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박상래 - 2025년 05월 14일 16시20분
보이지 않는 죽음, 밀폐공간 질식재해를 막기 위한 우리의 자세
안전보건공단 전북지역본부 건설보건부 박태서 차장
사고는 공기 속에서 벌어진다. 하지만 그 공기는 우리가 익숙하게 마시던 공기가 아니다. 산소가 부족하거나, 보이지 않는 독가스가 퍼져 있는 공기다. 위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철저한 대비와 인식이 필요하다.
밀폐공간 질식사고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가장 많은 피해를 낸 것은 황화수소(H2S)다. 전체 질식 피해자 중 39.6%가 이 독성가스에 노출됐다. 황화수소는 아주 적은 양만으로도 호흡마비를 일으킬 수 있고, 고농도에 노출될 경우 몇 초 안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말하자면, 아무리 산소가 있어도 이 가스에 닿는 순간 몸은 숨을 쉬지 못하게 된다. 마치 엔진에 불량 연료가 들어간 자동차처럼, 금세 멈춰버린다.
그 다음은 산소결핍이다. 산소 농도가 21%인 일반 공기와 달리, 18% 이하로 떨어지면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10% 아래에서는 뇌로 가는 산소가 부족해져 의식을 잃을 수 있다. 우리가 무심코 들이쉬는 공기 속 산소는, 사실 생명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다. 단 몇 분만 부족해도, 뇌는 멈춘다.
또 하나, 일산화탄소(CO)도 무서운 존재다. 색도 없고 냄새도 없기 때문에 깨끗한 공기처럼 보이지만, 혈액 속 산소 운반 기능을 방해한다. 이 때문에 산소가 충분히 있어도, 몸은 마치 질식 상태에 빠지게 된다. 맑아 보이지만 마시면 안 되는, 독이 든 물과 같은 공기다.
문제는 이런 위험이 사전에 예측 가능하고, 대부분은 예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사고가 반복된다. 전체 질식재해의 80% 가까이가 ‘여기가 밀폐공간인지 몰랐다’는 이유로 발생했고, 구조자 사망자 가운데 3분의 2는 ‘보호장비 없이 구조에 나선 경우’였다. 위험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혹은 급한 마음에 즉흥적으로 행동한 결과다.
더 안타까운 건 외국인 근로자의 피해다. 질식재해로 다친 외국인 13명 가운데 12명이 사망했다. 사망률 92.3%. 언어나 문화 차이 때문에 기본적인 안전 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사업장에서는 밀폐공간이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찾아내고, 환기나 가스농도 측정, 비상시 대응절차까지 스스로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구조에 나서는 사람은 ‘용기’보다 ‘절차’를 우선해야 한다. 장비 없이 뛰어드는 구조는 두 명의 피해자를 만드는 길이다. 그리고 외국인 근로자에게는 언어를 넘어서는 실질적인 교육이 반드시 제공돼야 한다.
기본적인 수칙만 지켜도 위험은 크게 줄어든다.작업 전과 중간중간 산소 및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하고, 환기팬을 돌려 공기를 순환시켜야 한다. 구조할 일이 생기면 반드시 공기호흡기나 송기마스크를 착용하고, 출입금지 경고표지를 붙여 무단 출입을 막아야 한다.
이런 준비가 어렵다면, ‘찾아가는 질식재해 예방 One-Call 서비스(☎1644-8595)’를 활용할 수 있다. 전화나 인터넷으로 신청만 하면 전문가가 작업 전에 현장을 방문해 가스 농도 측정, 안전교육, 장비 대여, 기술지도까지 무료로 지원해준다.
질식재해는 대부분 막을 수 있는 사고다. 몇 분의 점검과 준비가 누군가의 목숨을 지킨다.안전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작업 전에, 반드시 안전부터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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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5-15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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