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6월 23일 14시15분
[아침발걸음]한민족 자생 풍수 사상의 시원으로써 고인돌 입지
선사인들은 2지2분(춘분, 추분, 하지, 동지)이라는 태양의 움직임을 시간의 기준점으로 삼았고, 이를 지형적인 요소와 결합하여 고도로 정교한 고인돌 입지 선정 방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입지 선정 원리는 고인돌뿐만 아니라 당시 부족민의 거주지 배치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2지2분의 뚜렷한 일출을 관측하기 위해서는 동쪽이 열려 있어야 하며, 이는 고인돌이나 마을의 입지가 동향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고인돌 배치에서 남쪽은 풍년과 부족의 안녕, 풍요를 기원하는 남두육성과 같은 성수신앙과도 연결된다. 가급적이면 북쪽이나 북서쪽이 막혀 있는 것이 좋았는데, 북쪽이 막혀 있으면 북극성이나 북두칠성 관측에도 유리했다.
선사인의 정주 공간으로서 고창 월림의 고인돌은 이러한 천문 지리 배치 원리의 중요한 사례다. 이 마을은 동쪽만 열려 있고, 그 외 방향은 구릉이 발달하여 장풍국, 즉 바람을 잘 막아주는 완전한 지형을 이룬다. 고인돌은 삼각형의 부채꼴 모양이며, 이는 다양한 천문 지리 배치 원리를 담고 있다. 동북 방향 빗변은 하지 일출 방향이며, 전면의 장군봉은 풍수에서 좌청룡에 해당한다. 동남 방향 빗변은 동지 일출 방향이며, 전면의 구릉은 우백호로 해석된다. 고인돌 중심축(동쪽)은 춘분과 추분의 일출 방향으로, 전면의 낮은 구릉은 안산이다. 서쪽은 춘분과 추분의 일몰 방향으로, 이 방향의 산봉우리는 현무 또는 주산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배치는 풍수지리의 기본 원리인 장풍(藏風)을 반영한 것으로, 고인돌이 위치한 곳이 한반도의 기후 환경에서 인간이 거주하기에 이상적인 장소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고인돌의 천문 지리 배치 원리는 후대 도시 설계, 특히 백제의 사비도성(부여)과 같은 고대 도시 설계에 영향을 미쳤다. 고인돌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면, 왕궁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지상을 통치하는 공간이었다. 사비도성의 경우, 왕궁을 중심으로 좌청룡, 우백호, 주작, 현무 등의 풍수적 상징을 반영한 산봉우리나 구릉을 배치하여 이상적인 도시를 건설하고자 했다. 백제의 사비도성 설계는 천문 지리 원칙에 맞춰 매우 신중하고 체계적인 도시 계획이었으며, 그 지역의 지형적 특성을 고려하여 풍수적으로 이상적인 도시로 건설되었다.
특히 백제 왕궁과 그 주변에 춘분과 추분의 일출 지점인 오성산과 일몰 지점인 부산을 설정하여 하늘의 기운을 지상에 반영하려 했다. 왕궁과 주요 시설은 인체의 각 부분에 비유되어 배치되기도 했다. 부소산은 머리와 영혼의 입구, 왕궁은 입과 턱, 정림사는 가슴을 상징하는 종교적 공간으로 태양의 의미, 궁남지는 생식기에 비유되며 달을 상징하는 의미를 가졌다. 이러한 인체의 비유적 배치는 도시가 단순한 정치적 중심지를 넘어,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재현하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인돌의 배치 원리는 천문 지리 원리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선사인들은 이를 통해 하늘의 이치를 이해하고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거주지와 문화적 중심지를 배치하려 했다. 이러한 고인돌의 배치 원리는 단순히 실용적인 차원을 넘어, 인간과 자연, 하늘과 땅의 조화를 중시하는 철학적 사상이 깃든 것이었다. 부여의 도성 설계에서 이러한 고인돌의 천문적 원리를 적용한 것은 단순히 물리적 환경만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통치와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고대 통치자들은 자연과의 조화, 하늘의 뜻에 따르는 통치를 지향했으며, 이를 풍수지리라는 철학적 체계로 형상화했다. 따라서 풍수지리는 단순히 중국에서 영향을 받은 이론이 아니라, 고인돌의 천문 지리 배치 원리에서 출발한 고유한 철학적 사상을 바탕으로 한반도에서 자생적으로 발달하였다는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이병렬(고창문화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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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6-24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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