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손바닥 수필
윤철
수필 한 편의 길이는 얼마 정도가 적당할까? 보통 2백 자 원고지 15매 내외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신춘문예나 문학상 공모 또는 원고 청탁에서 제시한 조건에 익숙해진 선입견이지 수필 한 편의 길이에 대한 제한은 없다. 이 금요수필은 원고지 8매 내외를 요구하고 있듯이 발표 지면의 사정에 따라 길이가 달라진다. 수필로서 요건만 갖추고 있으면 길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수필이다.요즘 추세는 수필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원고지 5매 정도의 짧은 수필(單隨筆)이나 3매 정도의 손바닥 수필(掌髓筆)이 유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의 손바닥 수필 세 편을 익으며 오늘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오늘 하루
오늘은 내 나머지 생의 첫날이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똑같이 주어진 하루지만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오늘처럼 내일도, 모레도 당연히 주어질 것 같지만 그것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신의 소관이다. 그 때문에 어떤 일을 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지난 삶을 돌아본다. 어영부영 보내버린 시간이 회한으로 남지 않도록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누구를 위해서 또 무엇을 바라며 그토록 산 것일까? 언제 하루라도 내 삶의 주인공인 나만을 위해 산 적이 있었는가? 나이가 들고 보니 내 삶에서 나를 돌아보지 못한 후회가 크다. 오늘만이라도 나를 사랑하는 것으로 하루를 고스란히 채워보고 싶다.
뭘 해도 될 것 같은 날
여리고 묽게 불그스름 밝아오는 여명 어딘가엔 생명의 기적이 숨어 있다. 새 하루가 시작되면서 내 생명도 자동으로 연장되었다. 어제 생을 마감한 사람은 누릴 수 없는 오늘이다. 어제와 오늘의 의미가 저승과 이승을 가르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깨닫는다.어제의 피로를 탈탈 털고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두 팔을 활짝 펴고, 허리를 한껏 젖히며 살아있음을 누린다. 몸이 가뿐하다. 무슨 좋은 일이 있을 것 같고 뭘 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권태로울 만큼 변화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잠자리에 들 때면 살아있음보다 더 좋은 일, 더 한 기적은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내일도 눈을 뜰 수 있기를 소망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리라.
마음 가는 대로
세상에는 소중한 것이 많다. 사실 소중한 것 중에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다. 마음도 그중 하나다. 마음을 볼 수는 없지만, 우리를 살게 하고, 웃게 하고, 꿈꾸게 하는 것이 마음 아닌가. 작은 바람에도 쉽게 일렁이는 마음, 누군가 던진 작은 돌멩이에도 수십 개의 너울을 만들고 물방울처럼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연약한 것이 마음이지만, 가장 소중하다는 목숨조차 가벼이 내던질 수 있는 강단도 마음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 마음이 가는 곳에 나의 삶이 있고, 내가 찾는 보물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마음에 귀 기울이되 그것을 억지로 끌고 가려고 애쓰지 않고 순리대로 마음을 따라다니는 하루가 됐으면 좋겠다. 마음 가는 대로 살리라.
윤철 수필가는
'에세이스트' 신인상으로 등단,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역임
수상 : 전북수필문학상, 새전북신문문학상, 리더스에세이문학상 등
수필집 : '칸트에게 보내는 편지', '당신 가족은 안녕한가요', '나를 닮은 타인 그 이름 가족'
(현) 전북특별자치도문인협회 부회장
지면 : 2025-04-11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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