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박은희 - 2025년 10월 29일 16시06분
[온누리]화재로 드러낸 국가 전산망의 허상, 이중화 없는 디지털 행정은 모래성이다
이처럼 많은 서비스가 중단된 가운데, 우리의 행정체계가 ‘IT 강국’이라는 자부심 이면에 얼마나 불안정하게 구성되어 있는지가 드러났다. 사건의 본질은 단순한 화재가 아니다. 한 지점의 사고가 정부 전체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는 단일 장애점(Single Point of Failure, SPOF) 구조가 여전히 우리의 전산망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단일 장애점은 시스템의 한 구성 요소가 고장 나면 전체 시스템이 중단되는 것인데, 이는 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치는 위험 요소로 이러만 문제 해결을 위해 백업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중요 구성 요소를 분산하는 등의 이중화 또는 중복성을 확보해야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제도적·문화적 문제다. 사고 직후 정부는 피해 규모나 복구 진행 상황을 “조사 중”이라는 말로 미루었고, 구체적 내용은 제한적으로만 공개했다. 하지만 ‘보안상 이유’라는 명분은 사고 원인의 은폐 혹은 책임 회피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적 사고일지라도 국민이 보는 행정 시스템은 안전성과 투명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이번 사고로 우리는 다음 세 가지 방향에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강한 교훈을 얻었다.
첫째, 실질적 물리적·논리적 이중화 체계 구축이다. 단순 백업이 아니라, 정부 시스템이 운영 중단 없이 대체 가능한 분리된 지역의 전산센터, 독립 전력망, 독립 냉각망, 독립 통신망을 갖춰야 한다. 예컨대 지하 공간만이 아닌 완전히 다른 지리적 위치에 대체 시스템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둘째, 재해복구 및 안전관리 의무화 제도 강화이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같은 법률이 이미 존재하지만, 이번처럼 실제로 대형 중단사고가 일어났을 때 실무 점검·모의훈련·복구능력 검증이 부족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앞으로는 재해복구훈련을 정기적·실전형으로 의무화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며 미준수 시 제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민관 통합 협력 및 책임의 명확화이다. 정부만의 폐쇄적 시스템 운영에서 벗어나, 민간 클라우드·보안기업·전문가와의 상시 협력 구조를 제도화해야 한다. 또한, 사고 발생 시 책임이 어디로 귀속되는지를 명확히 하고, 조사 및 복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국정자원관리원의 화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경고였다. ‘디지털 전환’의 화려한 외양 뒤에 숨겨진 구조적 허점을 우리 스스로 일깨운 것이다. 이제는 보여주기식 ‘IT 강국’이 아니라, 위기에도 멈추지 않는 ‘안전한 디지털 강국’으로 거듭나야 한다.
/강윤정(교수·원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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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10-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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