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7월 07일 07시54분
두 개의 만남
[책마주보기] 구중서의 '한국천주교문학사'(하채현)
첫 번째, 조선 실학 선비들의 만남을 보자. 퇴계, 남명, 반계의 뜻을 새기고 성호학파를 형성한 성호 이익에게 순암 안정복이 찾아온다. 그들은 밤을 새워 세상의 변화와 보편 진리에 대해서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마침 아침이 되었다. 함께 밥상을 받았는데 찬이 소금뿐이다. 성호가 “찾아오는 손님이 있어도 내올 찬이 없으니...”하고 말하지만, 순암도 11명의 돌볼 가족이 있어서 먹을 것을 가져올 수 없다. 이처럼 책에 묘사된 실학자들의 만남이 생생하여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다른 이야기를 보자. 다산 정약용이 유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때 이벽이 다산을 만나기 위해 마재를 찾아온다. 두 사람은 시대와 진리에 관해 토론을 벌인다. 다른 때에 이승훈이 또 다산을 만나기 위하여 마재에 온다. 이러한 인물들의 만남이 한국 정신사의 흐름을 형성하는데, 구체적으로 재현되어 당시 남한강 상류 양근(지금의 양평)의 굽이치는 물결을 눈앞에 보는 것 같다.
두 번째는 동서양의 만남이다. 인류 정신사의 흐름이 동양 서양 따로 있지 않다. 마르코폴로와 마테오 리치의 기록이 볼테르 등 계몽주의와 연관되고, 그것을 이승훈이 읽고, 다시 진보한 근대정신이 정하성, 최양업, 한치응에게 전해진다. 이후 다블뤼가 “비망록”에 기록하자, 달레가 “한국천주교회사”를 쓴다. 당연한듯 19세기 한국 가사문학과 정지용의 시에 이와 같은 동서양의 만남이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이 책의 큰 특징이 ‘만남’이다. ‘만남’은 저자의 신념 ‘불우국비시야(不憂國非詩也)’의 현현이며, 보편타당을 옹호하기 위한 기획일 것이다.
“천주교문학사”는 종교 범위에 국한하지 않는다. ‘천주교’라는 말은 마테오 리치가 명명했다. Catholic이 ‘보편(普遍)’이라는 뜻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보편’은 사전적으로 ‘모든 것에 두루 미치거나 통함’, ‘우주나 존재의 전체에 관계됨’이다. 쉽게 말하여,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리영희 선생님의 ‘새가 좌우의 날개짓으로 날’듯이 ‘보편’은 ‘너 나 없이(서로 달라도) 모두 다 인정한다’로 확장할 수 있고, 그것은 ‘공동선(共同善)’을 위한 전제가 된다. 시대가 달라도 정신이 통한다.
무릇 사람이 하늘을 우러러 봄에 그 위에 임자가 계신 것을 알므로 병들고 어려운 일을 겪으면 하늘을 우러러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소서”하며 빌고, 번개와 우뢰를 만나면 자기 죄악을 생각하고 마음이 놀랍고 송구하니, 만일 천상에 임자가 아니 계신다면 어찌 사람마다 마음이 이러하리오.(정약종, ‘주교요지’(“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91면)
이를 ‘보편타당’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리얼리즘 비평과 시조, 인문화(人文畵)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고 있는 너른뫼 구중서는 한국 정신사의 흐름을 가톨릭이라는 원심력을 작동하여 이 책에 담았다. 광의의 리얼리즘 주창자로서 오래전부터 가톨릭과 연을 이어와 “구도의 언어”(가톨릭출판사), “의로운 사마리아 사람”(성바오로출판사) 등을 집필했으며, 김수환 추기경님과의 각별함으로 저서 “김수환”(교원)을 낸 바 있다. 성호와 순암의 만남, 다산과 이벽의 만남이 한국 정신사를 형성하고 마테오 리치와 테느와 정하성의 정신이 어울려 만나 보편타당의 줄기를 뻗어내었다. 이 책을 읽지 않고 어떻게 한국 정신사를 언급할 수 있겠는가. 한국 정신사의 줄기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한국천주교문학사”를 읽고 17세기 이후 동아시아와 프랑스, 유럽과 만나는 한국 지성을 가다듬어 볼 일이다.
하채현 작가는
'술술 풀리는 한국어 읽기' 저자
인문도시센터 연구원
인문예술의집 소장
지면 : 2025-07-08 10면
http://sjbnews.com/854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