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8월 21일 13시38분
[금요수필]사촌 누나
송일섭
누나는 눈이 붉어지도록 울었다. 닭똥 같은 둥근 눈물을 흘리며 고향에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하였다. 손에는 작은 보따리 하나만 달랑 있었다. 낯선 서울로 무작정 떠나는 서러운 길이었다. 아버지는 불행히도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셔서 고아가 되었다. 유일한 남동생을 친척 집에 맡겨두고 작별하는 판이다.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누나의 표정은 달구어진 용광로의 무쇠보다 강렬했다.
동생은 누나를 어떻게 위로할 수 없었다. 위로하기에는 너무나 어린 철부지 초등학생이었다. 심포에서 나오는 버스는 하루에 고작 한두 번 왕래하였다. 누나는 버스를 홀로 타고 김제역으로 갔다. 이것이 누나와 마지막 길이었다. 누나는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아무도 없는 서울로 떠났다. 어린 누나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이렇게 서울로 떠난 누나는 한때 소식이 없었다. 전화도 없는 시절이니 더욱 그랬다. 헤어지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어떻게 공부했는지 간호장교가 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그 소식을 듣고 뛸 듯이 기뻤다. 기어코 성공했구나! 어떻게 서울에서 먹고 살았는지 자세한 사연은 듣지 못했다. 장교 시절 약대를 졸업한 군인과 사귀었다. 누나는 연애 끝에 혼인하는 데 성공했다.
누나의 유일한 동생이 물어물어 매형을 찾았다. 그때 누나는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하였다. 다음에 찾았을 때는 누나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매형 또한 누나가 돌아가셨어도 연락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누나는 그렇게도 그리운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떠날 때 다시 오지 않겠다는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누나는 젊은 나이에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그 후 동생은 조카를 보고 싶어 찾았으나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것을 먼발치에서만 바라보았다고 했다. 매형은 곧 재혼하여 가정을 꾸렸으니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게다.
이제 수십 년이 흘렀다. 조카들도 중년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은 조카가 과거를 잊어버려야 한다며 한 번도 찾지 않았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면서 누나의 유일한 피붙이를 그리기만 하는 심정이 얼마나 애달플까! 나에게는 사촌이지만 누나의 과거를 찾고 싶다. 얼마나 어렵게 살면 친척들이 돌보지 못하고, 아무도 모르는 서울로 떠나야만 했을 그 시절이 몹시도 안타깝다.
송일섭 수필가는
한국문인협회 회원 등
전주양지노인복지관 문예창작 강사 역임
현재 김제문인협회회장
지면 : 2025-08-22 10면
http://sjbnews.com/857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