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7월 02일 12시45분
심연의 무의식을 뒤흔드는 색
김스미이 미술산책〈66〉 마크 로스코의 '마젠타, 블랙, 그린, 오렌지당신을 생각하게 하기 위해 그린다
오직 색과 면만으로 본질을 찾아간다
작가에게는 인간의 근원에 대한 무의식적 목마름이 있다. 끝없는 여행과 방랑의 이유도 어쩌면 이 원초적 내면의 본질을 찾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종교도 인간과 우주의 기원이나 원천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고, 시대를 불문한 예술의 궁극적 지향점이다. 작품을 그리는 방법적 문제를 뛰어넘어 관계의 딜레마와 예술, 그리고 고독한 색의 판타지에 침몰한 천재가 있다. 사람들은 그의 색채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무엇 때문에?
미술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게 된 배경이 된 미술사조, 추상표현주의, 그중 색면 추상의 거장 마크 로스코(1903-1970)의 이야기다. 추상표현주의는 미술사에서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들의 특징적 예술세계를 말하는 고유명사다. 지금, 추상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들이 ‘나도 추상표현주의야’하면 틀린 말이다. ‘추상 표현주의적이야’라고 말해야 한다.
작가는 작품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마티스가 그렇고 로스코가 그랬다 그는 “나는 예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생각하게 하기 위해 그린다.” 했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 많은 유럽의 예술가들이 뉴욕으로 왔다. 각자의 방법으로 전쟁의 상흔과 감정들은 표현한다. 그림에 빠져 다니던 예일대학을 때려치운 로스코는 스승인 밀턴 애이버리의 작품에 크게 매료되었고,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색으로만 표현한 추상을 만들어낸다. 초기에는 거칠고 냉담한 표정의 초현실적 그림을 그리다가 기존 작품의 틀을 깨고 현대인의 혼란한 감정을 실은 자기만의 회화 언어를 찾아낸다. 오직 색과 면만으로 본질을 찾아갔다.
로스코의 대표 작품 '마젠타, 블랙, 그린 오렌지'는 각각의 색, 면들이 조화롭게 층을 이룬다. 마젠타는 신비한 에너지를, 블랙은 심연의 침묵과 고요를, 그린은 자연과 생명의 위대함과 평온을, 오렌지는 열정과 환희와 활기를 이끌어 낸다. 로스코는 '오렌지, 레드, 옐로'로 당시 경매시장 최고가(한화 850억)에 낙찰된 슈퍼스타다. 이 단순한 그림에 예술가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로스코는 니체 철학에 빠져 고대 신화를 탐구한다, 신화 속 비극이 보는 이들을 죽음의 공포에서 구원하고 관객에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점에 주목한다. 로스코는 이러한 숭고한 장엄미를 그림으로 표현한다. 숭고란 우리의 감각을 넘어선 거대한 대상과 대면했을 때 오는 불편함과 쾌함의 감정을 거쳐 고요한 관조를 경험하고, 이것이 또 다른 감동으로 이어진다는 철학적 배경이다. 어려운 용어들이지만 로스코의 작품 앞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하고 눈물을 철철 흘리는 사람이고 싶다.
휴스턴의 '로스코 채플;은 명상의 공간 건물에 14개의 대형 캔버스로 구성된 로스코의 작품이 있다. 자살로 죽은 그의 심정이 느껴지는 비극적인 컬러가, 보는 이의 심장을 오그라들게 하고 복받치는 슬픔에 고통까지 밀려온다니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란다.
현대미술, 특히 컨템퍼러리 아트를 전시하는 전시장에서는 대중은 발걸음이 빨라진다. 난해하고 해석이 안 되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느낌이 대중과 예술 사이에 벽을 만든다. 그러나 오래도록 바라보며, 작품과 눈을 맞추다 보면 심연의 어느 곳과 오버랩되는 순간이 온다. 잊었던 감정들이 수면 위로 솟고, 삶이 발하는 보이지 않는 빛으로, 깊은 감명을 받은 생체학적 리듬이 하나가 될 때, 뜨거운 눈물만 나겠는가? /화가, 칼럼니스트 김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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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7-03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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