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12월 01일 14시14분
[신생전북론 48회]규율의 공동체에서 모심의 조화체로
모실 시의 조화체
지난 회에서 "공동체는 자유의 대가로 더 이상 개인을 보호하지 않는다. 보호는 규율의 복종을 전제로 한다. 국민국가공동체란 복종의 다른 이름이다. 복종 없는 공동체란 '불과 얼음'처럼 형용모순이다. 동학의 '시천-주'에서 천은 곧 모실 시를 말한다. 복종과 대칭한다. 공동체가 아니라면 무엇인가?"라고 썼다.
1. 동학의 하늘은 모심이다
동학을 한 글자로 말하면 모실 시(侍)다. 수운 최제우의 동학은 시천주(侍天主)사상이다. 수운은 " '주'라는 것은 존칭해서 부모와 더불어 같이 섬기는 것"이라 했다. '주'는 주님의 '주'가 아니다. 창조주의 '주'도 아니다. 수운은 '천'을 따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천은 창조주도, 초월적 절대자도 아니다. 천은 우리말 '하늘', '한'을 표기하기 위해 한자 '천(天)을 빌려 쓴 것이다. 그럼 '하늘', '한'은 무엇인가? 수운동학에서 '하늘', '한'은 곧 모실 '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시즉천(侍卽天)이다.
수운이 모실 '시'를 말할 때는 성리학의 조상귀신, 절대자, 권력을 타파하자는 것인데 초월적 '한울님', '하늘님'을 모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학•천도교에서 '하늘님', '한울님'을 말할 때는 모시는 마음과 그 행동을 말하는 것이라고 본다. 모시는 마음이 신령하고 거룩한 마음인 영성이고 성령이다. 동학은 존재자들과 독립된 '천주'를 모시는 게 아니다. 앞에서 말한대로 '주'는 다만 '님이라는 호칭일 뿐이다. 그래서 '시-천주'가 아니고 '시천-주'다. 모신다는 것은 존중이지, 공경하여 받드는 것은 아니다. 존중한다는 것은 북돋고 자라게 하는 농부의 마음과 농사와 같다. 이것이 가득한 것이 자연생태계다. 자연을 자원과 휴식처로만 인식한 근대(현대를 포함)는 오로지 '돈'과 '계약'만을 절대화한다. 모심이 없다.
2. 모심이 하늘을 낳는 일이다
모실 시가 곧 천이라서 모심이 하늘을 낳는 일이다. 진화론에 밑바탕한 진보적 사유는 성장에만 주목했지, 모심의 순환과 생성 - 하늘을 낳는 일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자유와 평등의 확장이라는 진보의 사유는 올바른 것이지만 그 사유는 앞으로 앞으로만의 일방향이라는 생산 발전을 배후에 깔고 있었다. 우주적 대순환의 생성 이라는 사건의 과정이 곧 모심(侍)이다. 생성은 새로운 일과 생명이 탄생하고 자라는 것을 말한다. 자란다는 것은 1방향의 성장•발전이 아니라 주체와 타자가 서로 돕고 북돋우며 새롭게 넓어지고 깊어지며 행복해지는 것을 말한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걸어서 10분 거리의 목적지를 한 시간도 넘게 걸렸다고 한다. 콘크리트 틈의 민들레, 길고양이, 참새, 지나는 사람들, 이웃들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말을 나누다 보면 10분이 몇 십 분이 된다는 것이다. 돈을 역에서 소매치기당한 할머니의 사연을 듣고 며칠이고 역에 앉아 계셨다고 한다. 며칠이 지나서 소매치기한 사람이 돈을 가져와 용서를 구했다고 전한다. 나쁜 사람이 착하게 되는 것, 나외 타자 모두 서로 행복해지는 것이 모심이라고 생각한다.
동학의 '천'을 찾아서 아무리 말하여도 성리학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 전혀 다른 차원에서 '천'을 생각해야 한다. 동학의 천은 다른 게 아니라 위에서 말한대로 바로 '시侍'다. 접령강화(接靈之氣 內有降話- 논학문)의 신령함이 바로 모실 '시'!다. 누구의 영(靈)과 접하고 말하는가? 삼라만상 우수마발의 영과 접하고 말한다. 동학은 천을 모시는 게 아니라 모실 시가 곧 천이다고 생각한다. 이게 동학이 성리학과 다른 점이다. 동학에는 성리학의 성리가 없고 하늘이 품부한 성도 없다.
3. 어머니 마음이 모심이다.
어머니 마음(모심母心) 모심(侍)이라 했더니 한글 발음이 같다고 서로 연결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근거가 없는 게 아니다. 해월 최시형은 "천지부모"라 하였다. 아이를 포태하여 늘 기르고 돌보는 어머니 마음처럼 모실 '시'를 잘 드러내는 것도 없다고 본다.
"부모의 포태가 곧 천지의 포태니, 사람이 어렸을 때에 그 어머니 젖을 빠는 것은 곧 천지의 젖이요, 자라서 오곡을 먹는 것은 또한 천지의 젖이니라. 어려서 먹는 것이 어머님의 젖이 아니고 무엇이며, 자라서 먹는 것이 천지의 곡식이 아니고 무엇인가. 젖과 곡식은 다 이것이 천지의 녹이니라" - 천도교경전, 해월법설, 천지부모-
어머니가 장독대에 정안수를 떠놓고 빌었을 때 어머니의 '빔-빌다'는 무엇일까? 내 어머니는 아파트로 이사한 후에도 거실장에 정안수(표준어 정화수, 천도교는 청수라 한다)를 모시고 빌었다. 삼신할미, 조앙귀신, 성주귀신, 북두칠성에 빌던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불가의 스님이 되자 미륵님에게 빌었다. 고단한 삶 자식들이나마 먹고 살고 손자들 잘되라고 빌었을 테지만 이걸 기복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빔'을 통해 어머니는 자신을 위로하고, 정화했을 것이다. 빔은 자신을 모시는 행위이기도 하다. 자신을 모셨을 때 그는 큰님 - 한님이 되었다. 한님이 되어 어머니는 텃밭의 옥수수, 가지, 고추, 상추 등을 알뜰살뜰 길렀으며, 자식이나 손주가 문을 열기도 전에 보글보글 된장국을 끓이고, 자손들이 밥 먹는 모습을 '한'하게 지켜봤다. 한님이 된 어머니가 자신 밖을 모셨을 때, 천•지•인은 모두 한울이 되었다. 님은 존칭일 뿐이니, 한님, 하늘님, 한울님이든 대수인가? 모실 '시'라는 조화가 없으면 다 우상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무궁한 우주적 생명의 실체로서 한울" 같은 말은 별로다. 무궁한 모심이 나의 동학이다. 내가 시자(侍者)가 되는 것, 시자로서 조화자(造化者)가 되는 것이다. 모실 시의 과정이 없다면 한, 하늘, 한울 모두 쓰잘데 없는 말이다. 빔, 기도, 심고란 모심의 조화자로 타자를 내가 시자로 낳는 일이다. 그래서 동학을 믿는 게 아니고 한다고 한다. 동학한다는 것은 내가 시자가 되고 시자를 낳는 일이다.
4. 모심의 조화체를 생각한다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며 기독교인인 심광섭 선생은 모실 '시'를 이렇게 쓰고 있다.
"시(侍)를 모심, 돌봄, 살핌, 섬김 등으로 읽자. 모심은 일이다. 보살피고 치유하고 살리는 일(works)이다. 모심은 밑바닥으로 내려가 지극정성으로 만물을 돌보며 살리는 성스러운 일이다. 예수의 이 말씀도 모심의 한 형태일 것이다. “내 아버지(하느님)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한 5: 17)......하느님의 일(섬김)은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는 사건이다. ‘천(天)’은 지극히 큰 실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유와 삶의 초월성을, ‘한’(一)과 ‘큼’(大)을, 부단한 넘어가기를 의미한다."중세의 신학자 안셀름은 소위 존재론적 신존재 증명에서 신을 “더 이상 그보다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id quo maius cogitari nequit)이란 최고의 실체가 아니라 사유와 삶의 초월성을 의미한다. 안셀름의 바로 이 신은 동학의 ‘천’과 상통한다. 사유와 삶의 초월은 삶의 지극함에서 나오며, 그 대표적인 것이 강주영이 예로 든 母心이라고 생각한다. 초월은 지극에 이르려는 사유와 삶의 부단한 움직임이고 운동이다. 그러므로 시득천(侍卽天)에서 시(侍)를 촉발하고 고단하고 지칠 때 용기와 능력을 주며, '시'에 흥과 신명을 선사하는 힘은 지기(至氣), 곧 영(靈)으로 작용하는 하늘(天)일 수밖에 없다. 이 수심의 과정이 양천(養天)일 수 있겠다." - 심광섭, 2024.10 페이스북-
모심의 과정이 곧 수운이 말한 조화라고 생각한다. 조화는 얼핏 "옷이 잘 어울린다"할 때의 조화(調和)로 들리지만 그게 아니고 조화(造化)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조화(造化)를 "만물을 창조하고 기르는 대자연의 이치, 또는 그런 이치에 따라 만들어진 우주 만물"로 풀고 있다. 모심이란 조화자를 낳는 일이다. 규율하는 국가공동체, 학교공동체, 직장공동체, 마을공동체 할 때의 그 공동체와 조화체는 다르다. 나의 농시(農市) 개념은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를 모심의 과정이 가득한 곳으로 개벽하는 주장이다. 이 모심의 과정을 정치•경제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다음 기회에 자세히 밝히겠다.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지면 : 2024-12-02 16면
http://sjbnews.com/834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