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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3월 30일 14시42분

[글로벌 리포트] 테러 : 정치와 종교의 어두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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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14일, 역사는 거대한 격랑 속에서 또 한 번 방향을 바꾸었다. 먼 과거, 성서의 시대부터 논쟁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팔레스타인에 새로운 국기가 휘날렸기 때문이다. 다윗의 별을 국기로 한 이스라엘은 단순한 국가 탄생을 넘어, 세계 질서의 한 축을 흔드는 거대한 지각 변동을 예고했다.



잃어버린 땅을 되찾았다는 유대인들의 환희는 자신들의 고향을 하루아침에 강대국들의 거래로 빼앗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절망과 충돌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뿌리 깊은 상처는 단순한 영토 분쟁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종교와 민족, 역사와 이념이 얽힌 채 반세기 이상 피로 얼룩진 분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거대한 충돌 속에서 종교를 기반으로 한 정치적 테러리즘이라는 새로운 괴물이 태어났고, 이스라엘과 서구를 신제국주의로 규정하며 이슬람 세계는 자신들의 정체성 확립및 물리적 저항 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은 총 네가지 영역으로 규정할 수 있다. 시리아의 범아랍주의,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즘,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 이란의 호메이니 혁명이다.



20세기 초반 오스만 제국의 붕괴와 함께 태동한 범아랍주의는 투르크족으로부터 지배를 받고 있던 아랍 민족을 하나의 종교 그리고 민족적, 문화적 공동체로 형성해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출발하였다. 범아랍주의는 유럽 열강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아랍 연맹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그들은 시리아 내에서 바트당을 만들고 세속적 사회주의와 결탁한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다.



와하비즘은 18세기 아라비아반도의 종교학자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하브에 의해 창시된 이슬람 개혁 운동을 기본 사상으로, 이슬람을 순수한 형태로 되돌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슬람 세계에서 유행하던 수피즘과 시아파를 이교적인 요소로 간주하고 철저히 배격했다.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 아랍 세계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와하비즘은 범아랍주의가 아닌 ‘범이슬람주의’를 통해 이스라엘과 서구에 대응하려 노력했다.







1928년 이집트에서 하산 알 반나는 무슬림 형제단을 창설했다. 이슬람 사회의 근대화를 비판하고, 정치와 종교가 결합된 이상적인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했다. 무슬림 형제단은 서구 식민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슬람 법 ‘샤리아’를 국가 운영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부터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들은 무장 조직을 결성하여 이스라엘과 직접 충돌했으며, 현대에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로 이어졌다. 무슬림 형제단은 범아랍주의와도 때때로 협력했지만, 그 중심 사상이 종교적 요소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세속적 범아랍주의와는 차이가 있었다.

1979년, 이란은 팔라비 왕조의 서구 지향적 통치에 대한 반발과 경제적 불안정 그리고 종교적 불만이 결합 되면서 대규모 혁명이 일어났다. 그 중심에는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있었다. 호메이니는 ‘이슬람 법에 기반한 국가’를 주장하며 성직자가 국가를 운영하는 체제를 구상했다. 그의 신정 정치 모델은 기존의 세속적 범아랍주의나 와하비즘과는 또 다른 노선을 제시하며 이란을 시아파 중심의 신정 국가로 변모시켰다. 이란 혁명 이후 이란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헤즈볼라 등을 지원하며, 이스라엘과 서구에 맞서는 전략을 펼쳤다.



이 세력들은 서구-이스라엘을 과거 십자군 전쟁과 19세기 식민 제국주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지속적인 이슬람 정체성 운동과 테러를 병합하여 서구-이스라엘을 향해 성전을 시작했다.



1972년 9월, 전 세계가 독일 뮌헨에서 열린 제20회 하계 올림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올림픽 정신을 기리기 위해 모였던 선수들과 관중들은 뜻밖의 공포를 마주하게 된다. 9월 5일 새벽, 검은 복장을 한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촌에 침입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인질로 붙잡고,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협상은 길어졌고, 독일 경찰은 구출 작전을 준비했지만, 준비 부족과 정보 실패가 화를 불렀다. 마침내, 테러리스트들은 인질들을 헬리콥터에 태워 비행장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벌어진 총격전과 폭발로 인해 이스라엘 선수 전원이 사망하고, 테러범 5명이 사살되었다. 전 세계는 경악했다. 평화의 제전으로 불리던 올림픽은 테러리즘이 국제 사회에 깊이 침투했음을 보여주는 끔찍한 비극으로 끝났다. 이스라엘은 즉각 보복을 선언하며, ‘분노의 검’ 작전을 개시해 테러에 가담한 검은 9월단 요원들을 전 세계에서 암살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이 국제적인 차원으로 확산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83년에는 지중해의 진주인 베이루트 폭발 사건이 중동의 판도를 더욱 악화시켰다. 레바논 내전이 한창이던 그해 10월 23일, 미국과 프랑스 평화 유지군이 주둔하던 해병대 막사 앞에서 지옥과 같은 폭발이 일어났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무장 조직 헤즈볼라는 폭발물이 가득 실린 트럭을 몰고 미 해병대 본부로 돌진했다. 트럭이 건물에 충돌하는 순간, 베이루트 도심은 거대한 폭발로 뒤흔들렸다. 건물이 붕괴되면서 241명의 미군이 순식간에 사망했다. 몇 초 뒤, 또 다른 자살 폭탄 공격이 프랑스군 본부를 강타하며 58명의 프랑스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은 분노했지만, 결국 1984년 미군은 레바논에서 철수했다. 이 테러는 현대 중동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이 서구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감행한 가장 치명적인 공격 중 하나였으며, 이란과 미국의 대립이 본격적으로 격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아침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출근길에 나섰고, 공항에서는 수백 대의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질 일이 벌어졌다. 오전 8시 46분, 아메리칸 항공 11편이 뉴욕 세계무역센터의 북쪽 타워를 들이받았다. 사람들은 이것이 단순한 사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17분 뒤,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이 남쪽 타워에 충돌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이는 사고가 아니라 테러였다.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알카에다는 비행기 4대를 납치하여 미국의 심장을 강타했다. 세 번째 비행기는 미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을 공격했고, 네 번째 비행기(유나이티드 93편)는 승객들의 저항으로 인해 펜실베이니아의 들판에 추락했다. 하지만 뉴욕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두 개의 거대한 타워가 무너지는 모습은 TV 화면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고, 그날 약 3,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은 즉각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테러 공격을 넘어, 미국과 서구 세계 전체를 중동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결국 미국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이후 2003년에는 이라크까지 전쟁을 확대하며 중동 정세는 더욱 복잡하게 꼬이게 되었다.



2015년 1월 7일 아침, 파리의 한적한 거리에 자리 잡은 풍자 잡지사 샤를리 에브도는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 잡지는 자유로운 풍자와 날카로운 비판으로 유명했으며, 그들의 만평은 항상 도발적이었다. 그만큼 적도 많았지만, 그들은 두려움 없이 펜을 들었다. 풍자는 그들에게 단순한 표현 방식이 아니라, 독재와 광신주의에 맞서는 강력한 저항 수단이었다. 그러나 그날, 펜은 무력하게 총구 앞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날 아침, 두 남자가 검은 복장에 복면을 쓴 채 잡지사 건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손에는 자동소총이 단단히 쥐어져 있었다. 그들은 쿠아치 형제였으며,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알카에다와 연계되어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신성한 복수라고 믿고 있었고,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이 무함마드를 모욕했다고 여겼다. “무함마드를 모욕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그들의 분노는 외침이 아니라 총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 속에 담겨 있었다. 가장 먼저 총알을 맞은 것은 건물을 지키던 경비원이었다. 비명 소리가 건물 안을 가득 채웠고, 기자들은 당황하며 대피하려 했지만, 결국 짧은 시간에 12명의 소중한 생명이 사라졌다.



세계는 종종 신의 이름으로 불타올랐다. 한 손에는 성서 한 손에는 검, 한 손에는 꾸란 한 손에는 시미터, 민족들과 국가들은 신을 위한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신념의 싸움을 진행했다. 하지만 신은 침묵하고 인간은 신의 뜻을 자의로 해석하며 서로의 피를 흘렸다. 테러리스트들은 신의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목을 학살을 저지르고, 국가들은 이를 단죄하는 명분으로 또 다른 폭력을 행사했다.



칼 슈미트는 정치란 ‘우정과 적대의 구별’ 속에서 형성되며, 궁극적으로 예외상태로 선포할 수 있는 주권자가 결정권을 가진다고 했다. 정치란 본질적으로 ‘예외상태’를 관리하는 것이라고 보았는데 법이 무력해지는 순간에도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존재, 즉 법을 초월한 결정권을 가진 자가 진정한 주권자라고 말했다. 이러한 논리는 극단적 종교 테러리즘과도 닮아 있다. 극단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신의 대리인으로 간주하고, 세속적 법을 초월한 ‘거룩한 예외상태’를 선포했다. 적을 설정하고, 이들을 제거하는 것이 신성한 의무라고 믿으며 법을 초월하여 통치하고자 욕망의 방아쇠를 당긴다. 그들에게는 늘 ‘거룩한 예외상태’가 가능하다.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하면 살인도 정당화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죽음은 영광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종교는 늘 이런 자들에게 명분을 제공하고 정치는 이를 악용했다. ‘우정과 적대의 구별’ ‘거룩한 예외상태’는 법을 초월하는 공포의 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세력 즉, 극단적 종교, 정치 집합체를 설명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현재 광화문에서 전광훈은 ‘국민 저항권’을 주장하며 헌재와 법원을 저격했다. 그는 광화문에 모여 있는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현재의 국가 형태를 부정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겠다고 외쳤다. 그의 집회는 종교 행사로 등록되어 있어 사법적 체계를 교묘하게 회파하고 있다. 또한 세이브 코리아의 손현보는 일요일 교회 정규 예배 시 지속적인 야당 대표를 탄압하는 구호를 성도들에게 복명 복창시키며, 전국적 탄핵 반대 운동과 여론 몰이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내란 우두머리로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 윤석열을 두둔하며 구국의 영웅으로 만들고 있다. 또한 극우 기독교 일부에서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고레스 왕을 윤석열과 비유하며 새로운 성서적 신학적 이데올로기를 만들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거룩한 예외상태’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설정하며, 적을 식별하고 초법적 위세로 헌재의 윤석열 탄핵 인용시 헌재를 공격하겠다는 발언을 서슴치 않고 광장에서 외치고 있다. 이들은 개신교 예배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기도로 집회로 시작하며 중간 중간 변형된 설교 형태의 띄고 있다. 이들 모두 칼 슈미트가 말한 ‘거룩한 예외상태’를 주장하며 정교분리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역사적 유산을 완벽하게 왜곡하고 있다.



존 밀뱅크에 따르면, 근대 정치 이론은 폭력적인 기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홉스의 사회계약론에서 시작된 근대 국가 개념은 자연 상태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가정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권력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따른다. 즉, 국가란 폭력을 독점하고 이를 통제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폭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며, 국가가 이를 합법적으로 행사하는 새로운 형태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존 밀뱅크는 이러한 세속 정치 질서가 테러리즘과 같은 극단적 폭력 형태를 낳는 구조적 원인을 제공한다고 본다. 즉, 정치가 폭력 위에 세워진다면, 종교적 극단주의 역시 같은 논리를 따라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극단적 종교 테러리즘이 근본적으로 세속 정치와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된다. 극단주의 단체들은 자신들을 신의 대리자로 설정하고, 적과 아군을 나누는 정치적 논리를 적용한다. 이는 칼 슈미트가 말한 ‘우정과 적대의 구별’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정치와 신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폭력의 정당화가 이루어진다.



테러리즘과 종교 지도자들의 정치 선동은 신학적으로 볼 때 자기모순적 행위의 결정판이며 이를 악용하는 정치 지도자들은 파시스트의 또 다른 이름이다. 종교가 본래 평화와 구원, 공동체의 회복을 지향해야 한다면, 폭력은 그 목표를 파괴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극단주의 단체들은 국가가 행사하는 폭력을 모방하여 자신들만의 예외 상태를 선포하고, 자신들의 행동을 ‘거룩한 전쟁’으로 규정하며 폭력을 신성화한다.



한국 사회가 시끄럽다. 그 한 가운데 종교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반근대적 현상임은 틀림 없다. 존 밀뱅크의 관점에서 극단적 종교 테러리즘과 세속 정치의 폭력성의 해결 방법을 신학적 평화의 회복에 있다고 말한다. 수 많은 종교 창시자들이 말했던 것 처럼 지금은 평화가 필요하다. 거리에 있는 종교 지도자들의 계몽이 간절히 필요한 시기이다. /우즈베키스탄=정빛나라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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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3-3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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