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12월 03일 14시19분
[온누리]여행
엊그제 제주도를 다녀왔다. 오랫만의 가족여행이었는데. 젊은 친구들과 함께여서 뷰가 좋은 카페 투어, 맛이 좋은 빵집 순례가 1번이었다. 그 와중에도 놓치지 싶지 않았던 것은 교양이었다. 이를 채우기 위해 미술관과 공연장, 기념관, 박물관을 둘러봤다. 샤갈과 이왈종의 작품이 빛으로 다시 태어나는 신선함을 맛보았고, 주방 조리기구가 멋진 타악기로 변신하는 재미도 만끽했다. 추사관에서 만난 김정희 선생의 절망과 희망, 4.3평화기념관에서 만난 제주사람들의 아픔과 치유의 여정은 자칫 맛집 기행으로 그칠뻔 했던 제주 여행을 의미깊게 해주었다. 추사관에서는 세한도에 덧붙여진 중국과 우리나라의 명사 19인의 찬시가 일부 번역되어 있어서 세한도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길 수 있었다. 평화기념관에서 만난 4.3의 아픔은 한강 작가의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를 어서빨리 읽어야겠다는 의무감을 갖게 했다.
여행은 일상에서 지쳤던 몸과 마음을 다독이기 위한 힐링과 쉼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의미있는 공간을 찾아봄으로써 비어있는 나 자신을 채우는 기회이기도 하다. 옛 선인들은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산수를 유람하고 나면 유람기 혹은 답사기를 남겼는데, 이름하여 와유록(臥遊錄)이다. 고창출신 실학자 강후진이 남긴 와유록도 그 중 하나이다. 그의 와유록에는 평안도 성천을 비롯하여 평양과 개경 등 고조선, 고구려, 고려 유적의 기행문이나 자료들이 실려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색적인 기록은 익산 금마지역 답사기이다. 와유록에는 1783년(영조 14) 익산 금마지역의 마한문화를 답사하고 작성한 유금마성기(遊金馬城記)라는 답사기가 실려있다. 이 답사기는 지금으로부터 250여년전 익산의 문화유산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었는지를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지금은 대부분 백제 문화유산으로 알려져 있는 미륵산성과 쌍릉, 왕궁리유적 등을 강후진은 마한유적으로 인식하고 답사했다는 점이다. 특히 백제 도읍과 관련되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왕궁리유적,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인골의 분석결과 백제 무왕의 무덤이라 추정되고 있는 익산쌍릉 등이 모두 이 시절의 누군가에게는 마한 기준왕이 남천하여 세웠던 유허들이라고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때 마한인들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라고 인식되었던 유산은 이제는 너무도 당연하게 백제인들의 손끝에서 탄생된 유산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 규명은 진실을 찾아가던 부지런한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지만, 250년전 역사의 실체를 찾고자 애썼던 한 실학자의 기록이 있었기에 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생생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의 결과물로 탄생한 기행문이 의도치 않게 또 다른 진실을 확인해 주는 단서가 된 것이다. 그래서 여행은, 기록은 언제나 옳다. 제주 여행도 기록을 남겨야 할까./문이화(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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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12-04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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