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2월 05일 14시28분
[문화로 이야기꽃]차 한잔의 화평과 평화
우리는 흔히 ‘차나 한잔하자’라는 말을 주고받는다. 이 말에는 단순한 갈증 해소를 넘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나눌 시간을 기대한다. 차를 마시는 것은 그 자체로 쉼이며, 복잡한 심경을 정리해 차분히 가라앉히는 자리다.
차마시기 에서는 온도와 시간의 절묘한 조화가 생명이다. 너무 뜨겁거나 차가우면 그 묘한 온기와 맛을 느낄 수 없다. 적절한 온도를 기다리면서 자연스럽게 여유를 숨쉰다. 빠르게 홀짝 마셔버리는 것이 아니라, 한 모금씩 천천히 음미하면서 조급한 마음을 다스리게 된다. 스스로를 다스리는 이 지혜는 그대로 우리 일상 여기저기에 스며들면서 조화를 이룬다. 인생에서 크고 작은 주요 결정은 기다림과 인내 속에서 더욱 깊어진다. 내면의 조화와 인간관계의 평온함을 모두 예약하는 작은 쉼들이다.
삶이 까다롭지 않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차를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정신 수양과 예절의 도구로 삼았다. 차를 즐기는 선비들은 찻잔을 곁에 두고 학문을 깊게 하고 사색을 더 했다. 설과 추석에는 차례를 올리는 것을 중요한 예절로 삼아 지금까지도 명절 의식으로 모시고 있지 않은가. 중국인들은 차 마시기를 자연과 조화를 누리는 과정으로 삼는다. 일본인들도 다도라고 하는 형식화된 의식으로 심신의 조화를 실천하려 한다.
서양에서도 차는 평화의 문화를 상징했다. 영국인들은 오후 시간에 짬을 내 차 한잔(afternoon tea)과 다과를 나누며 여유와 사교를 즐긴다. 인도인들은 차 한잔(chai)으로 거리에서도 서로 정을 나누는 인간관계를 이어간다. 터키의 차 문화는 손님을 정성껏 환대하는 예절과 따뜻한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차 한잔은 이처럼 사람들을 연결하고, 화평을 상징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훌륭했었다. 차를 마시는 행위 자체가 조화와 균형을 의미하고 실천하는 행동이었다. 이처럼 차를 즐기는 생활문화는 사회 속 다양한 갈등을 줄이고, 사람들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데 기여해왔다.
우리 시대는 지금 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성숙한 이성과 충만한 지성을 자랑하면서도 합의 도달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정치적, 이념적 대립은 더욱 격화되고 있으며, 자본주의 욕망의 끝에서 소유와 분배 사이의 갈등도 점점 더 깊어지는 듯하다. 이러한 시대에 차 한 잔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화평이라는 것은 작은 조각 들이 모여서 큰 평화를 만든다. 차 한잔을 나누며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누는 작은 마음이 평화를 향한 첫걸음이다. 분쟁이 멈추지 않는 지역에서 정치 리더들이 모여 ‘평화의 차’라는 이름 아래 모여서 함께 차를 마시며 화합을 도모하는 프로젝트를 펼칠만 하다. 차 한잔을 나누는 시간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작은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는 저 멀리에 있지 않다. 차 한잔을 음미하며 나 자신과 화해하고, 가족이나 친구와 차를 마시며 따뜻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평화를 실천하는 첫걸음이다. 차를 끓이며 기다리는 시간,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향을 맡는 짧은 시간에 우리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처음으로 돌아가 머물게 된다.
아무리 바쁘고 세상사에 지쳐 허덕이더라도 하루 단 몇 분이라도 차 한잔을 들고 자신을 돌아보자. 간단히 소통하며 해결할 일들이 오해로 이어가 갈등과 문제를 키워가기 전에 차를 나누며 소통하는 그 순간에 바로 화평과 평화가 시작될 것이다.
화평이 내적 정신적 상태를 중시하는 것이라면, 평화는 외적 사회적 상태를 중시하는 말이다. 마음의 화평, 세계의 평화라고 하는 이상적인 상태를 자신에게서 먼저 만들어 간다면 이야말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평화 아닐까?
세상은 소란스럽고 바깥 날씨는 차갑다. 오늘 지금 조용히 차한잔의 여유를 가져보자. 그 작은 순간이 우리의 삶을 따뜻하고 화평하게 만들고, 우리 사는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어주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흥재(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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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2-06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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