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호남부'와 '호남시'가 있었다
'송사지' 등에 임영(林泳)의 '호남부(湖南賦)'와 강후석(康侯錫)의 '호남시(湖南詩)' 기록 전해
조선시대에 호남부와 호남시가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송사지' 등에 임영(林泳)의 '호남부(湖南賦)'와 강후석(康侯錫)의 '호남시(湖南詩)' 기록이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영의 '호남부'는 호남의 한시도별지명노래로는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사례이다. 옹몽진의 호서별곡보다 늦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도별지명노래의 한사로는 호서별곡의 다음이고, 한문전용 호남의 도별지명노래로는 가장 오랜 작가와 창작 시기가 밝혀진 작품이다. 영남에는 아직 한시도별지명노래가 발견됐다는 보고가 없다. 임영의 호남부는 강후진(1685~1756)이 지은 '송사지(松沙誌, 무장읍지)'에 처음 채록했다. 그는 전라도 무송(茂松)과 장사(長沙)를 합쳐 만든 무장(茂長)지역의 지지(地誌)인 '신편송사지(新編松沙誌, 전 2권)'를 편찬했다.
△임영이 지은 ‘호남부’
멀리 호남은 한 지방이어라
오십하고도 일곱 고을이 있다네
돌아보니 우리나라는 창평하여 번창하고 평화로우니
호남에 힘입어 편안하게 살고 있다네
지세는 전주라 완전하고
나라가 굳건하기는 장성이 있어서이네
산물이 화려하기는 보성이 있고
빼어난 인물은 영암이 있으리
비단실은 능주에서 나온다네
진산에 보존된 보배가 알려지겠고
위대하여라 함열의 백성이 모두가 기뻐하니
낙안에 편안하게 살으니 기쁜 얼굴이라네
순천에는 임금의 바른 이치를 따르니
구례에서 예의를 찾아 응하지 않으랴
화순하게 평화롭고 순종하여 나날이 두터워지네
동복은 나라와 가족이 함께 복을 누리니 정의를 지켜 교화가 높아지고 새로워지네
흥덕은 덕이 일어나 풍속이 아름다워지니
어찌 성심의 임실로 결실이 아니리오
무안은 백성을 편안케 하는 정치를 힘쓰니
임금의 덕은 바르게 흥양에서 일어나 형통하네
우리나라의 대정에서 커다란 안정을 기뻐하고
영원토록 백성이 함평하여 모두가 평화롭고
광양의 빛나는 태양처럼 우리를 보살펴서 사람과 만물이 순창에서 순박하고 번성하네
임금의 가르침이 해남의 땅끝까지 이르고
남평은 남북의 변방까지 평화로워서
나라의 힘이 진안에서 더욱 보배스럽구나
정읍은 우물정자로 경계를 바로잡으니 다시 고칠 필요가 없고
나주란 여러 고을은 그대로 지키면 된다는 의미라
용암의 용은 못에 편안하게 머물고 숨지도 않네
경사로운 구름은 장흥에서 일어나 함께 머무르고
태인은 아주 어진이들이 산을 즐기며 사네
산에 올라 구름을 보고 싶고
아침에 진도를 출발하여
저녁에 강진에 편안하게 도착했네
용담에서 닻의 나래를 펴고
광주를 곁에 두고 앞으로 나아가니
영광에 도착하여 닻을 내리네
무장에서 개암나무 수풀을 헤치고
뾰족뾰족한 고산에 올라
여산 활석의 숫돌을 건너서
금구의 시내를 건너 굽어보니
향기로운 벼가 옥구에 가득하구나
황금빛은 김제의 뚝에 물결지고
곡성의 소나무 그늘은 깊기도 하여라
남원 남쪽 언덕의 향기로운 풀은 푸르러서
장수 이 물은 끊임없이 길게 흐르고
익산의 산은 이어져 끝이 없구나
무주에 영지는 햇볕에 반짝이고
금반에 아름다운 옥과의 과일이 놓여있고
고부 옛 언덕에 교목은 감동을 주는구나
울긋불긋 가을 금산의 단풍은 애간장을 녹이고
고창에서 옛날의 가을 하늘을 바라보니
임피의 산기슭에 머물러 떠날 줄 모르네
저 진원과 삼계의 두 고을은 수풀이 우거져 고을이 폐지되어 인적이 드물구나
강후석은 강후진의 종형으로 사전에는 오르지 못한 무장의 인물로 짐작된다. 먼저 이 시의 제목과 전문을 밝히고 그의 치밀한 서술과 이보다 후에 1867년 학초가 창작한 팔도읍지가에서 전라도의 부분과 비교하여 그 가치를 간단하게 소개한다.
△강후석이 지은 ‘호남시’
호수의 남쪽 호남에 60개의 고을이 있었다네
고개와 바다를 천여 리를 지나면
오랜 옛날 우임금이 고산에 제사를 지냈다더라
괭이로 뾰족뾰족한 여산의 숫돌을 파내고
용담 용담에는 용안굴에 용이 잠들었다네
오색구름이 운봉의 중턱까지 피어오르고
진산의 보물이 북두칠성까지 뻗쳐 있구나
무주의 토란이 가을에도 생생하여라
듣기에 익산이 수도의 진산이었다네
또한 기다란 시내가 장수에서 끊임없이 흐르네
금주발이 전주에 온전하게 보존하였네
임실에 저장한 밤이 창고에서 넘친다네
김제의 버드나무 뚝 길이 십리나 되고
금산의 밀림에 단풍이 붉게 물들었네
큰집의 겹 담장이 금구를 금도랑으로 둘러 있네
나그네는 몇 번이고 임피의 산기슭에 머뭇거리네
평탄한 무우밭이 만경이나 넓구나
오랜 가뭄에도 옥구의 물은 쉬지 않고 흐르네
민심이 모두 넉넉하여 함열에서 기뻐하는구나
부안에 힘입어 나라와 가정이 오랫동안 안녕하니
우리 성군이 어질은 정치를 태인에서 베풀었고
정읍에는 우물정자로 반듯한 토지의 경계며
남원의 봄 언덕에서 포곡조가 풍년을 노래하며
고부의 언덕에 연기는 고향의 하늘을 감도네
만방의 넉넉한 인심이 흥덕의 감회를 더하는구나
하늘이 지키는 장성은 오늘도 우뚝하고
순박한 인심은 순창의 상가에서 보겠구나
진안의 어진 이웃과 인심은 어느 분이신고
평화는 번창하고 창평의 집집마다 풍요롭네
구례를 찾으니 옛 풍속이 아직도 남았네
구슬을 캐고 캐도 담양은 여전하네
곡성에 숨어 사는 군자를 찾으니
빛나는 옥과를 깨끗하게 씻어 내왔구나
무장의 소나무는 추위에도 푸르구나
고창의 가장 높은 곳 어디에서 쉬어 갈거나
영광의 높은 곳에 구름이 절반쯤 걸려 있네
나주의 산수는 비단결처럼 곱구나
북쪽은 높고 남쪽은 평탄한 남평에서
사람마다 보성에서 주옥을 찾으려하네
능주에 비단이 싸여 있다고 나는 믿으리
아침은 상서롭고 백성을 편안하게 누가 힘쓰랴
외국에서도 함평처럼 평화로운 곳을 차지 못하네
찬바람이 북에서 엷게 불어와도 화순에서 평온해지고
경사로운 구름이 장흥에서 길게 일어나는구나
영암의 도승은 물처럼 거울처럼 깨끗하구나
광주의 서석산은 계율을 어기지 않고
광양에 뜨는 해와 달은 하늘에서 비추네
낙안의 바람과 흑은 모두가 기뻐하네
우리는 임금의 명령 따라 돌아갈지니
산림에 맹수도 없고 모두가 행복을 누리네
비개어 태양이 떠오르는 해남의 하늘이어
하늘에 올라 바다와 저자를 보는구나
강진은 어찌 연꽃과 조릿대로 번거로울까
보배로운 진도에서 빈 배로 올 것인가
제주의 바다는 바람도 파도 없이 조용하고
한라산 신선의 산을 샅샅이 살펴보니
바닷길이 험하면 사녀들이 어려우리
고을의 이름이 정의라고 이리 아름다우랴
삼계와 진원만 오직 고을이 사라졌고
삼백년 동안 비어있는 옛터로 남아있네
도별로 지명을 포괄하여 불린 노래는 지명풀이로 설명하거나 지명놀이의 하나인 언어유희로 해석했다. 심지어 장타령으로 조금 좋게 평가하여 교본의요소가 크다는 지식을 함양하는 수단으로 해석한 논문이 있을 뿐이다. 교본이라면 널리 목활자나 목판으로 판각하여 널리 이용되어야 마땅하지만 모두가사본으로 근래에야 알려지고 이를 모아 연구하거나 활자화된 일도 광복부에 비롯된 노래이다.
이를 명승지를 열거하여 지역의 내력을 찬미한 백광홍의 관서별곡이나 정철의 관동별곡과는 다른 치소(治所)를 포괄한 도별지명노래는 특별한 용도가 있다고 본다. 교본이란 교재와도 관련이 있고 희소할 정도로 고립된 이본이 많고 지명을 포괄해 창작하는 고도의 난이도를 가진 작품일 필요가 없다.
이를 수록한 가사집이 드물고 거의 사본으로 전한다는 현상을 설명하기에오랜 기간 창작된 상황에서 가창으로 전승된 노래의 수효로도 극히 적다는 사실은 음악으로 발전되기 어려운 특수성이 감지된다. 하삼도의 도별노래인 삼남가가 모두 실린 고사본은 해동유요가 유일하고 고본이라는 사본의 가사집에 자료가 극히 드문 상황도 교본과 다른 특수한 용도를 설정하여 해석이 필요하다.
임영은 소과와 대과에 급제해 사가독서의 혜택을 받은 일급문인이었고 강후석은 비록 진사가 아니지만 많은 시를 남긴 탁월한 재능을 나타냈다.
허흥식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이들의 작품에는 호남의 아름다움과 넉넉함을 찬미했지만 이들 작품이 사찬의 지리에만 수록되고 널리 알려진 작품이 아니란 사실이 궁금하다"고 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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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6-11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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