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2월 17일 07시47분
오독의 즐거움
[책마주보기]헤럴드 블룸의 '영향에 대한 불안'(김혜영)
그는 시적 영향은 항상 이전의 시인을 오독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 오독은 실제로 필연적으로 오역인 창조적 교정의 행위”라고 전제한 후 시적 영향의 역사를 언급한다. “르네상스 이후 주요 서구 시 전통은 불안과 자기 구원적 풍자, 왜곡의 역사이며, 도착적이고 의도적인 수정주의의 역사이며, 이 수정주의 없이는 근대시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 부서진 도자기의 두 조각을 다시 맞추어 완성한다는 의미의 테세라를 시적 완성 혹은 시적 대조에 대입해 설명한다. 이후 반복과 불연속성의 관점에서 영향 관계를 언급하면서 시인이라면 창조적 오독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경험하라고 강조한다. 때문에 블룸에게 있어 창조적 타락의 대표적인 인물은 사탄이다. 그는 인간을 “시인으로 만드는 힘은 악마적”이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악마는 선악의 기준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반역적 창조를 대변하는 인물인 셈이다. 그 다음 수정률은 아스케시스로서 이는 고독의 상태에 도달하려고 하는 자기정화 움직임이다. 후대 시인은 창작 과정에서 변형을 추구하는 수정운동을 겪는데, 선구자에 대한 공격성을 내면화하여 자신에게로 향하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상상력을 축소시키고 동시에 동일시를 통해 선구자의 상상력을 축소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블룸의 수정률은 시가 창조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가 선 텍스트에 대해 가하는 수정 작업으로 볼 수 있다. 그 비율들은 수축(제한)과 확장(재현)이 서로에게 답하는 대체의 원리로 순환한다고 본다. 일테면 셰익스피어는 말로를 이탈하면서 다름을 창조했다. 여기서 이탈은 긍정적 변화를 의미한다. 이는 새로움이자 창조의 원천으로써 말로가 없었다면 셰익스피어의 위대함도 없었을 것이라는 추론을 가능케한다. 가까운 예로 이건청의 시인의 ‘시인’이라는 시와 복효근 시인의 시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이 좋은 예일 수 있겠다.
선자의 발자국을 밟는 과정에서 영향에 대한 불안이 오독을 만들기도 하고, 그 오독이 영감의 기제로 작동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영향에 대한 불안은 작품과 다른 작품들 상호 간의 직·간접적인 영향 관계나 텍스트 간의 상호 교차가 이루어지면서 오독이 개입하기도 하는데, 일련의 과정은 창조적 과정으로써 또 하나의 즐거움인 셈이다.
김혜영 작가는
2018년 ‘수필과비평’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부안학생교육문화관 공감 독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면 : 2025-02-18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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