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12월 07일 10시01분
최진희, 전주향교 앞 갤러리 한옥에서 여섯 번째 개인전
이는 ‘고요한 시선’을 통해 존재의 기쁨을 발견하는 여정이다. 우리는 매일 바쁘게 살아가지만, 이 전시는 잠시 멈춰 서서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지구라는 무대와 그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조용히 바라보도록 독려한다.
작가의 그림들은 바로 이 ‘고요한 응시’를 통해 포착한 시간의 흔적과 존재의 기쁨에 대한 기록이다. 작업에서 시간의 흐름은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두껍게 겹겹이 쌓아 올린다. 이 두꺼운 물감 층은 수천 년 동안 쌓인 지층(地層)처럼 시간의 무게와 흐름을 담고 있는 물질이다.
대표작인 'Three Faces' 시리즈에서 유화 마티에르 사이에 마른 꽃잎이나 식물 조각을 삽입한다. 이 마른 꽃잎은 한때 생명력을 가졌으나 이제는 유한해진 존재이다. 그러나 이 유한한 물질을 영원히 지속될 듯한 물감 속에 고정시키는 행위는 사라지지 않는 순간, 즉 영원성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나의 회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남긴 흔적을 물질화하고 기록하는 매체이다.
예술적 탐구는 보이는 현상 아래 숨겨진 ‘보이지 않는 관계의 힘’에 집중된다. 꽃 한 송이가 피어나기 위해서는 햇빛, 물, 중력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관계와 에너지의 흐름이 필요하다. 이 보이지 않는 관계망이 모여서 비로소 눈에 보이는 '존재'를 이룬다.
그림 속의 거친 질감, 흘러내리는 듯한 무늬, 색깔들의 경계는 바로 숨겨진 에너지와 관계망의 역동성을 표현한다. 평론가 역시 이 점을 명확히 보았다.
"시간과 공간, 존재했다는 발자취가 흐르고 흘러 유기적 물질이 되는 순간을 맞이 한다. 그리고 식물은 늘 우주적 기운을 나타내고 있다"
결국, 작품 속의 식물과 풍경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우주적인 힘이 어떻게 이 세상 만물을 이루고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이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작은 평면위에 광의적 의미를 표현하여 한계와 유한함을 나타낸다.
결국 'Placid look'은 이 모든 자연 현상과 존재의 결을 향한 고요하고 평온한 응시의 결과이다. 작품은 관람자들이 잠시 멈춰 서서, 일상 속에서 놓치기 쉬운 미세한 순간의 아름다움을 다시 마주하도록 유도한다.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인위적인 간섭을 거두었을 때 드러나는 자연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겸손하게 기록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의 근원적인 기쁨을 함께 발견하는 것이 이 전시의 궁극적인 목표이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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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12-08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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