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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4월 27일 14시07분

[글로벌리포트]실크로드 통해 교류했던 인연, 다시금 꽃피우고 있다

실크로드와 파미르 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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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4천 미터가 넘는 파미르 고원에 오르면, 눈부신 설산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사막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과 땅 사이로 솟은 산봉우리들과 계곡들 사이로 대상들의 다닌 길이 있었다. 바람에 실려 오는 모래 냄새와 야크 방울 소리를 들으면, 고대로부터 실크로드를 따라 온 대상들의 여정을 상상하게 된다. 고원과 초원, 오아시스의 길 위에서 이야기가 가득한 무대를 보게 되면 역사가 살아 숨쉬는 것을 경험한다. 옛 대상들이 상상하고 꿈꿨던 여행의 찰나가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중앙아시아의 사막과 오아시스, 파미르 고원은 고대 실크로드 교역로의 심장부였다. 비단길이라 불린 사막과 오아시스, 고원의 길은 대상들과 낙타들이 끊임없이 오갔던 통로로서, 동아시아에서 생산된 비단과 도자기가 서역과 지중해 세계로 전해지고, 서방의 유리와 보석, 향신료가 중국으로 들어오는 교역로였다. 상인들은 낙타 등에 비단 두루마리와 향료 꾸러미를 실었다. 사막의 고독한 모래 언덕에는 때로 비단과 함께 전해진 이야기들이 새겨져, 중앙아시아의 벽화와 유물 속에 남아 있다. 예컨대,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에는 서방의 상인들과 동아시아 사신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 중에는 고대 고구려에서 온 사신으로 추정되는 인물도 발견된다. 7세기경 그려진 이 벽화는 당대에 이미 한민족과 중앙아시아인들이 사막길을 통해 서로 교류의 증거가 된다.







사막길로 이어진 문명 교류의 흔적은 한반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삼국시대 신라의 왕경 경주 고분에서 출토된 유리잔과 금속 장식들 가운데에는 서역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 로마의 유리잔이나 페르시아 풍의 문양을 지닌 은그릇 등이 신라 귀족의 무덤에서 발견된 사례는, 멀리 페르시아와 지중해의 공예품이 비단길을 거쳐 한반도까지 전해졌음을 보여준다. 또한 불교의 전래 과정에서도 중앙아시아 오아시스의 역할이 중요했다. 한국에 불교가 본격 도입된 4~6세기경, 이를 전달한 승려들 중에는 간다라 지역에 속하는 소그드, 토하리스탄, 파르티아 출신 등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승려들이 전한 불교는 중국을 거쳐 고구려와 신라로 스며들어, 한국 불교 형성에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를 통해 사막과 오아시스의 길을 따라 전해진 사상과 문화가 동아시아의 한 극에 속한 한반도에까지 닿았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실크로드에는 또 다른 경로인 초원길이 있다. 끝없이 펼쳐진 유라시아 대초원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길로, 말을 탄 기마민족의 무리가 달리던 초원 실크로드다. 이 길은 사막 오아시스 경로보다 북쪽에 위치하여, 중국 화북지방에서 몽골 고원과 알타이 산맥을 거쳐 중앙아시아 스텝지대를 지나 유럽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카자흐스탄과 몽골의 초원을 거쳐 시베리아를 관통하는 노선인데, 비단길의 또 하나의 축을 이뤘다. 과거 흉노와 스키타이, 돌궐과 몽골 제국에 이르기까지 초원을 주름잡던 유목 제국들은 이 노선을 통해 동서 교류를 이끌었다. 6세기 돌궐이 동쪽으로는 중국 북주와 교류하고 서쪽으로는 비잔틴 제국과 사신을 주고받으며 활발히 교역했던 사실은 초원길이 국제적 소통로였음을 말해준다. 13세기에 이르러 칭기즈칸의 몽골 제국이 아시아 전역에서 동유럽까지 지배하자 초원길은 황금기를 맞이했다. 몽골의 군대, 상인, 사절들이 초원을 따라 대륙을 횡단했고,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의 시대에 실크로드가 최전성기를 누렸다는 평이 나올 정도였다. 이후 제국이 분열되고 한동안 침체되었던 초원길은, 근세에 들어 러시아 제국이 시베리아를 개척하면서 새로운 숨결을 얻기도 했다.







초원길을 통한 문화 교류의 영향은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고대 문화에서도 감지된다. 중앙아시아 스텝 지역의 전형적인 고분 양식인 쿠르간과 한반도 고대 고분의 유사성은 학자들의 흥미를 끌어왔다. 카자흐스탄 쿠르간에서 발견된 “황금인간”의 화려한 금관과 장신구들은 그 양식이 신라의 금관 문화와 닮은 점이 있다. 실제로 세미레치예 지역 쿠르간의 봉토 구조와 출토 유물이 신라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과 여러모로 유사하여 한국 고고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공통점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무대로 활동한 기마민족들의 문화적 영향이 동쪽 끝 한반도까지 전해졌거나, 반대로 한반도의 요소가 초원을 거쳐 전달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에 관한 연구도 최근 활발하다. 2013년 경주에서는 “또 하나의 실크로드, 북방 초원의 길”이라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려 카자흐스탄 쿠르간에 대한 정보 교환이 이루어졌고, 이어서 한국 학계에서 유라시아 쿠르간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업도 시작되었다. 한국과 중앙아시아 학자들이 함께 초원길 유적을 조사하며 비교연구를 진행하는 등, 초원 실크로드에 대한 현대적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초원길을 따라 이동한 고대의 사람들 중에는 한국과 인연이 닿은 사례들도 있다. 흉노와 고조선의 관계에 대한 설은 예전부터 역사학계의 흥밋거리였다. 일각에서는 한반도에 건국된 고대국가들이 북방 초원 유목민의 일부 후손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심지어 신라 왕실이 흉노의 후예라는 가설까지 다큐멘터리로 다루어진 바 있다. 비록 이런 주장은 단정할 수 없는 가설이지만, 최근 몽골 현지에서 진행된 한국-몽골 공동 발굴조사 등으로 흉노 유적 연구가 진전되면서 한민족의 기원이 유라시아 대초원과 연결될 가능성에도 새빛이 비춰지고 있다. 일본 열도를 넘어 동쪽 끝 한반도에 이르는 범위까지 고려하면, 초원길이 낳은 인구 이동과 문화 전파의 영향권은 실로 방대했다.

비단길과 초원길이 만나는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파미르 고원이다. 파미르는 흔히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데, 그 명성답게 해발 7천 미터급 봉우리들이 즐비한 고산지대이다.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동아시아를 가르는 요충지로서, 파미르는 지정학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중국,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의 경계가 만나는 이 고원 지대는 예로부터 여러 민족의 통로이자 경계였다. 실크로드 시대에는 파미르를 넘나드는 험로를 통해 중국의 당나라 승려 현장(玄奘)이 인도로 불경을 구하러 가고, 마르코 폴로가 서방에서 동방으로 향하는 길에 이 고원을 통과하기도 했다. 파미르 고원의 험준한 길목들 ‘와칸회랑, 카라코람’등은 상인과 순례자의 도전 정신을 시험하는 관문이었다. 그러나 이 첩첩 산중의 길을 넘기만 하면, 다시금 비옥한 오아시스와 초원이 펼쳐지며 새로운 세계가 여행자를 맞이했다. 그리하여 파미르는 동서 교역로의 허브 중 하나로 자리했다. 한 예로 고대 실크로드의 남로(南路)는 파미르 남쪽 카라코람 산맥을 넘어 인도로 향했고, 북로는 파미르 북쪽 천산산맥을 거쳐 중앙아시아로 뻗어 나갔다. 파미르 자체에도 오랜 세월 사람들의 발길이 닿았는데, 오늘날에도 이 고원에서는 타지크, 키르기즈 등 다양한 민족이 전통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어, 마치 살아있는 박물관과 같다.







파미르 고원은 한국인들에게도 흥미로운 전설과 연결되어 있다. 일부 한국 사학자들과 문화사 연구에서, 파미르는 인류 문명이 시작된 태초의 땅으로 특별히 주목받는다. 한국의 몇몇 대안 역사서에서는 파미르 고원을 가리켜 마고성이라는 전설상의 성지로 언급하기도 한다. 이는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고조선 건국 신화와 관련된 인물들이 본래 중앙아시아 파미르를 중심으로 활동했다는 가설에서 나온 개념이다. 이러한 이야기에 따르면, 중앙아시아의 심장부인 파미르 고원에서 인류의 시원이 이루어져 각지로 퍼져나갔고, 환인의 후손인 환웅이 천산과 알타이를 거쳐 동방으로 이동함으로써 단군조선의 뿌리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한국 주류 역사학계는 고조선의 활동무대를 대체로 만주와 한반도 부근으로 보고 있으며, 파미르 고원설은 환단고기류 사서에 근거한 가설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점은, 동아시아 끝의 한민족이 자기 민족의 기원을 설명하는 신화에서조차 중앙아시아의 파미르를 무대 중 하나로 상정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파미르 고원이 그만큼 세계의 중심으로 상상될 만큼 중요한 위치였음을 방증한다. 중앙아시아의 험준한 산악 지대가 한민족 신화의 한 모퉁이에 자리잡은 데에는,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막연한 기억의 흔적이나, 혹은 중앙유라시아와 동북아시아를 아우르는 정신적 지리관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21세기에 들어 실크로드는 새로운 의미로 재조명되고 있다. 비단과 향신료를 나르던 낙타 대신 고속철과 자동차, 비행기가 실크로드를 달리지만, 동서 문명 교류라는 큰 흐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오히려 현대의 실크로드는 과거보다 더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신 실크로드라는 기치 아래 유라시아를 잇는 물류와 에너지 루트가 주목받고 있고,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 역시 고대 비단길의 부활을 표방한다. 문화적으로도 각국은 실크로드 유산을 재발견하며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도 역사적 유대와 문화 교류를 새롭게 조명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소련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 5개국이 독립국가로 등장하자, 한국은 이들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과거 고려인의 인연을 토대로 긴밀한 우정을 쌓아왔다. 특히 문화유산 분야에서 협력이 두드러진다. 한국은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실크로드 국가에서 공동 발굴사업을 진행하고 학술 교류를 활성화하며, 축적된 복원 기술과 박물관 운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중앙아시아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을 발굴·보존하는 데 기여하는 한편, 양 지역의 학자들이 함께 연구하면서 유라시아 속 한국사의 위치를 새롭게 성찰하고 있다. 예컨대, 고려 시대의 불상이나 공예품에 나타난 서역 영향을 분석하거나, 중앙아시아 고고유적에서 한반도 산 금속공예 기술의 흔적을 찾는 공동연구도 이뤄지는 식이다. 한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매년 "아시아 고고학" 심포지엄을 열어 이런 연구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학술행사를 넘어 한국이 유라시아 문화의 일부임을 인식하고 교류의 뿌리를 찾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중앙아시아와 한국은 문화유산 정책 측면에서도 협력을 넓혀가고 있다. 실크로드를 품고 있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세계유산으로 지정할 만한 유적들이 많지만, 아직 제도와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 한국은 이들에게 세계유산 등재를 돕고 문화재 보존관리 노하우를 전수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다. 나아가 유라시아 공동의 유산을 효과적으로 지키기 위해 관련 법령 정비와 정책 수립에도 자문을 제공하며, 국제적인 협의체 구성에도 힘쓰는 중이다. 예를 들어, "실크로드 공동 연구 네트워크"를 조직하여 유라시아 각국 연구자들이 고대 교류사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히 과거의 영광을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 세대를 위한 문화유산의 공동 보호와 활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크로드라는 거대한 길의 역사는 끝난 듯 보였지만, 사실 그 서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현대의 여행자가 파미르 고원이나 사마르칸트의 시장을 거닐 때, 그 발걸음은 새로운 이야기의 한 줄이 된다. 과거의 교류사가 남긴 흔적 위에 현재의 교류가 겹겹이 쌓여, 실크로드는 살아있는 역사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오래전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했던 인연은 잊혀지지 않고 오늘날 다시금 꽃피우고 있다. 학자들의 탐험과 발굴, 정책가들의 협력과 시민들의 문화 교류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유라시아 문명 교류의 재조명이 이루어지는 지금, 우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풍부하게 이해하고, 또 미래를 함께 열어갈 자산을 쌓고 있는 셈이다./우즈베키스탄=정빛나라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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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4-29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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