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12월 22일 14시50분
[신생전북]'이후전망'이 없기에 촛불은 아름답다
51,공동체는 있는가
12월 21일 새벽 나는 서울 종로3가에서 해장국을 먹었다. 방 주인만 바뀌고 혁명은 없을지라도 혁명이 없는 무정체성의 촛불이기에 국가도 당도 포섭할 수 없는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무정체성의 풀들이기에 그 풀들의 연대가 그늘이 우주를 바꾸는 사건이기에 고궁을 나오며 설렁탕집 여자에 화가 나던 그 사소한 화에 화를 내던 김수영 시인을 위로하며 내란사태에도 우거지국에 소주를 마실 수 있는 이 아침이 고마운데 눈을 뒤집어쓴 전라선 열차가 도착한 용산에서 땅속으로 전철을 타고 온 나는 풀들의 도래하지 않은 공동체를 껴안고 내란 수괴와 부역자들에게 침을 뱉으며 종로3가 우거지국에 소주로 해장을 하는데 밖에는 눈들이 두런거린다
1. 이후전망이 없어 아름답다
윤석열을 끌어내리고 현재의 민주를 지키려는 촛불은 아름답다. 신자유주의 타도 같은 '이후전망'이 없다고 진지한 전망을 고심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이후전망'이 없어도 아름답다.
촛불은 장기적 무목적성의 자유로운 연대이기에 그 자체로서 국가나 특정당(이하 국가로 통칭, 국가와 나라는 다르다)에 포획되지 않는 타자들이다. 국가에 가장 위협이 되는 이들은 국가의 정체성에 포함되지 않는 타자다.
그 타자가 공산주의도 아니고, 생태주의도 아니고, 시장에 종속되지도 않는, 목적성이 없는 무정체성의 타자라면 국가는 그들을 내놓고 공격할 수도 없고, 국가의 주권으로 포섭할 수도 없게 된다. 국가는 공산주의자라면 내놓고 공격할 수 있다. 무정체성의 자유로운 타자들은 지휘받지 않는 연대에 필요에 따라 참여하기에 국가에 가장 위협적 세력이 된다.
위와 같이 본질성, 규정성이 없는 임의적 공동체가 국가의 강력한 위협이 된다는 사유를 한 이는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 (Giorgio Agamben, 1942~)이다.
2. 촛불은 다중(多衆)이 아니라 다중(多重)이다
아감벤의 사유에서 정체성이 없다는 것을 한국의 촛불을 들어 말하면 이렇다. 촛불은 임의적, 가변적 정치공동체로서, 어떤 00주의라는 1자적 동일성의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천만 개의 촛불은 천만 개의 다양성이 흐름으로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정체성이 없다는 것은 국가적 정체성이 없다는 뜻이지 촛불 하나하나가 정체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촛불은 동일성의 다중체(多衆)인가? 자유로운 다중성(多重)의 연대인가? 촛불은 국가 안에 있었을까? 국가 밖에 있었을까? 1자라는 동일자의 주체철학을 불태웠을까?
촛불은 '탄핵, 퇴출'이라는 목적과 공동의 정치적 목적은 가졌지만 국가 자체, 이후 정치 즉 이후 세계에 대해 공유된 어떤 전망도 없었다. 즉 국가 자체에 대한 어떤 목적성의 정체성도 가지지 않았는데도 정치적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목적 없는 수단", "순수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촛불은 "대표로 재현될 수 있는 아무런 정체성도 갖지 않는 존재"여서 그것은 현국가와 무관하다. 국가의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 국가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국가로 포섭할 수도, 국가가 내놓고 압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앞선 논의에서 국가가 공격할 수 없다는 뜻은 최루탄, 경찰, 구속 등이라는 법집행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국가의 적으로 공공연하게 규정할 수 없다는 뜻도 아니다. 중앙지휘자적인 목적성이 없다는 점에서 무목적성의 연대는 임의적, 가변적이기에 기존 국가의 주권질서, 기성질서에 포섭할 수 없다는 뜻이다. "국가, 주권 자체에 대한 타자로서의 생명"이 전환세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아감벤은 사유하게 한다. 그의 저서가 '도래하는 공동체'인 것은 그래서다.
전주 남부시장 운암집의 콩나물국밥 토렴하는 모습은 공동체를 깊게 생각하게 한다. 공동체는 도래하는가
3. 원리 없음이 자유다
아감벤의 논의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는 아나키즘의 논지를 자신의 방식으로 전개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아나키즘은 흔히 오독하듯이 "무정부"가 아니다. 아나키즘은 자유로운 존재의 생성력을 1자 동일자의 밖에서 사유하기에 목적성을 강제하지 않는다. 주체철학은 개별자들의 고유성을 드러낼 때는 자유이다. 자유로서 타자를 만나기에 타자 또한 자유이다. 자유로서 만나기에 평등하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 주체성이란 자유를 타자에게 강제할 때는 1자동일화의 논리로 되고 이로부터 지배•피지배의 억압과 차별, 국가의 지배, 침략을 낳았다. 주체는 자유의 철학이기도 하고, 동시에 폭력의 철학이기도 허다. 민족주의, 국가주의, 자유주의, 생태주의....주의는 종종 주체철학의 폭력에 빠지기도 한다. 민족을 사랑하지만 민족주의가 별로인 까닭이다. 민족사관을 지지하지만 민족주의 사관은 글쎄다. 생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나의 주체성을 포기한다는 것은 자유를 포기하는 존재가 된다. 이 경우 주체성의 상실은 곧 죽음이다. 나의 주체성을 타자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타자와 연합(또는 연대)하는 것은 가능한가? 계급성의 공동체는 자유로운 주체들의 주체성을 파괴하지 않고 공동분모를 추출하여 연대하는 다중성의 연합일까? 그렇다면 굳이 계급공동체라는 개념이 필요할까? 계급에는 주체성을 파괴하는 1자동일화의 원리가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과연 프롤레타리아독재라는 개념은 무엇일까? 자유로운 주체들의 연합으로서 기쁨의 공동체인가? 도리어 형틀(거푸집)로 주조한 붕어빵 프롤레타리아는 아닐까? 계급공동체는 근원적으로 모래성 같은 허망한 꿈이지는 않을까? 계급공동체는 자발적 기쁨의 연대를 1자적 전위당에 종속시키는 자발적 복종인 것은 아닐까?
주체가 타자를 억압하지 않는 것으로서 마치 기쁨의 공동체인 연인과 같은 그런 공동체는 가능한가? 타자의 주체성과 나의 주체성이 서로를 억압하지 않는 것, 마르크스의 말을 빌리면 1인은 만인을 위해, 만인은 1인을 위한다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자개연)"은 어떻게 실현가능하다는 것인가? 자개연은 무계급사회일 텐데 그 여행길에 계급공동체라는 중간역이 필요한 것일까?
4. 저항의 근원적 실체는 존재의 생성력이다
저항의 근원적 실체는 주체와 타자와의 마주침에서 발생하는 존재의 생성력이다. 어떤 이들은 1자의 논리에 동일화되고, 어떤 이들은 저항하게 된다.
마르크스의 논의는 소유의 물적 토대로부터 발생하는 존재의 계급적 성격으로부터 저항이 발생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노동계급은 왜 생태의식 즉 녹색계급이 되지 못하는가? 녹색계급의 존재 요건은 무엇인가? 노동계급은 탈성장이나 반핵에 동의하는가? 저항이 다차원화된 시대에 계급적 존재를 우선시하는 저항논리는 타당한 것일까? 동물복지의식을 계급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계급은 소유의 물적 조건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였다. 계급이 해방의 주된 저항주체인가? 를 다시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은 서로 다른 1자의 동일화 논리 아닌가? 그렇다면 1자의 지배가 자리바꿈만 하는 것은 아닌가? 계급은 또 다른 동일자인 것이다.
1자의 동일자와 이에 맞서는 다중성의 자유존재들이 구성하는 연대체는 서로 흐르는 연대자로서 다중이다. 다중은 다중(多衆)이 아니고 다중(多重)이다. 겹쳐진 존재들이다. 네그리의 multitude를 다중(多衆)으로 번역한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다양성의 겹침은 그 자체로 새로운 특질을 구성하기에 집합적 개념에 가까운 다중(多衆)보다는 특질을 표현하는 다중(多重)이 적합해 보인다. 나는 네그리의 공통적인 것에 기반한 다중(多衆)에 회의적이다.
저항은 다양한 가능성의 존재들에게 강제되는 1자동일화의 폭력으로부터 발생한다. 남과 여, 국가와 자유민, 피부색, 민족성, 지역과 지역, 문화와 문화, 소유와 소유, 세대와 세대, 능력과 능력 등이 충돌하면서 발생한다. 계급성으로 일반화할 수 없다. 차이의 존재를 승인하지 않는 것에서 저항이 발생한다.
국민, 인민이란 국가의 정체성을 자유로운 존재들에게 강제하는 동일화가 관철되는 존재다. 국가의 주체성을 자유로운 타자들에게 강요하는 폭력에 굴복한 것이 국민이고 인민이다. 근대자유민주주의, 근대인민민주주의는 국민이라는 동일자의 범주 안에 있다. 역사적 민주는 민주가 아니라 폭력이다. 자유란 타자를 객체화, 대상화하는 1자적 동일화에 저항하는 것이다.
/강주영(건축시공기술사·목수·전 교육부 대표 시민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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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12-2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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