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6월 25일 14시45분
[금요수필]제비의 신혼집
김영숙
올봄에도 제비 두 쌍이 약국 처마에 신혼살림을 꾸렸다. 그들은 제집인 듯 자연스럽게 한 쌍은 작년에 지었던 집을 약간의 보수만 하더니 바로 입주했고 한 쌍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정문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은 작년 장마철에 무너지고 흔적만 남았었는데 용케도 다시 터를 잡고 몇 날 며칠 진흙과 지푸라기를 적당히 이겨 바르며 꼼꼼하게 공사하더니 드디어 오늘 집이 완공되었다.
처음에는 구조물이나 비교적 벽 측면에 지으면 훨씬 수월할 텐데 왜 하필이면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정문 방충망 위에 짓느라 저 고생인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2~3일은 어떤 식으로 지을지 설계라도 한 것인지, 아니면 의견충돌이라도 있었는지 상당히 시끄럽게 지지배배 거리고 2~3일은 기초공사라도 한 듯 진흙 몇 점 발라놓고 사랑놀이만 한다 싶었는데 결국 일주일 만에 어엿한 집 한 채가 완성되었다.
언뜻 보면 얼기설기 대충 지어진 듯 엉성해 보이는 집이다. 하지만 서울대 기계공학부 연구진에 따르면 제비 침이 진흙과 진흙을 끌어당기는 접착제 역할을 하므로 제 몸무게의 100배 이상을 견딜 수 있다고 한다. 저 수직 벽에 저렇듯 튼실한 집을 짓는 제비라니 역시 건축의 대가로 인정 아니 할 수 없다.
한편 이 두 쌍은 위에 언급한 시처럼 작년에 집주인인 김시인과 재계약하고 떠났던 그 제비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하여 저리 당당하게 들어와 시끄럽게 입주를 알린단 말인가. 그러나 제비들이 계약서를 보여주지 않는 이상 알 길은 없다. 계약을 성사한 장본인이 기한도 없는 무상이라는 계약을 공개적으로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 오지랖에 누구도 가타부타하지 않았다. 다만 암묵적으로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집이 더디 지어지자 오히려 ‘저러다가 알을 땅바닥에 낳겠네!’ 하며 걱정했다. 그와 중에 *조약사님은 알을 까고 새끼가 나오면 집 아래에 받침대를 만들어 줘야겠다며 은연중에 세입자를 챙기고 계셨다.
15년 전, 김시인을 처음 뵈었을 때 이웃집 오빠처럼 편안한 인상이었다. 사선문화제 시화전에 오셨기에 임실 문학지를 한 권 드렸더니 이왕이면 사인도 해주면 좋겠다며 활짝 웃던 그 모습은 내 기억 속에 박제된 듯 여전히 선하다. 그 인연으로 나는 그분이 운영하는 약국에서 십삼 년을 함께 일하게 되었고 그뿐만 아니라 우리 임실 문인협회 후원회장까지 자처할 만큼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시더니 급기야 3년 전 시인으로 등단도 하셨다.내가 그분을 처음 뵈었을 때는 위암 절제술을 받고 항암치료 중이셨는데 20여 년을 그렇게 위가 없이 사셨다. 그러나 면역력 약화로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열정적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계시는 분 등 사회 복지 봉사활동도 거뜬히 해내셨다. 그런 분이 지난 12월 갑자기 세상을 뜨셨다. 그러나 김 시인의 배려로 ‘전세 사기’, ‘깡통전세’ 등 집 없는 설움의 피해자가 속출하는 이 시끄러운 시절에도 강남 갔던 제비는 올해도 아무 걱정 없이 신혼살림을 꾸렸다.
김영숙 수필가는
2006년 '月刊 시사문단' 등단
수필집: '사소한 아줌마의 소소한 행복', '섬진강 들꽃처럼', 시집 '꽃에 안부를 묻다'
제22회(2018년) 임실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전북문인협회 회원, 전북시인협회 회원 현 임실문협 사무국장
지면 : 2025-06-27 10면
http://sjbnews.com/853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