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정성학 - 2025년 02월 12일 16시12분
국가 믿고 귀농한 청년농 졸속농정에 울분
평가제 급도입에 청년농 육성자금 신청자 75% 탈락 소동쌀농업 강제 감축 등 잇단 농업홀대 논란에 농업계 대혼란
“귀농만 하면 다 밀어준다고 해 큰 결심을 했는데 갑자기 시설자금을 못 빌려준다고 하면 어떡하냐…정부를 믿고 땅 사고 장비까지 주문했다 파산할뻔 했다.”
서울에서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무주로 귀농한 삼십대 청년농업인 A씨의 분통이다. 그는 부푼 꿈을 안고 지난 2년간 농업기술을 배우고 전재산을 통틀어 땅을 매입하는 등 스마트팜 창업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최근 숨이 멎어버릴 것 같은 소식에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일정조건만 갖추면 다 대출해주던 청년·후계농 육성자금, 즉 창업자금을 신청했다 탈락했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선별적인 평가제가 도입된 탓이다. 자칫 파산할뻔한 그는 우여곡절 끝에 뒤늦게 구제를 받았지만 충격과 분노에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A씨처럼 졸속에 가까운 농정에 휘말려 낭패를 본 사례가 한둘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윤정훈 전북자치도의원(교육위·무주)에 따르면 올해 청년·후계농 육성자금을 신청한 도내 청년농과 후계농 610명(1,916억원) 중 무려 55%인 335명(1,156억원)이 탈락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100명은 최근 A씨와 같은 파문이 확산하자 뒤늦게 지원 대상자로 추가 선정한 사례였다. 이 같은 문제는 전국적으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급작스레 선별 평가제를 도입한 탓이다. 신청자는 많고, 예산은 적다보니 내놓은 ‘꼼수’란 지적이다.
윤석열정부의 청년농 3만명 육성계획에 맞추려다보니 말썽난 문제란 얘기다. 실제로 연간 약 2,000명 규모였던 지원 대상자는 재작년 4,000명으로 두배 늘었고 지난해는 더 많은 5,000명으로 확대됐다.
반대로 지난해 8,000억 원대였던 사업비는 올해 6,000억 원대로 25% 급감했다. 정부를 믿고 귀농을 결심한 청년농들이 울분을 터뜨린 배경이다.
농림부는 소동이 커지자 부랴부랴 약 4,500억원 규모의 추경을 전제로 신청자 모두 차례로 구제하겠다며 사태수습에 나섰지만 농정에 대한 불신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분위기다.
올 봄 모든 쌀농가를 대상으로 한 벼 재배면적 조정제 시행, 즉 국내산 쌀 생산량 강제 감축을 앞두고 농업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윤 의원은 “정부 정책 하나만 믿고 아무런 기반조차 없는 지역에 내려와 ‘힘돈사(힘 들고, 돈 안되고, 사회적 존중도 못받는)’, 농업에 청춘을 건 청년들의 좌절과 고통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는 더이상 피해자가 없도록, 특히 영농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신속히 문제를 수습하고 정책의 신뢰도 또한 되찾을 수 있도록 주력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아울러 전북자치도를 향해선 “어려움에 처한 농업과 농촌을 살리겠다고, 농촌에서 살아보겠다고, 우리 지역을 찾은 청년농들의 귀한 결심과 노력을 지켜줘야 한다”며 “이들이 지역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계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도의회는 지난 11일 채택한 대정부 건의안을 통해 벼 재배면적 조정제 백지화도 강력 촉구했다.
문제의 정책은 수입산이 아닌 국내산 쌀 생산량을 줄여 급락한 쌀값을 안정화하는데 방점이 찍혔다. 감축 목표는 전국적으로 총 8만㏊, 이 가운데 전북은 15.2%(1만2,163㏊)가 제시됐다.
이는 도내 전체 벼 재배면적(10만1,000㏊) 약 12% 수준으로, 도내 9만여 농가들은 모두 자신의 논 12% 가량에 벼 대신 밭작물을 심거나 농사를 포기해야만 한다. 이를 거부한 농가는 공공비축미 수매 제한 등 불이익이 뒤따른다.
도의회는 이를 농민의 영농권 침해로 규정한 채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했다.
/정성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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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2-13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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