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11월 26일 15시07분
[지역의 재발견]슬치 만마관(萬馬關)은 호남제일관이다
고지도를 뒤적여 남원 가는 길을 찾아보면 남문을 나와 상관을 지나고 소치(掃峙)를 넘게 되는데, 소치가 바로 슬치재다. 아마 掃(쓸 소)의 ‘쓸’에다 재를 뜻하는 치(峙)를 붙여서 ‘쓸치, 쓸치재 또는 쓸재’로 부르다 지금에 와서는 ‘슬치’ ‘슬치재’로 자리 잡았거나, 아니면 쓸재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소치(掃峙)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쓸재, 슬치, 슬치재, 소치는 모두 같은 지명이다. 이곳은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고개가 아니고 대단히 중요한 역사성을 띠고 있는 곳이다. 충청좌도 암행어사로 파견되었던 이승고가 충청과 전라지방을 살펴보고 올린 서계에,
“고개를 넘어 서울에 이르는 길로는 크게 세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전주의 만마관(萬馬關)이고, 하나는 문경의 두 조령이며, 다른 하나가 바로 황간의 추풍령입니다.”
라고 만마관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전주를 내려다보고 있는 남고산성은 견훤 때 축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곳 산성에 남고진(南固鎭)을 설치하여 군사를 배치하였는데 좁은 목 위에 자리 잡고 있어 전주부성과 너무 가깝다는 점이 흠이었다. 만일 적이 침입한다면 좁은 목의 이점을 살려 방어할 수 있겠지만 출혈이 크고 그 함성 소리가 성내까지 들려 자못 근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본래 적에 대한 방비는 단계적으로 하는 것이다. 보다 먼 곳에 1차 방어선을 치고 그 뒤에 2차 방어선을 마련해서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주로부터 약 40리 거리에 만마관은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를 방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고, 남고진은 최후방 방어선이었다.
본래 관(關)이란 닫아 잠근다는 뜻으로 군사적 요충지에 설치하여 외적의 침입을 방비하기 위한 시설이다. 중국 만리장성이 서쪽 가욕관으로부터 시작해서 동쪽 산해관에 이르고, 삼국지의 관우가 형수(유비의 아내)를 모시고 제1관 동령관부터 활주관까지 다섯 개 관을 차례로 격파하며 지나는 것을 보면 관이 군사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통영대로는 통영을 기점으로 하여 한양 가는 조선의 대표적인 길 가운데 하나였다. 통영에서 발하여 진주, 산청, 함양을 지나 전라도 운봉으로 접어들고 남원, 임실을 거쳐 슬치를 넘으면 전주가 불과 40리 길이다. 때론 섬진강을 따라 올라온 적이 곡성에서 방향을 틀어 남원으로 들어오기도 하지만 모두 슬치를 넘어야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슬치는 적을 방어하기에 매우 중요한 요새라고 할 수 있었다.
만마관이 마지막으로 보수된 것은 고종 10년(1873)이다. 전라 감영에서 볼 때 만마관이 무너지면 전주가 위태롭게 된다. 그래서 이를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약 30리쯤에 남관진을 설치하였다. 남관진에 장수와 군사들이 주둔하고 있다가 만마관으로 올라가서 교대로 번을 섰다.
완주군 상관(上關)은 북쪽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남관(南關)은 남쪽에 있어 생겨난 이름이다. 진의 동쪽 험준한 산악을 병풍 삼아 군마를 두고 길렀을 것으로 보이는 마자(馬子) 마을과, 그 건너편 서쪽엔 부속 건물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내아(內衙) 마을이 있으니 모두 만마관과 관련되고 예사롭지 않은 지명이다. 남관초등학교 부근에는 남관진창건비가 외롭게 서 있다. 만마관은 춘향전의 이몽룡,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할 때 쉬어가고, 동학농민군이 넘나들었던 역사현장이다. 성문 밖에 주막이 있어 오가는 길손의 배를 채워주었다.
우리 도가 대규모 행사를 유치하는 것도 좋지만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찾아 되살리는 것도 의미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박이선(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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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11-27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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