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독립운동하면 3대가 살아야
이재명 대통령이 현중일 추념사를 통해 보훈의 가치를 강조하며 특히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은 이제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6일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거행된 제70주년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발표한 추념사에서 "우리가 해마다 현충일을 기리는 이유는 기억하고, 기록하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며 "우리 국민과 국가가 위험에 처했을 때 기꺼이 자신을 바치고 희생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 고귀한 헌신 덕분에 우리는 빛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비둘기집’을 노래한 ‘황손 가수’ 이석. 지금은 황실문화재단 총재라는 명함을 건네지만, 그는 ‘사람은 살 수밖에 없는’ 슬픔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총재는 전주시 한옥마을 승광재(承光齋)에 산다. 빛을 계승하는 집이다. 2004년 전주시가 민가 네 채를 매입해 조성한 작은 한옥이다. 빛(光)은 대한제국 연호인 광무(光武)에서 따왔다. 빛을 계승하고 싶지만 그의 인생은 그렇지 못했다. ‘황손 가수’로 소개됐지만 사람들은 그를 황손으로 대우하지 않았다. 거듭된 결혼 실패와 미국에서 막노동, 찜질방을 전전했던 그의 삶은 외국인의 눈에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필자가 오랫동안 본 그의 삶이 여전히 곤궁해보인다.
애국지사 장현식선생은 꼿꼿한 선비정신으로 강물처럼 도도하게 일생이 흘렀갔다. 참된 선비 장현식 김제군 금구면 상신리에서 출생했다.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고 독립 활동 지역은 서울 명륜동이었다.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친 애국지사 장선생은 전북지사를 지냈지만 6.25 직후 북한으로 납북되어 평양에서 별세했다. 그가 살던 서도리는 동학의 최초 집회지인 원평읍과 지척인 거리로, 태풍의 중심에 있었음에도 온전했다. 6·25전란 때도 모악산에 아지트를 두고 있던 빨치산들이 금구읍내의 면사무소, 농협조합, 우체국 등을 모두 불질렀지만 장씨 집들은 피해가 없다고 한다. 호남평야의 만석꾼이지만 시대가 흐르고 그 후손들은 생가 복원이 어려워 전주 한옥마을에 부친의 민족혼이 깃든 생가를 넘겨야 할 때 그 심정은 오죽했을까? “독립운동을 하면 집안이 망한다” 필자를 여러 번 만난 후 장선생의 둘째 아들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2021년 ‘국가보훈대상자 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독립유공자 후손 447명 중 15명(3.4%)이 여전히 비닐하우스와 판잣집, 비거주용 건물 등 불안정한 주거 환경에서 생활한다고 했다. 독립유공자 후손 지원이 중요한 이유는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라는 말 자체가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현실이자 역사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1945년 광복 이후,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한 일이 오늘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말 자체가 현대 우리 국민의 마음에 독립운동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패배 인식으로 각인되어서는 안된다. 독립운동은 대한민국의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고, 우리는 3.1만세운동의 정신을 모아 상해임시정부를 수립, 광복 이전까지 국권 회복을 위해 투쟁한 민족이다. 독립운동 역사는 영원히 재조명해야 하며,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지원은 가난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독립열사들의 정신을 기리는 중요한 역사적 행위이다.
선대 독립운동가들이 생계를 포기하고 감시를 피해 숱하게 거처를 옮겨야 했던 삶의 흔적이 지금까지도 가족과 후손들에게 깊은 상처로 남은 게 안타깝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후손들은 보훈급여에 의존하며 생활을 유지하고, 일부는 불안정한 주거 환경에서 살고 있다. 정부는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보훈급여를 지급하고 있지만, 모든 후손이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후손들의 생활고는 여전하다. 안정적인 주거 공간과 기본적인 생계비가 가장 시급하다./이종근(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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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6-11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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