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박은희 - 2025년 10월 14일 09시37분
에티오피아항공 수하물 사태, “내일 온다”던 약속은 거짓이었다
-국내 기업 피해 확산… 본사 ‘침묵’, 소비자 “한국은 봉인가” 분노 확산
항공사 측은 “비즈니스석이니까 내일(10월 12일) 무조건 도착한다”고 장담했으나, 사흘이 지난 현재까지도 수하물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는 업무상 미팅을 취소하는 등 실질적 피해를 입었고, 항공사 본사는 끝내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4시, 인천공항 제1터미널 도착 수하물 구역. 아디스아바바발 에티오피아항공 여객기에서 수하물이 인계되지 않았다. 피해 승객은 즉시 수하물 사고 보고서(PIR)를 작성했으며, 당시 현장 직원은 “비즈니스석 승객의 수하물은 다음날 반드시 도착한다”고 확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 해당 수하물은 확인되지 않았고,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5시, 피해자는 인천공항 내 에티오피아항공 수하물팀(조업사)에 연락을 시도했다. 피해자는 한국지사 또는 본사 연락처를 요청했으나, 조업사 측은 “직접 연락은 불가하며 이메일로만 클레임을 접수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오후 6시 30분, 피해자는 정식 항의 메일을 발송했으나, 에티오피아항공 본사로부터는 어떠한 회신도 받지 못했다.
12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피해자는 조업사 측과 총 4차례 통화했으나 상황은 진전되지 않았다. 조업사 측은 “현재 수하물의 위치를 파악 중”이라며 “카이로와 아디스아바바 공항 측에 이메일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선 연락이나 실질적 조치 없이 “절차상 이메일로만 대응한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결국 피해자는 12일 오후 7시, 분실품 상세 목록을 추가로 제출했지만 수하물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이 과정에서 조업사 측의 안내 내용도 모순을 보였다. 12일 오후 8시 43분, 피해자에게 전달된 이메일에는 “내일 도착을 안내한 적 없다”는 문장과 함께 “서울 주소라 오늘(10월 12일) 도착으로 안내했다”는 문장이 함께 기재돼 있었다. 하루 차이의 착오를 넘어,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대응이었다. 피해자는 “분실보다 더 심각한 것은 책임 회피”라며 “거짓을 덮기 위한 또 다른 거짓이었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수하물에는 단순한 개인 물품이 아닌 기업 간 미팅에 필요한 샘플, 제안서, 홍보자료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로 인해 13일 오전 예정돼 있던 거래처 미팅이 취소되며 일정과 신뢰가 동시에 무너졌다.
피해자는 “수하물 한 개가 아니라 계약 기회 하나를 잃은 셈”이라며 “단순한 불편이 아닌 실질적 피해”라고 토로했다.
에티오피아항공은 비즈니스석 수하물에 ‘프라이어리티(우선처리)’ 태그를 부착하지만, 해당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RFID(무선주파수식별) 기반의 추적 시스템이 도입된 인천·카이로·아디스아바바 세 공항은 모두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지정한 허브공항이다. 기술적으로 실시간 추적이 가능한 환경임에도 항공사는 사흘이 지나도록 수하물의 위치조차 특정하지 못했다.
항공정책 전문가 F씨는 “조업사는 조회 권한이 제한돼 있고, 실제 추적 데이터는 본사만 열람할 수 있는 구조라면 국내 대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기술은 충분하지만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라며 “에티오피아항공이 한국 노선을 단순 수익선으로만 인식하고 있다면, 동일한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며칠이 지난 후, 조업사 측은 피해자에게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짧은 사과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재발 방지 대책이나 보상 절차는 언급되지 않았다. 에티오피아항공 본사 또한 어떠한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피해자는 “이건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명백한 무시”라며 “한국 승객이기 때문에 가능한 대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항공정책 전문가 F씨는 “외항사들이 한국 시장을 매출 중심으로만 인식하고, 문제 발생 시 책임은 본사로 떠넘기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며 “국내 감독당국이 이 같은 사각지대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항공산업 관계자는 “한국 소비자를 상대로 한 외항사의 대응은 여전히 이중 잣대가 존재한다”며 “유럽·미국 구간에서는 보상 절차가 신속히 진행되지만, 아시아 노선에서는 무대응이 빈번하다”고 밝혔다.
비즈니스석 승객조차 이런 대우를 받는다면 일반 승객은 어떻겠느냐는 불안도 커지고 있다. 항공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항공권 가격은 인상되는데 서비스는 후퇴했다”, “외항사는 한국 승객을 고객이 아니라 통계로 본다”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을 봉으로 본다’는 비판 여론이 빠르게 번지고 있으며, “이중잣대식 운영을 멈추라”는 항의 댓글도 급증하고 있다.
소비자권익연구소 관계자는 “한국 시장에서는 피해가 발생해도 본사가 직접 대응하지 않는다”며 “한국 소비자가 상대적으로 대응이 약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태도가 지속된다면 신뢰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항공서비스 피해 접수 건 중 외항사 관련 민원 비율은 전체의 40%를 넘는다. 그러나 실제로 행정 제재로 이어진 사례는 2%에도 미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국내 감독기관이 외항사의 영업행위를 관리·감독할 법적 근거가 미비한 데다, 항공사 본사가 해외에 있어 제재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항공정책 전문가 F씨는 “한국 소비자를 상대할 때만 규정이 느슨해진다”며 “같은 사례가 유럽에서 발생했다면 즉시 보상이나 수하물 추적이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중 잣대의 피해를 가장 크게 보는 건 결국 한국 소비자”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수하물 분실이 아니라, 외항사의 책임 회피가 국내 기업의 피해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확신에 찬 약속은 거짓으로 드러났고, 그 결과는 한 기업의 신뢰 붕괴로 이어졌다.
항공사는 거짓 안내를 했고, 조업사는 책임을 회피했으며, 본사는 끝내 답변하지 않았다. 한국소비자를 상대로 한 문제 제기에, 에티오피아항공 본사는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침묵은 사과보다 더 깊은 무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항공정책 전문가 F씨는 “외항사가 한국을 단순 시장으로만 보는 한, 유사한 피해는 반복될 것”이라며 “국토교통부 등 관계 기관이 국제협약에 따른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소비자가 외항사 본사와 직접 분쟁을 진행해야 하는 현재 구조는 불합리하다”며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에티오피아항공 수하물 사태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사흘이 지났지만 수하물의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고, 항공사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확신에 찬 안내로 시작된 거짓말은 결국 기업의 피해로 이어졌다. 비즈니스석 승객의 피해로 시작된 이번 사건은, 한국 소비자 전체가 겪고 있는 불평등한 현실을 상징한다. 에티오피아항공은 지금이라도 책임을 인정하고, 한국 소비자 앞에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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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10-1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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