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박상래 - 2025년 09월 15일 08시22분
간척지의 진화, 농지에서 미래 플랫폼으로
국립식량과학원 간척지농업연구센터장 고종철
네덜란드는 간척지를 농업의 주요 기반으로 전환한 대표적 성공 사례다.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은 불리한 조건에도 정교한 제방·배수 시스템과 주민 참여를 결합해 세계적 모범사례가 됐다. 간척지 활용은 시대별로 변화했는데, 중세에는 농지 확보, 근대에는 낙농과 곡창지대 조성, 20세기에는 식량·주거 복합 공간으로 발전했다. 오늘날에는 해수면 상승 대응, 생태 보전, 지속 가능한 도시계획으로 전환 중이다.
일본도 비슷한 변화를 보였다. 에도 시대 벼농사 중심 간척은 메이지 이후 군사·산업 거점으로, 전후에는 도쿄만·오사카만 등 대규모 매립을 통해 산업화 기반이 됐다. 현재는 공항·항만, 환경복원, 레저 공간 등으로 바뀌며 농업 비중은 크게 줄었다. 간척지는 농업에서 산업·도시, 다시 환경 중심의 다목적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삼국·조선시대에는 소규모 농지 확보 중심이었고, 20세기 중반까지는 식량 자급을 위한 벼농사 중심의 간척이 추진됐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시화호와 새만금 개발은 산업단지·도시·관광 등 다목적 개발로 방향을 바꿨고, 최근에는 산업·에너지·물류·생태 복원이 결합된 복합 공간으로 변화 중이다.
세 나라 모두 ‘농업-산업·도시 개발-환경·다목적 활용’이라는 공통 흐름을 보이지만, 최근 간척지 농업 대응 전략은 각국의 여건에 따라 다르다.
네덜란드는 해수면 상승과 재염화로 연간 6억 유로의 농업 손실을 겪으며, ‘염류화 대응 프로젝트’를 국가 과제로 추진 중이다. 내염성 작물 육성, 담수·해수 혼합 관개, 순환형 재배 시스템 등은 간척지 농업의 생존 전략이자 기후위기 대응 모델로 주목받는다.
일본은 나가사키 이사하야만을 중심으로 수문 개방에 따른 지하수 염분 상승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밀 관개, 수위·염도 통합관리, 드론·자율주행 농기계 기반 스마트 재배체계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새만금을 비롯한 서남해 간척지에서 식량·원예 적합 품종을 선발하고, 조사료 생산과 노지 스마트농업 실증을 통해 디지털 기술의 현장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간척지는 식량안보-스마트혁신-생태복원을 아우르는 종합 플랫폼으로 전환 중이며, 농생명 연구단지와 재생에너지 융합단지가 대표적 사례다.
무엇보다 국내 간척지 농업환경 변화에 대한 장기 모니터링과 작물안정생산 기술개발이 중요하다. 규모화와 첨단 기계화를 바탕으로, 노지·대규모 첨단 시설원예 스마트팜과 경축순환형 친환경 축산기술개발은 지속 가능한 간척지 농업의 핵심 기반이며, 간척지를 미래 융합농업의 시발점으로 인식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앞으로 간척지는 기후 적응, 식량안보, 재생에너지, 관광, 수출농업이 융합된 미래형 플랫폼으로 발전할 것이다. 핵심은 ‘규모 확대’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활용’이며, 이를 위해 농업·환경·에너지·산업이 연계된 융합 연구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간척지는 지속 가능한 국토 활용과 미래 농업의 전략적 거점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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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9-1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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