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12월 15일 15시10분
[월요아침]천만매린(千萬買隣)
“좋은 이웃은 천만 냥으로 산다”
사람이 살면서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은 행복이고 기쁨의 원천이다. 가진 것을 서로 나눌 수 있고, 어려움이 닥쳤을 때 역시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 하거나 새로 집을 지을 때, 또 어디에 삶의 둥지를 틀 것인가를 고민할 때 여러 조건을 따져본다. 수험생이 있는 학부모는 교통이나 학군을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반면에 은퇴한 사람들은 대부분 공기가 맑은 숲이나 공원 주변을 선호할 것이다.
중국 남북조시대 역사서 남사(南史)에 송계아와 여승진의 일화가 나온다. 양나라 무제가 통치하던 시절에 ‘여승진’이라는 명망 높은 대신이 있었다. 그는 전쟁터에서는 많은 승리를 거둔 뛰어난 장수였지만 평소 사람들에게는 늘 겸손하고 온화하게 대하는 인격자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존경했고, 그의 집 근처에서 살고 싶어 했다. 송계아는 오랫동안 관직을 맡았었고, 마지막으로 남강군에서 군수를 역임하다가 퇴직했다. 송계아가 노후에 살 집을 보러 다녔는데, 사람들이 추천한 몇 곳을 둘러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여승진의 명망을 흠모해 결국 여승진의 옆집을 많은 돈을 주고 매입하여 이사 갔다.
많은 돈을 주고 집을 매입했다는 이야기는 금세 소문이 퍼졌고, 이웃집 여승진의 귀에도 들어갔다. 인사차 온 송계아에게 여승진이 “집값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송계아가 “1,100만 냥입니다.”라고 답했다.
비싼 집값에 놀란 여승진이 “어찌 그렇게도 많은 돈을 주고 사셨는지요?”라고 반문했다. 송계아가 “100만 냥은 집값이고, 1,000만 냥은 대신과 이웃이 되기 위해 웃돈으로 지불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나온 말이 ‘백만 냥으로 집을 사고, 천만 냥으로 이웃을 산다’는 ‘백만매택(百萬買宅), 천만매린(千萬買隣)’이다.
좋은 집의 조건은 다양하겠지만 송계아는 집을 고르는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을 첫 번째로 여긴 것이다. 재력을 겸비한 이웃도 학벌이 좋은 지식인도 아닌 배려할 줄 아는 여승진 같은 좋은 이웃이 필요했던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4년 7월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 이야기를 인용하여 “백금매옥, 천금매린, 호린거금불환(百金買屋, 千金買隣, 好隣居金不換), 즉 백만금으로는 집을 사고, 천만금으로는 이웃을 사지만, 좋은 이웃은 돈과도 바꾸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어떤가? 새 아파트로 이사 간 사람이 이사떡을 돌리니까 주민의 절반 이상은 아예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또 벨을 누르면 애가 깼다고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젊은 아주머니들의 이런 태도에는 큰 문제가 있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 함에도 사람 귀한 줄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직장에서 넉넉한 월급 받아 괜찮은 아파트에서 살면 당장은 남에게 아쉬울 게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좋은 이웃은 큰돈을 들여서라도 인연을 맺어야 한다. 이웃 간에 사이가 좋지 않다면 관계를 회복하려고 서로 노력해야 한다. 이웃과 잘 지내는 것은 이웃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위하는 길이다. 좋은 이웃을 만나려면 내가 먼저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하고, 좋은 이웃을 만나지 못했다면 찾아다녀야 한다.
교육환경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한 맹자 어머니의 삼천지교 교훈도 되새겨야 한다. 큰일이 벌어졌을 때는 이웃뿐이다. 원친불여근린(遠親不如近隣)이라고,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속담과 같다.
어떤가! 좋은 이웃과 함께하려고 집값의 열 배를 더 지불한 송계아에게 여승진이 어찌 감동하지 않았겠는가. 예로부터 좋은 이웃, 좋은 친구와 함께 산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큰 행복이다. 삭풍이 불어대는 세모에 더 절실히 필요하다.
/이태현 고원공간정보 부회장, 전 무주부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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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12-16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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