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12월 04일 14시17분
삶도 예술도 단순하게, ‘나는 심플하다’
김스미의 미술산책< 60> 장욱진 ‘독’ 그리고 ‘가족도’
평생 ‘나는 심플하다’라는 화두를 안고 이를 실천한 화가가 있다. 한국 근현대 회화의 거장 장욱진(1917-1990)은 삶도 그림도 단순함으로 가득 채웠다.
산수화의 한편 같기도 하고 민화 속 주인공 같은 장욱진의 그림을 한참 바라보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아마도 그가 한평생 몰입한 작고 천진난만한 아이와 나무, 까치가 나의 동심을 일깨우는 모양이다. 그의 그림은 그 흔한 모험도 객기도 없다.
충남 연기군 부잣집 아들 장욱진은 열 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부모 대신 양육을 돌보던 고모의 반대가 심했고 건강 악화로 수덕사에서 반년을 지낸다. 이곳에서 만공스님과 여류화가 나혜석과의 만남은 어린 장욱진을 더욱 그림의 길로 인도한다. 스물두 살, 작품 ‘공기놀이’가 조선일보 주최 제2회 전국학생미술전람회에 최고상을 받으며 이를 계기로 도쿄에서 정식 미술교육을 받게 된다. 추상화가 유영국과 김환기, 이규상이 만든 신사실파 동인전에서 장욱진은 드디어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낸 작품을 선보인다.
작품 ‘독’은 장욱진을 단순한 그림의 대가로 만든 초기 기념비적 작품이다. 캔버스에 장독 하나를 채우고 가지만 앙상한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독 앞에는 까치 한 마리가 걸어간다. 세상 무심한 듯 걷는다. 그가 평생 그린 까치는 장욱진 자신의 표상이다. 작품 속 해와 그믐달은 우주 생성의 이치와 음과 양의 조화다. 장욱진은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를 거부하고 초 심미안적 이미지로 군더더기 하나 없는 물질의 원형만을 포착했다. 우리 땅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정겨운 장독이 온 화면을 가득히 푸근함을 자랑한다. 짙은 고동색이 주는 토속적 향토성은 한국 사람으로서 정체성(identity)의 끝판왕이다. 우리가 죽고 못 사는 달항아리보다 장독이 먼저다.
장욱진의 고향은 늘 가족이었다. 그림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산 그는 30여 점의 가족 그림을 그린다. 특히 애착을 가졌던 1955년 ‘가족도’는 반도화랑 첫 개인전에서 일본인에게 팔린다. 장욱진은 못내 아쉬워하여 1972년 지면의 ‘가족도’를 다시 그린다. 여름인 듯 붉은 배경의 집에는 부부와 두 아이가 고개를 빼고 누군가를 기다린다. 두 그루의 푸른 나무, 네 마리의 새가 하늘을 난다. 일본으로 간 ‘가족도’는 2023년 소장자의 2층 벽장에서 발견되어 서울로 귀향하여 공개된다.
잘 그리겠다는 욕심도 없이 그야말로 살점 하나 없는 뼈대만 있는 그림, 장욱진은 그가 사랑한 것들을 고요하게 한없이 비워 냈다. 자신의 예술을 완성하기 위해 교수라는 신분도 일찍이 벗어던진다. 그는 도시를 떠나 강가의 초막에서 스스로 붓다가 되고 장자가 되어 초 미니멀하게 살다가 아주 심플한 명작을 남기고 떠났다. 물질이 정신적 가치보다 우위에 서버린, 지금 한국의 풍요 속 영혼의 빈곤에서 벗어나는 해법을, 장욱진은 작품으로 말하고 있다./화가 김스미
지면 : 2024-12-05 7면
http://sjbnews.com/834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