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8월 24일 14시15분
[월요아침]형식이 아닌 마음으로 지켜야 할 우리의 조상 공경 정신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지켜온 정신 중 하나는 효(孝)였다. 유교 윤리의 핵심으로 꼽히는 효는 단순히 부모에 대한 효도를 넘어 조상을 기리는 일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덕목이다. 제례는 이러한 정신을 실천하는 가장 중요한 의례로, 후손은 정성과 공경을 다해 제를 올리며 스스로의 뿌리를 확인했다. 예로부터 “조상을 잘 섬기는 자손은 번창한다”는 말이 전해지듯, 제례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가족 공동체와 사회 윤리의 근본 역할을 해왔다. 제례를 통해 세대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으며, 후손들은 조상을 기리며 가족 간의 화목을 다지고 자기 삶의 자취를 되돌아보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다르다. 벌초 대행 서비스만 해도 지속적으로 늘어나 최근에는 연간 9만 건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24년 6월 기준 전국 화장률은 93.6%에 달한다. 이제는 전통적인 매장과 벌초·성묘의 풍속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진행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5.9%가 “앞으로 제사를 지낼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이는 절반이 넘는 국민이 제례 자체를 포기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히 가치관의 문제만은 아니다. 전통적 제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노동을 필요로 한다. 제사를 치르기 위해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고 절차에 따라 정성을 들이는 일이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다. 명절, 그리고 제사마다 따로 시간을 내고 수십 가지 음식을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오죽하면 “제사를 지내는 집안은 결혼이 힘들다”는 말이 젊은 세대들 사이에 돌고 있을 정도다. 제례가 효를 다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아니라 가족 갈등의 원인이 되는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제사의 형식에 집착해 관습적으로 치르다 보면 정작 조상을 향한 추모의 마음 없이 그저 지나가는 통과의례로만 소비된다는 점이다. 진정성이 사라진 제례에 과연 의미가 있을까? 형식에만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조상 공경의 마음은 희석되고 제례는 후손에게 피로만 남길 뿐이다.
이에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제례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담은‘전통 제례 보존 및 현대화 권고안’을 발표했다. 제사상은 복잡하게 차릴 필요 없이 평소와 같은 간소한 반상을 올려도 되고, 제사 시간도 가족 합의에 따라 변경할 수 있다. 제기가 없다면 일반 그릇을 사용하면 되며, 제사 음식은 가족이 함께 준비함으로써 여성에게만 지워지는 짐이 되지 않도록 함께 나누자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사로 인해 집안 불화가 생겨서는 안 되며, 제사는 어디까지나 “조상을 추모하고 가족 간 화목을 다지는 경사스러운 일”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전통을 버리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본질을 지키기 위해 형식을 완화하자는 제안이다. ‘조상을 공경하고 섬기는 정신’이라는 핵심만 보존된다면 제례의 방식은 각 가정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져도 괜찮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마음의 성실함이지, 상차림의 화려함이 아니다.
필자 역시 집안의 여러 제사들을 ‘명절 부부 합동 제사’로 합치는 방안을 가족과 논의하고 있다. 변화된 사회 구조 속에서 전통을 완전히 이어가기 어렵다라도, 그 정신만큼은 지켜야 한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유교문화, 그 중에서도 조상을 기리고 공경하는 정신은 결코 사라져서는 안 될 우리의 얼이자 뿌리이다.
민족 대명절 추석을 한 달여 남겨둔 시점에서 우리는 “과연 제례란 무엇인가?”하는 물음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형식을 고수하느라 가족이 갈등하고, 보여주기식 제사로 전락하는 것이 과연 조상을 기리는 바른 길일까? 아니면 각자 가정의 형편에 맞는 방식으로 진심을 담아 추모하는 것이 본질에 더 가까울까?
조상을 기린다는 행위는 결국 마음에서 비롯된다. 생전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들의 삶을 되새기며, 오늘의 내가 있게 한 뿌리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그 정신이 살아있다면 절차가 조금 달라져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결국 조상에게 드려야 할 제물은 화려한 음식이 아니라 진심 어린 감사와 기억이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본질을 지켜낼 때, 우리의 제례문화는 새로운 세대에게도 가치 있는 정신적 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김윤철 의원(전주시의회 복지환경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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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8-2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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