고 싶은 공간이기도 하다. 북풍한설에 버려진 듯한 일상에서 현대인의 환상 공간은 어디일까? 고골에게 그곳이 외투로 상징되었다면 21세기 현대인에게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라는 공간일 수 있겠다. 때로 권력은 그 권위를 이용하여 개인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죽음에 이르게도 한다. 억울한 죽음을 죽음으로 끝내지 않고 망자의 혼을 다시 불러와 현재를 바로 세우는 일이 살아 있는 자의 몫이 아닌지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문미숙 작가는



브런치작가, 문학으로 철학읽기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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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1-2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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