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스러운 터에 이태조 어진을 모시다
[원지의 문(文)·화(畵) 스케치] <32> 경기전 정전
전주는 태조 이성계의 본향으로 그 선대들이 살았던 조선왕조의 발상지, 즉 풍패지향(豊沛之鄕)이다. 때문에 조선은 건국직후 전주에 태조 어진(영정)을 모시고, 그 건물(眞殿, 전주 경기전 정전 보물 제1578호)을 새 왕조가 일어난 경사스런 터라는 뜻으로 ‘경기전(사적 제339호)’이라 이름했다.
경기전은 조선 왕조를 개국시킨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곳이다. 태조 어진을 모신 곳을 어용전, 태조진전 등으로 명명하던 것을 1442년(세종24년)에 경기전이라고 명명하였다. 1410년에 창건된 경기전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고 1614년에 중건했다. 1872년 태조 어진을 새롭게 모사하, 봉안하면서 경기전의 전반적인 보수가 이루어졌다.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 어진이 봉안된 정전 기능과 품위에 기준한 내신문 내의 신로 및 향로의 엄격한 격식, 그리고 정전과 배례청 평면 조합 및 어방구조 등이 보물로서의 문화유산 가치가 인정된다.
경기전은 사자, 거북 등 아이콘이 의미하는 코드를 통해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떤 유토피아를 꿈꾸었는지를 영화처럼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이곳에는 두 개의 숨은 문화코드가 있는데 하나는 경기전 정문 밖 도로가에 있는 하마비이고, 또 하나는 진전의 거북이 이야기이다.
경기전 문 앞으로 걸음을 옮기면 우선 하마비(조경묘에는 이와 다른 하마비가 있음)를 만나게 된다. ‘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至此皆下馬 雜人毋得入)’이라고 새겨진 풍상에 닳은 비석. 그 앞에서는 계급의 높고 낮음이나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아울러 경기전 내부로는 잡인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리라. 이전에는 태조 어진을 모셔놓은 진전(현재 모사본)이 있었는데, 그 중앙에 ‘정(丁)’자 형의 돌출된 배향공간이 있다.
진전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 돌출된 지붕측면 널판지가 정면으로 보이는데, 여기에 나무로 된 조각품이 붙어 있다. 형상으로 보아 틀림없는 한 쌍의 거북이다. 한 마리는 목이 잘려나갔지만, 나머지 한 마리는 목이 온전하게 남아있다.
거북은 모두가 알다시피 수명장수를 상징한다. 그래서 비석 받침돌도 거북이 형이다. 물론 불교에서 거북은 용궁 즉 부처의 세계 내지 그곳으로 안내하는 인도자이기도 하다.
어느 목공(木工)인가 경기전을 완성하고 그 영원함을 위해 지붕에 암수 두 마리의 거북이를 올려놓았던 것이다. 거북이가 물에서 살고, 진전이 목조 건축인 점에서 특히 화재막이용 거북이일 가능성이 크다. 음양의 조화를 이루면서 화마를 피해 진전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염원의 발현은 아니었을까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글=이종근·그림=원지(XU WENJI)
지면 : 2025-03-27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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