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기사 작성: 박은희 - 2025년 10월 21일 16시07분

['어쩌다 농부'의 인생삼락]‘더덕마니’ 체험 계기로 아침 등산 20년

⑥귀농귀촌 체력 키우기

어머니 작고 직후 산더덕 채취때부터 시작
‘영하 10도 이하’날 빼고 1년 사계절 실천
체력과 면역력 향상 … 귀산 자신감 가져

나는 아침마다 산에 오른다. 올해로 20년째 빼놓지 않는 일과이다. 1년 열두 달 4계절 내내 빼놓지 않고 나의 하루는 아침 등산으로 시작된다. 겨울철 기온이 영하 10°C(5년 전까지는 영하 15°C) 이하로 내려가거나 봄철 황사가 심한 날 외에는 예외가 없다. 지방이나 해외출장을 가서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산이 없으면 공원이나 도심이라도 걷는다. 혹시 지방에서 집으로 귀가하는 날엔 집에 도착하자마자 무조건 산부터 다녀온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내가 그렇게 정해놓고 실천한다. 그걸 빼먹는 날은 하루 종일 찜찜하다.

나는 본래 등산을 싫어했다. 힘들고 지루하고 재미라고는 전혀 없는 노동이나 다름없었다. 테

니스나 탁구, 볼링처럼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니 고행일 뿐이었다.

청계산 겨울 산행 중 만난 눈꽃이 화려하고 신비롭다. 내가 평생 만난 어느 꽃보다도

아름답다. 내가 과천에 사는 13년간 매봉에 오르며 경험한 가장 화려한 산행이었다.

그런 나를 산으로 이끈 건 고교와 대학동문 후배이다. 대학때 기숙사에 같이 있으면서 꽤나 친했던 그 후배는 사법고시 합격후 검사 부임 직후에 만난 후 10년 넘게 연락이 끊겼다. 그런데 10여년만인 2006년 5월 중순 우연히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만난 것이다. 후배는 근처 커피숍에서 얘기하던 중 갑자기 가방을 뒤적이다가 나에게 더덕 몇 뿌리를 건네주었다.

“내가 엊그제 산에서 캔 더덕인데요. 들어보시죠~”

후배는 2, 3년 전부터 주말마다 산으로 더덕을 캐러 다닌다고 했다. 그 동안 산삼도 열 네 뿌리를 캤다고 했다. 참 특이한 취미였다. 나는 한참동안 그의 얘기를 듣고 그 주말에 동행하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시작한 첫 산행이후 산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왜 자연인이 되려는지, 또 많은 사람들이 자연인을 동경하는지, 몸으로 알게 됐다. 처음엔 진달래 잎과 더덕잎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했던 나는 점차 약초를 구분하고 그걸 직접 캐내면서 산의 참맛을 알았다.

사실 그 즈음 후배와 나는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니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배는 검사로 임용된 후 능력을 인정받으며 잘 나가던 순간,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그 사연이 안타깝고 속상했다. 술을 엄청나게 좋아했던 후배는 밤늦게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도중에 택시기사와 요금시비가 붙으며 사단이 났다. 후배 얘기에 따르면 바가지요금을 요구하는 택시기사를 경찰서로 데려가 검사 신분을 밝히고 조사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워낙 취한 상태라 양해를 얻고 경찰서 한켠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나와보니 자기가 운전기사를 폭행한 피의자가 돼 있었다. 또 화가 나서 손으로 책상을 내려쳤는데 유리가 깨지면서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린 검사가 돼버렸다. 심지어 이런 내용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대검에서 조사를 했고, 경고 결정이 나자 사표를 내버린 것이다. 시골에서 어렵게 공부하여 자리잡은 후배가 그때 느꼈을 좌절과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 탈출구가 주말에 한번 산속에 들어가 자연인으로 생활하는 것이었다. 나 또한 그 시기가 내 일생일대에 가장 힘든 시기였다. 1년 전에 소중한 혈육이 세상이 뜨고 이어서 몇 달 후 항암투병중이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충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동병상련의 처지에서 자주 만나고, 서로 힘이 되어 주었다. 우리는 매주 토요일 저녁에 만나 시외버스를 타고 내려가 현지 지인의 집에서 숙박한 후 다음날 새벽에 산으로 올라가 해질 무렵에 내려왔다. 그때만 해도 웬만한 시골 산에는 더덕이 꽤 많았다. 아주 깊은 산속이 아니더라도 조금만 들어가도 하루에 평균 30~40뿌리 정도는 캘 수 있었다. 멀리서 더덕잎이 보이면 그게 가시덤불이든 낭떠러지든 기어코 올라가고, 그것을 캐내는 동안만큼은 어떤 시름도 잡념도 번뇌도 없었다. 잔대 도라지 등 약초와 곰취, 목이버섯 능이버섯 등도 구분하고 채취하는 방법을 배웠다.

네 잎 클로버처럼 네 방향으로 예쁘게 펴진 더덕잎을 발견하는 순간의 환희, 조심스럽게 뿌리를 손에 넣을 때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루 10시간 정도를 산 속에서 보낸 후 버스에 오르면 기분 좋은 피곤함이 밀려온다. 이러한 느낌은 일에 찌들려서 오는 피곤함과는 전혀 다르다. 오염되지 않은 숲속에서 하루 종일 지내다보면 머릿속은 맑아지고 온몸의 피부는 부드럽고 촉촉해진다. 산림욕의 효과이다. 우리는 매주 산속을 돌면서 1주일간 견딜 수 있는 힘을 충전했던 것 같다.

캐온 더덕은 밤새 씻어 정리하여 술을 담거나 작은 것은 그대로 먹었다. 자연산 더덕 향은 매우 진하여 하나만 까도 온 집안이 더덕냄새로 진동한다. 작은 뿌리 하나를 잘라서 소주병 넣으면 더덕주가 되었다.

나는 주말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산속이 그리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과천 집 근처 청계산 매봉(369m)에 오르기 시작했다. 시골 산속의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았다. 1시간 남짓 산에 다녀오면 우선 기분이 상쾌하고 밥맛이 좋았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날 하루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처음엔 나 스스로도 며칠이나 실천할지 몰랐으나 1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넘으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그렇게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면서 체력과 면역력도 좋아졌다. 겨울철 평소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그해부터 내복을 입지 않았다. 감기도 잘 걸리지 않고 혹시 감기기운이 있더라도 금방 회복되었다.

깊은 산속에서 이런 더덕잎을 만나면 정말 반갑고 기쁘다. 더덕은 이처럼 비탈을 타고 오르거나 나무를 감고 오르기도 한다.

나의 더덕마니 체험은 이듬해에 몇 차례 이어지기는 했지만 서서히 줄어들었다. 아무래도 산속을 혼자서 돌아다니는 게 위험다고 주변에서 말렸기 때문이다. 더덕 산행은 끝났지만 아침 등산은 습관으로 자리잡았다. 매일 같은 코스의 산길이지만 사계절이 변화하면서 풍경이 미묘하게 바뀌고 그것을 보면서 세월의 흐름을 느꼈다. 오며 가며 만나는 동네 어른들과 인사하고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거의 매일 만나는 분 중에는 아이의 초등학교 친구 할아버지도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자랑삼아 매봉에 3,000번쯤 올랐다고 하니 그분은 1만번쯤 된다고 하였다. 농림부 공무원이었던 그분은 과천청사로 출근하면서 차관으로 퇴직할 때까지 30년 가까이 하루도 빠짐없이 매봉에 다녀온 것이다.

2018년 아파트 재건축을 앞두고 평촌으로 이사한 나는 한동안 아침 등산을 하지 못했다. 과천처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산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이다. 13년간 매일같이 다니던 산을 갈 수 없으니 너무 답답하고 좀이 쑤셨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산은 관악산(집에서 3.7㎞ 거리), 수리산(3.1㎞), 모락산(2.9㎞) 등이었다. 이 가운데 그래도 가깝고 접근하기 좋은 모락산을 골라서 자전거로 왕복했다. 모락산은 해발 385m로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산세가 예쁘고 아기자기하면서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전망이 아주 좋다. 정상에 올라서면 인근 의왕과 안양, 과천 일대가 한눈에 다 보인다. 때문에 한국전쟁 당시에는 국군·유엔군과 인민군· 중공군이 치열한 고지전을 벌였던 격전지였다. 특히 모락산 전투에서는 국군이 중공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어 안양일대를 확보하는 교두보가 됐던 현장이다. 산정상에는 고인돌과 돌탑 등 볼거리도 있어서 심심치 않다. 왕복 2시간이 걸리지만 하루중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다.

고행처럼 여기던 산행이 어떻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었을까. 뇌과학에는 뇌의 가소성(可塑性)이라는 개념이 있다. 본래 가소성은 물리학에서 어떤 재료에 힘이 가해졌을 때 변형이 생겼다가 힘이 사라져도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 성질, 즉 영구적인 변형이 유지되는 걸 의미한다. 뇌의 가소성은 뇌가 고정된 기관이 아니라 경험, 학습, 운동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회로를 만들고 기존 회로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엔 귀찮고 힘든 운동이라도 동기가 확실하고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뇌가 훈련을 통해서 회로를 형성하고 그렇게 하도록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 나의 경험칙으로도 정확히 들어맞는 얘기이다.

요즘에야 깊은 산속으로 자연인 체험을 하러 갈 기회도 없고 국유림이건 사유림이건 엄격한 관리를 하고 있어서 더덕마니 활동이 어렵지만 가끔씩 호젓한 산길로 갈 일이 있으면 혹시나 더덕이 있는지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그때의 추억이 그만큼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어려운 시기에 더덕마니 활동을 계기로 시작한 아침등산은 건강과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귀산귀촌을 실행할 수 있는 확실한 동기와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최진환(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