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1월 07일 16시24분
[온누리]아무개
엊그제 일요일 영화 하얼빈을 보고왔다. 혹자는 지루하다고도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 시절이 너무 슬펐다. 혹한의 겨울 눈보라를 헤치고 만주벌판을 헤메었을 독립군들을 생각하니 애닯팠고, 하염없는 존경의 마음이 일어서였다. 영화가 끝날 쯤에는 울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깔리는 나레이션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 앞에 어떠한 역경이 닥치더라도 절대 멈춰서는 아니 된다. 금년에 못 이루면 다시 내년에 도모하고, 내년, 내후년, 10년, 100년까지 가서라도 반드시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한 다음에라야 그만둘 것이다.”라는 비장한 다짐은 최근 국회 앞, 헌재 앞, 남태령역 앞, 한남동 관저 앞에 모였던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12월 3일 밤 선포된 비상계엄은 이튿날 새벽 4시 30분 계엄 해제가 최종 의결되며 절체절명의 순간을 넘겼다. 불과 여섯시간만에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계엄이 선포되자 마자 국회 앞으로 달려가 장갑차를 막아서고, 계엄군의 총부리 앞에 섰던 시민들 덕분이었다. 이 시민들의 모습에서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할 때마다 싸워왔던 ‘아무개’들이 생각났다.
아무개는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에서 의병을 설명하는 말이었다. “우리는 그저 아무개다. 그 아무개들 모두의 이름이 의병이다. 이름도 얼굴도 없이 살겠지만, 다행히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 위기 때마다 이 한몸 초개처럼 불사르던 이름없는 아무개들 덕분에 우리의 역사는 도도히 흘러왔다.
1987년 6월 항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넥타이부대, 1980년 5월 계엄군에 맞서 싸웠던 시민군과 그들에게 주먹밥을 나누어주던 시민들, 일제강점기 만주로, 상해로 떠났던 독립운동가들, 1919년 천안 아우내장터와 이리의 남부시장 등 전국 곳곳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200만의 민중들, 1894년 전라도 고부에서 공주 우금치까지 이어졌던 동학농민혁명군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1만여명의 의병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웅치와 이치전투에서 순절한 의병들, 이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이름도 알 수 없는 그저 아무개였다. 누구도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았으나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하나로 모인 아무개들. 어쩌면 조선은, 대한민국은 이들이 있었기에 오천년 장구한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나라가 어두울 때 저마다 자기 집에서 가장 밝은 것을 가지고 나오는 국민’이라는 외신기자의 말에 움츠렀던 어깨가 조금 펴졌다. 이 위기를 우리는 또 이겨낼 것이다. 아무개들의 힘으로.
/문이화(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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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1-08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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