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아침]파증불고(破甑不顧)
“ ‘깨진 시루는 돌아보지 않는다’로,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지 말자”
시루는 떡을 찔 때 사용하는 둥근 질그릇으로 물이 잘 빠지도록 아래쪽에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다. 반면에 독은 간장이나 된장, 술, 김치 등을 보관하는 큰 질그릇으로 아래쪽에 구멍이 없다. 필자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시루에 떡을 찌고 독에 간장과 된장, 김치를 담아 먹었다.
‘시루에 물 퍼붓기’란 속담이 있다. 구멍 뚫린 시루에 물을 부어봤자 헛일이다. 다 밑으로 줄줄 새버리기 때문이다. 즉 아무 효과가 없다는 뜻의 속담이다. 아무리 많은 힘이나 정성을 들여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 쓰는 적당한 비유다.
시루가 들어가는 사자성어로 ‘파증불고(破甑不顧)’가 있다. 한자는 깨트릴 파(破), 시루 증(甑), 아니 불(不), 돌아볼 고(顧)자를 쓴다. 파증불고는 ‘깨진 시루(破甑)는 돌아보지 않는다(不顧)’로 풀이된다. 이미 지나간 일이나 만회할 수 없는 일에 미련을 두지 말고 깨끗이 단념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파증불고는 서기 150년 경인 중국 후한말의 대학자이자 사상가인 곽태(郭泰)와 삼공(三公)의 지위에까지 오른 맹민(孟敏)의 대화에서 유래했다. 곽태가 어느 날 사색을 즐기려고 산책을 하고 있는데 젊은 사내가 지고 가던 지게에서 시루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봤다.
젊은 사내는 땅에 떨어져 산산조각 난 시루를 본체만체하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태평하게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곽태는 그 모습이 신기하고도 이상해서 “여보게 젊은이! 지게에서 시루가 땅에 떨어져 깨졌는데, 무슨 생각에 골몰하여 시루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가는가?”
곽태의 말에 젊은 사내는 차분한 목소리로 “예 어르신 시루가 땅에 떨어진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의 말에 곽태는 “자네의 전 재산과도 같은 시루가 땅에 떨어져 전 재산이 다 날아갔을 터인데 어찌해서 돌아보지도 않는단 말인가?”라고 의아해하면서 다시 물었다.
그러자 젊은 사내는 “시루가 이미 깨졌는데 돌아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깨어진 옹기 조각을 끌어안고 울부짖으며 탄식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던 길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냥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곽태는 젊은 사내의 대범하고 과단성 있는 행동에 보통 사람이 아님을 직감하고 학문에 힘쓰도록 권유하였다. 10년이 지나 젊은 사내의 이름이 천하에 알려지고 명성을 떨치게 됐는데, 그가 바로 삼공(三公)의 지위까지 오른 맹민이다.
‘푸른 용의 해’인 갑진년이 밝은지 두 달째 접어들었다. 지난 1년을 뒤돌아보면 의미 없게 보냈거나 성과를 내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든 냉철하게 판단하고 이를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지나간 일을 아쉬워한들 그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과거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일 뿐이다. 다만,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아 현재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에 건강한 열정을 쏟아붓는 지혜로 활용되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실수도 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실수와 시행착오를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아 미래를 위한 건강한 에너지로 써야 한다는 것이 ‘파증불고’란 사자성어가 담고 있는 뜻이다. 미래를 향해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겠다는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다듬는 데 안성맞춤인 사자성어이다.
화려한 세월이 영원히 계속되는 줄 아는 사람은 꽃이 지지 않을 것이라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애써 모른 척한다. ‘죽은 자식의 귀 모양이 좋다고 하지 말라’는 속담이 잘 말해준다. 이미 잃어버렸거나 다 틀어진 일을 놓고 자랑하거나 아까워해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 과거에 연연해서 좋은 일이 다시 올 것이라 기대만 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가슴만 타들어 간다.
‘대나무 숲에 바람이 지나가도 소리는 남지 않고, 못 위로 기러기가 날아간 뒤 그림자가 남을 리 없다’는 채근담의 어록이 있다. 이미 끝난 일은 깨끗이 잊는 사람이 새 출발을 잘할 수 있다.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지 말자.
/이태현(고원공간정보 부회장·전 무주부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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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2-19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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