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내 탓도 하면서 살자
현대인들은 자신의 언행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모른다. 설령 잘못을 알았다고 해도 절대 사과를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유교의식이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뇌리에 잠재하고 있다. 정직과 겸손이라는 단어가 자신을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재량 해보자.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행동을 비교해보면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모색하는 방향이 전혀 다르다. 성공한 사람은 문제의 해결책을 자신에게서 찾으려 하고, 실패한 사람은 함께한 사람에게 돌려 상대를 탓한다.
IMF 당시(1997년) 천주교에서 ‘네 덕이요, 내 탓이요’란 스티커를 나눠주는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다. 반응은 어땠을까? 어리석은 사람도 남을 탓하는 데는 매우 총명하다. 유독 자신에게만 관대한 심리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수시로 일어날 수 있어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게, 우리의 삶이다. 살다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해관계, 감정과 의견의 충돌, 등으로 일어나는 다툼은 비일비재하다. 이런 문제에 부딪혔을 때, 사람들은 자신은 잘못한 점이 없다고 언성을 높이면서 주위에서 핑계를 찾는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의견을 들었거나, 현장에서 상황을 목격했을 땐 분명한 잘못이 있는데도 말이다. 자신에게 잘못이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책임을 지거나, 자존심이 손상되어 고통스럽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그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시도한 일이 잘 풀리면 내가 잘했고, 일이 어긋나게 되면 불리함을 상대에게 떠넘기려는 사회현상이다.
실수나 실패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매사에 실패를 두려워하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좌절과 실수는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디딤돌이 되어 성공으로 가는 과정이다. 실수나 실패를 통해서 배우고, 깨닫고, 반성하면서 성장해가고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비 온 뒤에 땅은 더욱 굳어 진다.’고 했다.
경쟁 사회는 사람과 사람의 충돌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의 해결을 자신에게서 찾으려 하면 한층 더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모해 간다. 충돌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잘못이 왜 없으리오마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 찾다 보면 충돌하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한편으로는 해결책도 떠오를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어 내듯이 사려 깊고 지혜로운 태도가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리라.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은 상대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이십일 세기는 솔직한 고백이 무기가 되는 시대 상황이며, 인생이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은 지금, 이 시간이라고 한다.
타인의 잘못을 뒷담화로 풀면서 조롱을 즐긴다면 의도와는 다르게 피해가 반드시 돌아온다. 왜곡은 자신이 선택한 단어 하나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에 항상 찝찝해야 한다. 이 찝찝함의 크기가 곧 공공성의 두께다. 타인의 잘못과 고통을 동물원에서 처럼,구경만 하다가는 자기도 어느 땐가는 그 부류에 끼이게 될 것이다.
가난에 주린 사람은 나눔에 인색하고, 인격이 덜 여문 사람은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고 했다. 진실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사랑 노래를 헤프게 불러대는 사람치고 믿을만한 언행을 찾아볼 수 없듯이 자기주장만 끝까지 옳다고 굽히지 않는 사람과는 아예 관계를 멀리해두는 것이 좋으리라. ‘나만 잘살면 된다.’라는 사고가 사회 전반에 걸쳐 각자도생의 싸움판으로 변해가고 있다.
‘내 탓’과 ‘네 탓’은 음운(音韻) 하나의 차이지만 결과는 엄청나게 크다. 반구저기(反求諸己)"라는 성어(成語)는 허물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구한다."라는 뜻이다.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는 순간 상대를 가리키는 건, 집게손가락 하나지만, 나머지 세 손가락은 바로 자신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아두자. 독일의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는 "남을 탓하는 것은 자신의 무능함을 숨기는 하나의 방법이다."라고 했다.
/김형중(전 원광보건대 교수.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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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3-26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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