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박은희 - 2025년 09월 28일 14시18분
[월요아침]지방의료원, 주민의 생명을 지키는 ‘국가 인프라’로 재정의되어야
시장 논리로 접근할 수 없는 농촌 지역 기초의료의 중요성국가와 지자체가 협력해 기초의료의 공백을 책임있게 채워야
전북 내 의료원의 상황은 그 단적인 사례다. 무주, 장수, 임실, 순창은 전국 최고 수준의 고령화율을 보이고 있으나, 거점 의료기관의 기능은 매우 제한적이고 열악한 상황이다. 혈액투석조차 불가능하며, 뇌졸중이나 응급환자 진단에 필수적인 CT 장비 등도 갖추고 있지 못한 곳이 있을 정도다. 주민들은 혈액투석을 위해 매주 수십 킬로미터를 오가야 하고, 뇌출혈 환자는 ‘골든타임’을 놓친 채 대도시 병원으로 이송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고령의 농촌 주민들에게 이러한 현실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생명과 직결된 위기다.
문제의 핵심은 기초의료의 공백을 국가가 어떻게 메울 것인가에 있다. 의료는 시장 논리만으로 접근할 수 없는 대표적인 공공재다. 그러나 현재 지방의료원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이는 곧 재정 여력이 부족한 농촌 지역일수록 의료 수준이 낙후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낳는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적했듯, “지역 주민의 생명과 건강은 국가가 직접 책임져야 할 영역”이라는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
첫째, 국가 차원의 필수의료 보장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필수의료 국가 책임제’가 선언적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농촌·산간 지역 의료원에 대한 직접 재정 지원과 인력 파견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특히 의료 기초과목을 담당할 전문의 인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공중보건의 등이 일정 기간 이상 공공의료기관에서 근무하면 실질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둘째, 장비 확충과 응급의료 체계를 국가가 주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CT, MRI 같은 기초 영상장비조차 없는 보건의료원은 주민에게 최소한의 진단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다. 이는 의료 서비스 격차를 넘어 인권 문제다. 중앙정부가 전국 단위로 기초의료 장비 보급 표준을 정하고, 농촌 의료원에 우선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셋째, 원격의료와 이동진료 체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의료 인력 부족을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디지털 헬스케어와 원격 진료, 공공 이동진료차량을 병행하여 ‘찾아가는 기초의료’를 제도화해야 한다. 고령자가 많은 농촌은 스마트폰 활용에 한계가 있으므로, 보건소와 마을회관 중심의 원격진료 거점 구축이 효과적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방의료원을 단순한 ‘적자 기관’이 아니라 주민의 생명을 지키는 ‘국가 인프라’로 재정의해야 한다. 도로, 교량, 통신망이 국가 기반 시설이듯, 지방의료원 또한 국가 책임의 필수 공공재라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소멸 위기에 놓인 농촌의 공공의료 현실은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농촌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이다.
의료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농촌 주민들이 혈액투석을 받기 위해 도시로 이동하는 고통을 더 이상 감내하지 않도록, 국가와 지자체가 협력해 기초의료의 공백을 책임 있게 채워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임시방편이 아닌 구조적 전환이며, 이는 국가가 책임을 회피해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양성빈(전 전북자치도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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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9-2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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