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0년 11월 15일 15시51분
“가마를 타고 월고리 봉수대를 올랐다. 누대 앞에 다섯 봉우리의 봉화대가 늘어서 있었다. 누대에 올라서니, 위도와 칠산 바다가 보였다. 고기잡이 배들이 점 같이 멀리 보이고 넓고 푸른 바다가 하늘에 닿을 듯 끝이 없었다”
옛 자료에서 전북을 만나다:강세황의 ‘격포유람기’와 ‘유우금암기’1770년 5월, 부안 월고리 봉수대를 찾다
'마침 정읍의 수령으로 있던 친구 임성여(任聖與)가 부안으로 찾아와서 함께 격포를 유람하게 됐다. 가마를 타고 월고리 봉수대를 올랐다. 정상은 야트막한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문에 들어서니 누대 앞에 다섯 봉우리의 봉화대가 늘어서 있었다. 누대에 올라서니, 위도와 칠산 바다가 보였다. 고기잡이 배들이 점 같이 멀리 보이고 넓고 푸른 바다가 하늘에 닿을 듯 끝이 없었다.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있자니 황홀하고 몸이 신선이 되어서 구름 밖에서 높이 나는 것 같았다'
이는 '격포유람기(遊格浦記)'에 자세히 기록됐다.
‘해창은 변산 바깥에 있다. 그 앞이 포구와 가까웠다. 포구 밖의 기이한 봉우리는 뽀쪽하기가 바짝 세운 붓과 같았다. 중국 유종원(遊宗元)이 지은 '바다 위 뾰쪽한 산 칼날과 같네’ 라는 시조를 읊조리며 유주의 산수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만조라 물이 점점 불어나 앞길이 물결에 잠겨 있어서 나아가려 해도 갈 수가 없었다'
'바다 위 뾰쪽한 산 칼날과 같네’ 는 싯구는 ‘與浩初上人同看山寄京華親故(여호초상인동간산기경화친고), ‘호초스님과 함께 산을 바라보다가 장안의 친구에게 시를 부치다’에 나온다.
海畔尖山似劍芒(해반첨산사검망): 바닷가 뾰족한 산은 칼끝과 같아서
秋來處處割愁腸(추내처처할수장): 가을이 오니 곳곳에서 애간장을 끊어놓네.
若爲化作身千億(약위화득신천억): 만약에 이 몸이 천억 개로 변할 수 있다면
散向峰頭望故鄕(산상봉두망고향): 흩어져 봉우리마다 올라가 고향땅을 바라보리...
강세황은 그의 아들 강흔이 부안현감으로 있을 때 직접 변산을 돌아보고 그의 ‘표암유고(豹菴遺稿)’에 ‘유우금암기(遊禹金巖記, 울금바위유람기)’와 ‘유격포기(遊格浦記, 격포유람기)’를 남겼다.
이로 인해 18세기 부안을 배경으로 남긴 유일한 실경산수화인 ‘우금암도(미국LA 카운티미술관 소장)’가 2013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눈길을 끌었다. 일반인에게 처음 공개된 ‘우금암도’는 강세황이 아들 완이 부안현감으로 재임(1770.8~1772.1)하던 당시 이틀에 걸쳐 부안의 변산 일대를 유람하며 그린 산수화다.
‘우금암도(禹金巖圖, 지본수묵, 25.4×267.34㎝)’는 강세황이 그림과 함께 적은 글은 ‘표암유고’의 ‘유우금암기(遊禹金巖記)’에 동일하게 수록되어 있다.
변산 특유의 암산(巖山)의 분위기를 굵은 갈필(渴筆)로 표현, 명승지를 지나며 빠른 필치로 각 장소의 특징을 사생한 작품으로, 당시 화가들이 즐겨 그리던 지역이 금강산이 아닌, 전북 부안 일대를 그린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강세황은 “진경산수는 그곳을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속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그림”이라 생각했고, 그런 면에서 시보다는 기행문이, 기행문보다는 그림이 낫다고 믿었다. 또, 겸재 정선(1676~1759)이 금강산을 현장의 구별 없이 일률적인 기법으로 그려냈음을 비판하는 대목에서는, 화법에 얽매이지 않고 현장을 꾸밈없이 그대로 사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같은 측면에서 ‘우금암도’에서 보이는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운 구도와 묘사는 그러한 강세황의 생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강세황이 영조의 당부를 듣고 절필을 선언했던 기간 중에 그려진 작품이면서, 금강산처럼 즐겨 그리던 지역이 아닌 전북 부안 일대를 유람하며 남긴 유일한 실경산수화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아들 완이 부안현감으로 재임한 시기를 고려해 보면, 1770년 2월 혹은 이듬해 2월에 여행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설명이다.
그림의 구성은 이동 경로에 따라 우금암(禹金巖)→문현(文懸)→실상사(實相寺)→용추(龍湫)→극락암(極樂庵)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우금암과 문현 사이의 장면은 지명이 적혀 있지 않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우며, 극락암은 현재 남아 있지 않고 주변 기록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장소이다.
우금암은 부안 상서면 감교리에 위치한 우금산(329m)의 정상부를 이루는 바위로 그 아래에는 천년 고찰 개암사가 있다. 울금바위는 부안의 변산(邊山)을 찾았던 방외지사(方外之士)들이 반드시 들렀던 영지(靈地)였다.
조선시대 후기 시·서·화에 뛰어나 ‘삼절(三絶)의 예술가’로 불린 그가 부안 직소폭포 일대 절경을 놓칠 리 없었다. 그는 현장을 먹으로 유희하듯 빠른 필치로 꾸밈없이 풀어냈다. 직각으로 가늘게 쪼개진 암산 벽의 무늬가 마치 비단처럼 보인다.
다음은 ‘유우금암기(遊禹金巖記)’다.
‘부안현의 서문을 나와 서쪽으로 십여 리를 가면 돌밭이 아득히 뻗쳐있고, 왼쪽으로 먼 산이 하늘가에 보일락 말락 하는데 이곳이 고부, 정읍 등지이며, 오른쪽으로 이은 봉우리가 끊임없이 서려 있어 그 형세가 웅대하고 수려하니 이게 변산이다. 산의 동쪽자락에는 동림서원(東林書院)이 있고, 또 얼마를 가면 들 가운데 평평한 언덕이 있고, 거기에 수백 그루의 소나무가 나 있는데 이곳에 유천서원(柳川書院이 지점이라면 개암사 입구 청등마을에 있는 청계서원(淸溪書院)인듯하다. 유천서원은 개암사로 가는 길에서 한참 남쪽으로 지금의 영전에 있다)이 있다. 또 거기서 십여 리를 가면 오른쪽으로 변산의 입구를 들어가는데 얼마동안 꺾어 들어가면 솔밭사이에 큰 가람이 있는 데 바로 개암사다. 절에 들어가 우러러 쳐다보니 절 뒤엔 만장(萬丈)의 높은 봉우리가 하늘의 구름을 꿰뚫고 서 있고, 봉우리 위엔 바위 셋이 서 있는데 높이가 모두 백여 장이나 되어 보였다. 가마를 타고 올라가니 바위 밑에는 굴이 있는데 크기가 백 칸 집 같았고, 길이도 수십 장쯤 되는데 벽 무늬가 가로 세로로 되어 마치 무늬 있는 비단 같았다. 이것을 우진굴(禹陳窟) 또는 우금굴(禹金窟)이라고 하는데, 굴 앞에는 자그마한 절이 있어 옥천암(玉泉庵)이라 편액했다. 거기서 굴을 돌아 오른쪽 재를 넘어서 수리를 가니 비로소 평탄한 길이 나선다. 좌우의 기봉(奇峰)은 응접할 틈이 없고, 맑은 물과 층암절벽은 인간세상이 아닌 듯했다. 때는 봄이건만 아직도 남아있는 잔설이 어긋어긋 깊은 숲속 그윽한 시냇물 속에 서로 비치었다. 실상사에 도착하니 절은 매우 웅장했으나 지금은 많이 헐었다. 스님이 고물을 내보이는데 오동향로(烏銅香爐), 오동구학(烏銅龜鶴), 오동양지병(烏銅楊枝甁)이었다. 그 제작이 또한 모두 기이하고 정교했다. 여기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둘러보다가 월명암이 좋다는 말을 듣고 가마를 재촉해 타고 절 뒤 높은 봉우리에 오르니 봉우리 모습은 벽처럼 서 있고, 돌길은 실낱같이 발 붙일 수가 없었다. 급경사를 오르기 한 오리쯤에 절정에 이르러 남쪽으로 바다가 보이고, 돛단배가 왕래하고, 작은 섬이 하나 보이는데 여기가 흥덕(興德) 땅이라고 한다. 북으로 꺾어 산허리를 타고 가니 녹다 남은 눈이 아직도 깊이 쌓여 정강이가 묻혔고, 그 곁으로 난 길은 매우 위태로워 천 길 낭떠러지 벼랑이어서 만약 한 발만 헛디디면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다. 월명암에 도착하니 지세는 가장 높아 큰 산을 굽어볼 수 있으나 물결치고, 구름도 끼었기에 똑똑히 다 볼 수는 없어 가던 길을 바로 되돌아와 실상사의 오른쪽으로 돌아 용추(龍湫)로 향했다. 돌길이 위태로워 월명암 가는 길보다 더욱 심하여 가마는 탈 수 없어 지팡이를 짚고 기어올라 두어 고개를 넘으니 나는 폭포가 두 벼랑사이에 쏟아지고 구슬이 튀어 그 형세가 매우 기장(奇壯)하고 바람소리 부딪쳐 서로 어울리는 소리가 숲이며 온 골을 울리고 있었다. 폭포를 따라 오르고 또 올라 산꼭대기에서 바다를 굽어보았고, 꺾어서 동쪽으로 내려오다가 또 꺾어 북쪽으로 가니, 그러니까 월명암으로부터 이십여 리를 가서야 내소사에 도착하였다. 절 뒤의 봉우리는 곧 실상사의 안산(案山)밖이었다. 절은 화재를 만나 중건되었는데 비록 장려(壯麗)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자못 정신(整新)하여 아직 모두 단청을 하지 않았다. 여기서 점심을 지어 먹고 가마를 버리고 말을 타고서 산 어귀로 나와 북쪽으로 가니 개암동구길이 다시 나선다. 해가 겨우 져서야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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