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12월 22일 08시07분
상상의 시학 혹은 사유학
[책마주보기]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김혜영)
공간에 대해 다채롭게 사유한 바슐라르가 주목한 곳은 집 안의 좁은 공간들이다. 다락, 지하실, 서랍, 상자, 벽장 같은 곳을 인간의 상상이 자라는 토양이라고 본 것이다. 다락이 상승의 이미지로 꿈과 희망을 현상한다면, 지하실은 하강의 이미지를 내포하면서 무의식과 두려움의 공간으로 나타난다. 더하여 서랍과 상자 등 열림과 닫힘의 메타포를 지닌 공간은 내밀한 상상의 공간으로 인식한다.
바슐라르에 따르면 집이라는 공간은 수직과 수평, 열림과 닫힘 등의 리듬을 품은 하나의 심리적 지도인 셈이다. 집이 겨울의 공격을 받을 때에 내밀함의 가치가 커진다는 보들레르의 말 역시 심리적 언급으로 상상력과 연결된 것이다. 보편적으로 집이 지닌 안온한 이미지 이외에도 존재를 존재하게 만드는 최초의 공간이자 작은 우주로서의 집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특히 바슐라르는 성서 속 요나가 고래의 뱃속으로 들어간 이야기를 인간의 원형적 경험으로 파악한다. 모태 속에 있을 때 무의식 속에 형성된 이미지로서, 다락이나 서랍과 같은 내밀한 공간에서 인간이 안온함과 평화로움을 느끼는 것은 이 요나 콤플렉스 때문이다.
흔히 회피나 퇴행으로 오해하기 쉬운 이 감정을 바슐라르는 상상력의 기원으로 끌어올린다. 따라서 요나 콤플렉스는 도피가 아닌 보호받고 싶은 본능이며, 다시 시작하기 위한 잠복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세계로 나아가야 하지만, 동시에 세계로부터 물러날 은신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집 안의 가장 안쪽 공간, 닫혀 있을수록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구석과 서랍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마련한 통로다. 바슐라르는 이 은폐된 공간들 속에서 상상력의 원형이 태어난다고 본다.
이러한 상상의 원형은 시인의 상상과 이미지 생성에 관련이 있다고 보는데 그는 이미지 그 자체의 힘을 언급한다. 시적 이미지는 설명을 요구하지 않으며 그것은 독자의 내면에서 즉각적으로 울리고, 각자의 기억과 결합하며 새로운 공간을 생성한다. 이는 ‘이미지의 현상학’으로서 세계를 해석하기 이전에 세계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바슐라르의 사유는 과거의 향수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공간론은 파편화된 세계 속에서 혹은 시인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내밀한 공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때 공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우리 안에 숨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책은 상상력을 기제로 공간에 대한 보편적 인식에서 벗어난 상상의 시학 혹은 사유학이라 할 수 있겠다.
김혜영 작가는
2018년 ‘수필과비평’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부안학생교육문화관 공감독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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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12-23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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