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12월 04일 18시20분
공명정대함으로 기강을 바로 세우고 내실을 다진 황희
11회. 정책의 일관성으로 원칙을 지키다
수많은 사람이 권력을 탐했고 잡은 권력을 절대로 놓치지 않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정부패를 저지른다.
그러나 절대 권력을 가졌음에도 자리에 연연해하지 않고 언제든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었던 황희는 달랐다. 그는 정치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했고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지 않았으며 국가와 공익을 위한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데에만 집중했다.
황희가 가진 리더십의 역량 중 앞을 내다보는 혜안과 올바른 판단력은 정책을 논의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빛을 발했고 관료들을 통합해 추진력을 높였다.
지위가 높을수록 책임은 더 무거워지기 마련인데 그 무게감을 이겨내고 모든 행정 부서의 현안들을 총괄하면서 분석하고 조정하는 역할까지 흔들림 없이 해냈다.
왕 다음으로 조선 최고 권력자였고 수십 년간 왕의 독보적인 총애를 받았던 황희가 만약 간신이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큰 혼란을 맞이했을 것이다.
하늘이 내려준 인재를 알아보고 신망했던 성군, 왕을 향한 충심으로 오직 국정에만 힘썼던 황희. 진정한 지도자의 품격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운명적 만남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일에 능수능란함을 보여주었던 황희는 직면한 현안들을 올바르게 판단하기 위해 먼저 철저한 조사부터 명령했다. 기존의 정책들을 고치고 새로운 정책들을 도입할 때는 신중한 분석과 검토가 필요하다. 중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공표된 법제 안에서 해결 방안을 찾았고 변경되는 정책들로 인해 백성들이 혼란을 겪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임금이 백성들로부터 믿음을 얻으면 나라를 다스리기 쉽고 믿음을 잃으면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라면서 “그 믿음을 얻으려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법을 함부로 고쳐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풍습이나 관습, 조직, 방법 등을 완전히 바꾸고 새롭게 한다는 뜻의 ‘혁신’이라는 단어는 정부 교체가 이루어질 때마다 가장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정치적 변화를 추구해야 할 때는 철저한 조사와 검증을 거치고 나서도 향후 변화와 결과에 대한 대책과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시대 변화에 따른 혁신은 분명 필요하지만 무분별하게 손대기보다는 기존 정책을 유지하면서 문제점을 해결해 가는 방법으로 안전하고 내실 있게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
1438년(세종 20년) 세종이 도승지 신인손을 불러 《태종실록》을 보고자 한 일이 있었다. 이때 황희는 이는 절대로 불가한 일이라고 반대하면서 열람하지 못하도록 세종을 말렸다. 만약 세종이 실록을 보다가 문제가 될 만한 기록을 읽은 후, 사관들에게 수정을 지시하기라도 한다면 세종에게 큰 오점을 남기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그는 각 부서에서 업무를 담당하는 관료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가장 효율적인 시책이 마련됐을 때 그 사항들을 빠르게 통보해서 추진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또한 사후관리를 통해 진행 상황을 파악했고 업무에 소홀한 관리가 있다면 엄중하게 처벌해 기강을 바로 세웠다.
황희는 국고를 확충하고 관료들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쓸데없는 관료들과 관청 소속 노비들을 감축함으로써 비용 절감과 효율성을 높이고자 했다.
1399년(정종 원년) 황희가 문하부 보궐(정 5품)에 있을 때 사무는 맡기지 않고 정원 외 임시로 두면서 녹봉을 지급하는 검교 벼슬자리를 파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당시 내시부 관직 환관의 수가 한도를 넘어 재정적인 부담이 가중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조정 관리의 수는 중국보다 3배나 많은 실정이었다. 그러나 정종은 황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416년(태종 16년)에도 일이 없는 임시 관직들이 놀면서 가져가는 녹봉이 많으므로 이를 혁파하고 불필요한 관리의 구조조정을 청했으나 태종 역시도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다행히 세종 때에 와서 구조조정의 진언은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인원 감축이 이루어졌다.
1423년(세종 5년) 건국 초기에는 대신이나 중신의 수가 40명 미만이었는데 그 뒤에 70명까지 이르게 됐다. 중책의 자리는 책임이 무거운 만큼 높은 녹봉을 받았고 인원이 많을수록 태만해지기 쉬웠다. 황희는 불어난 관료들과 각 관사에서 불필요한 관원들을 줄여 나갔다. 1426년(세종 8년)에는 각 관사의 제조가 혁파되고 없어졌는데도 관사에 남아있는 사내종(奴子)들이 많은 것에 대해 형조로 하여금 각 관사의 업무를 보는데 빠질 수 없는 사람만 남기고 본가로 보낼 것을 청하는 등 적극적인 인원 감축으로 국가 재정을 절감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1431년(세종 13년)에는 40년 전에 혁파했던 수원부 판관을 다시 두는 것이 편리한가 편리하지 않은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수원 땅이 크고 백성이 많아서 한 사람이 능히 다스릴 수 없다는 사람도 있지만 수원의 사무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고 처리할 사무 기한을 넘긴 적도 없었으므로 필요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수원에만 판관을 더 둔다면 폐지됐던 제도가 부활하는 것으로 백성들의 신의를 잃게 될 뿐 아니라 수원만 부유하게 하고 땅이 좁은 가난한 고을은 더욱 가난하게 만들게 된다고 이유를 밝혔다.
황희의 반대는 관료의 녹봉을 아끼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한 지역에만 특혜를 준다면 백성들의 원성을 살 것이 분명했고 지역 간의 차별과 격차가 생기지 않도록 민생을 안정시키려는 의도도 담고 있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지역 간 격차를 생각해 보자.
중앙집권적 사회경제 구조로 인해 수도권으로 산업화가 집중되면서 지역 간 경제성장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노동시장 역시 수도권으로 쏠리면서 지역 인구 감소로 이어졌고 고용 창출이 크게 약화 되면서 지역 간의 노동 가치와 효율성에도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과거 우리는 차별로 인한 지역감정이 고조되어 정치적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현재 다시금 낙후된 지역 사람들의 불만이 점점 쌓여가는 가운데 실수를 반복하는 일은 생기지 않아야 한다.
지역 간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적절한 분배와 공정한 평등을 기준으로 사회적 형평성이 고려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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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12-0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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