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12월 04일 15시36분
[금요수필]털모자와 덧신
정남숙
연말이 다가오니 이웃돕기 행사가 성황을 이룬다. 대나무 바늘을 이용하여 털실로 모자 뜨기를 한다는 모임의 공지 사항이다. 강사를 초빙하여 방법을 익히고 다 함께 모여 뜨개질한다니, 나 같은 뜨개질 초보도 할 수 있겠구나! 기대했지만, 밴드 사정으로 일정이 변경되어 참석하지 못하고 말았다.
나는 뜨개질을 못 한다. 우리 언니는 코바늘이나, 대바늘만 잡으면, 무엇이나 눈감고도 잘 뜨는데, 나는 도저히 되질 않는다. 한 올 한 올 뜨는 것이 시간에 비해 능률이 나지 않는 것도, 성질 급한 나와 맞지 않는 이유다. 어릴 때 뜨개질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언니 옆에 앉아 배우려고 물어보면, 언니는 귀찮아하며 차라리 빼앗아 완성 시켜 주고 만다. 벙어리장갑, 양말, 목도리, 시작은 다 해봤지만, 완성품은 하나도 없었다. 한 코 뜨고 대어보고, 한 줄 뜨고 늘여 봐도 언제나 제자리걸음이다. 어느 하세월에 완성할까, 둘둘 말아 처박아버렸다.
뜨개질 옷은 유행도 없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내 손으로 만든 뜨개질 옷을 한 번도 입혀보지 못했다. 돌날에도 이모인 언니가 뜨개질해서 선물한 것을 입혔고, 세타와 바지도 전부 받아 입히기만 했다. 내가 뜨개질을 못하는 것은 진득하지 않고 선머슴처럼 덜렁대는 까닭이다. 그러니 귀찮다고 너는 바느질이나 하라며, 가르쳐 주지 않은 큰언니 때문에 배우지 못하고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다. 전철 속에서 옆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뜨개질 삼매경에 빠져 있거나, 친구들과 대화하면서도 장소 구별 없이 뜨개질만 하는 것을 보아도 무덤덤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이가 들고 보니 뜨개질이 자꾸 눈에 보였다. 뜨개질만큼 시간을 잘 보내고, 성취감을 맛보는 것도 없을 성싶다. 자기 옷은 물론, 아들 손자 옷까지 손수 떠 입혔다거나, 철 따라 번갈아 가며 예쁜 손가방을 자랑하는 이가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의 기본 체온이 36.5도가 정상이듯, 건강한 사람은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뜻해야 한다니, 몸과 마음이 추워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이 겨울, 어설픈 솜씨로 머리를 따뜻하게 하는 대신, 나의 주특기를 살려 따뜻한 겨울을 나도록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작은방에 자투리를 모아둔 내 보물창고가 있다. 털모자는 포기하고 한겨울 발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덧신 재료를 찾았다. 만들기는 일도 아니다. 문득 옛일이 떠오른다. 어느 겨울 친구들의 조끼와 화장품 가방을 만들어 나눠줬다. 내 솜씨를 부러워하며 고마워하는 이가 많았다. 그러니 고민할 필요도 없다. 잠시 시간만 투자하면 수십 개의 알록달록한 덧신을 뚝딱 만들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올겨울 내 마음이 먼저 부자가 된 것 같다. 남이 하는 것만 욕심내지 말자. 털모자면 어떻고, 덧신이면 어떤가, 추운 겨울 이웃 돕기에 나의 가진 것으로 동참하니, 내 맘속에 따뜻한 온기가 스며든다.
정남숙 수필가는
'대한문학’ 수필 등단
수필집: ‘노을을 닮고 싶다’ ‘난 아직도 꿈을 꾼다', ‘역사의 마당에서 전통이랑 놀아보자’
'대한문학 작가상’, 한국문인협회 선정 ‘올해의 수필인 상’ 수상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 행촌수필, 은빛수필 회원. 국립전주박물관, 전주기독교역사기념관 문화해설사
지면 : 2024-12-0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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