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11월 25일 14시55분
[아침발걸음]‘曆’ 자에서 읽는 고인돌 문화
태양력은 양력이라 하며,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주기를 기준으로 한 역법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그레고리력이 대표적이다. 태음력은 음력이라 하며,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주기를 기준으로 한 역법이다. 음력은 태양 주기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음력만 사용하는 달력은 계절 변화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태음태양력은 달의 주기와 태양의 주기를 모두 반영한 달력 체계이다. 달의 변화를 기반으로 달의 길이를 정하면서도 태양의 계절 변화를 고려해 1년의 길이를 조정한다. 동아시아의 24절기를 포함한 농력이 그 예에 해당한다. 농력(農曆)은 달의 주기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지구의 태양 공전 주기와 일치하도록 조정하는 방식으로, 양력의 계절 변화와 음력의 달 주기를 동시에 반영한다.
농사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에 농사력이라는 뜻의 농력으로 불렸다. 농력에서 한 달은 보통 29일 또는 30일로 구성된다. 1년이 약 365일인 태양 주기와 맞지 않아 순수한 태음력만 사용하면 계절과 어긋난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 2~3년에 한 번 윤달을 추가하여 계절에 맞게 조정한다. 24절기는 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하며, 농업에 중요한 때를 표시하고, 계절과 날씨를 예측하는 데 사용되었다.
인류사와 함께해온 ‘역(曆)’은 한자로 ‘曆’이라 쓰며, 일반적으로 달력을 의미한다. 그 기본적인 뜻은 년, 월, 일을 나누어 시간을 계산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역(曆)’은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반영하며, 주로 농업 생산과 천제 등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 한자는 언덕을 나타내는 ‘한(厂)’, 곡물 또는 벼를 뜻하는 ‘화(禾)’, 그리고 태양을 상징하는 ‘일(日)’이 결합된 형태이다. 이는 인류의 농경문화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한자로, 농경이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풍흉이 결정되었던 시기의 인간의 간절한 정성과 노력을 담고 있다. 농경 사회에서 하늘에 대한 감사와 제사를 위해 사람들은 거대한 거석을 세웠다. 한반도의 고인돌은 그 대표적인 예로, 단순히 무덤이 아니라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한 천제단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고인돌은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언덕 위에 세워져, 농경과 제사의 중심지로 기능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曆’ 자는 언덕을 나타내는 ‘厂’ 자를 가장 위에 두었다. 이 언덕 ‘厂’은 고인돌의 덮개돌처럼 하늘에 제를 올리는 공간을 상징하며,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성스러운 장소로 해석할 수 있다. 고인돌을 만들었던 청동기 시대는 기후환경의 변화로 곡물 중심의 농경생활이 자리 잡은 시기였다. 이러한 풍요를 기원하는 인간의 염원이 ‘曆’ 자에 포함된 두 자의 곡물, 즉 ‘禾’ 자에 담겨 있다. 농경의 풍년과 흉년을 결정짓는 것은 달이 아니라 태양이었다. 그래서 청동기 시대의 농업은 태음력보다 태양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태양이 어디에서 떠오르는지가 중요했고, 그 위치에 따라 절기가 정해졌다. 농경은 단순히 날씨가 따뜻해졌다고 바로 씨를 뿌리는 일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따뜻한 날씨는 다시 추위를 몰고 올 수 있었기에, 태양의 위치와 계절적 흐름이 농경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曆’ 자에 포함된 ‘日’은 이러한 농경의 때를 상징한다. 태양의 위치와 계절 변화에 따라 농사를 계획했던 고대인의 지혜가 이 한자에 담겨 있다. ‘曆’의 발달은 고인돌의 소멸과도 관련이 깊어 보인다. 거대한 고인돌을 세워 천문을 관찰하고 하늘에 제사를 드리던 선사인들은 역법을 도입했고, 그 결과 고인돌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또한, 철기를 가진 외세의 침입과 더불어 더 세밀하고 정확한 역법의 등장이 고인돌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된 것은 아닐까?
/이병렬(고창 향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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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11-26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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