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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무형문화재]<14>전통술 명인 조정형
[0호] 2008년 04월 28일 (월) 16:52:07 김종성 기자 jau@sjbnews.com

   
  ▲ 조선시대 상류사회에서 즐겨 마시던 이가주를 상품화한 조정형씨가 소주고리를 통해 이강주의 밑술을 내리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이원철 기자  
 
"조상 대대로 이어오며 빚은 가양주야말로 백의민족의 혼이 깃든 진정한 우리의 술이라는 생각으로 민속주를 연구하고 만들어 왔습니다. 이런 나를 사람들은 '술 빚기에 미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만, 오랜 세월을 거치며 조상들의 지혜가 녹아있는 민속주가 '밀주'라는 오명 속에 사라지거나 소멸돼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이강주 재현에 매달렸습니다.수백번 내 앞을 막아선 실패와 좌절도 있었지만 전통주와 함께 한 인생이 자랑스럽습니다."

호산춘, 죽력고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명주로 꼽히는 이강주. 조선 상류사회에서 즐겨마시던 고급 약소주인 이강주를 옛 맛 그대로 현대인들이 마실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조정형(67)씨의 집념 덕이다.

조씨는 중요무형문화재 6호 이강주의 제조법을 체계화해 세계적인 명주로 만든 장본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전통주들을 연구하고 개발하는데 평생을 바쳐온 전통주의 명인이다.

이강주는 조씨의 6대조부터 집안에서 담아 마시던 가양주였다. 6대 선조때 사영하던 술 내리는 도구 토고리와 술 담는 그릇 장군총이 지금도 보전되고 있을 정도로 집안 대대로 며느리들의 손끝에서 비법이 전수됐다.

이러한 이강조 제조비법을 조씨가 전수한 것은 그가 대학에서 농화학, 특히 발효학을 전공하면서부터다.

어린시절 정성스럽게 이강주를 빚는 어머니의 어깨 너머로 제조과정을 지켜본 그는 대학 졸업 후 학교의 추천으로 당시 국내 굴지의 양조회사에 입사하면서 술과의 인연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술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그였기에 양조회사에 입사하면서부터 능력을 인정받았고, 생산부장과 연구실장, 공장장 등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최고대우를 받으며 남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던 그는 그러나 공장장 생활 25년만에 회사에 돌연 사표를 던졌다. 애주가들의 기호에만 맞추는 술이 과연 좋은 술인가 하는 회의가 문득 들면서 민속주 뿌리찾기에 나서기로 결심한 것.

   
   
"회사 동료들은 기술과 경영은 별개라며 극구 말렸습니다. 특히 '일류 기술자로 남지 술장사 하려고 좋은 직장을 버리냐'고 호통치시는 부모님과 문중 어르신들의 반대도 감내하기 힘들 만큼 거셌지만 제 결심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민속주에 인생을 걸기로 결심한 조씨는 이 때부터 옛 문헌에 나오는 향토주의 조사를 위해 전국을 누비는 술답사 여행을 다녔다.

전국의 도서관을 돌면서 민속주에 대한 문헌 자료를 수집했고, 특이한 민속주가 있다고만 하면 산골 오지나 조그마한 섬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녔다. 각지에서 채집한 민속주 200종을 연구하며 직접 빚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거듭된 실패에 가산을 탕진하고 순간 방황도 하면서 마음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포기하려는 시도도 여러번 했다고 조씨는 술회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노력은 1988년 '이강주'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1996년에 명인 칭호를 받게 되면서 결실을 맺었다. 2005년엔 대통령 설 선물로 선정돼 품질과 전통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또 1991년에는 전국을 돌며 조사,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 민속주를 집대성한 '다시 찾아야 할 우리의 술'이란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30여년 동안 모은 누룩틀, 도자기, 용수 등 요즘 쉽게 구경하기 힘든 술빚는 도구와 술잔 등 1,300여점의 귀중한 유물들은 전시관을 가득 채울 정도다.

'하면 된다'는 굳은 신념과 나는 오직 나의 길만을 가겠다는 집념 하나로 모든 난관을 극복한 조씨는 이제 민속주 제일의 맛과 매출액 최고, 수출량 1위의 자부심과 성취감을 얻은 것이다.

'이강주'를 통해 전통술 명인으로 우뚝 선 조씨는 지금도 전주시 덕진구 원동의 제1공장과, 완주군 소양면의 제2 공장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현재 미국, 일본, 중국, 호주, 태국 등 5개국에 수출하는 있는 이강주를 러시아에도 수출하기 위해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7월부터 알콜 도수를 낮춘 유리병 이강주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설비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 완주군 소양 제2공장에 마련된 '고천 주조 전시관'  
 
여기에 술 박물관을 리모델링 해 관광객과 학생들에게 개방할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계획들이 조만간 현실화되면 조씨는 그가 가장 꿈꿔왔던 두가지 일을 할 작정이다. 주조전문 특수대학과 장학재단을 건립하는 것이다.

"특수대학과 장학재단은 내 인생에 마지막 과업이기도 합니다. 이 꿈이 빠른 시일내에 현실로 다가와 대한민숙 양조기술의 메카가 되도록 할 계획이며, 남은 부분은 후학들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

한때 밀주라는 오명으로 명맥조차 잇기 어려웠던 전통주 연구에 생을 바쳐온 고천 조정형씨. 술을 인생의 반려로 삼아온 그의 삶은 그윽하고 향기로운 전통주의 향과 닮아 있다.

   
  이곳에는 조정형씨가 30여년 동안 전국 각지에서 수집한 누륵틀과 도자술병, 술잔 등 1,300여점의 희귀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이강주는>

이강주는 미황색이 도는 25도의 약소주로 배의 시원한 청량감과 더운 생강, 숙취를 보완하는 울금과 더불어 독특한 향취를 가지고 있는 계피가 어우러진 맛과 멋의 술이다. 벌꿀이 가미돼 목넘김이 부드러우며, 증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오래 둘수록 둥근 맛을 자랑한다. 마신 후에도 전혀 머리가 아프지 않다.

이 때문에 옛 선조들은 이강주의 술 색깔이 은은하고 부드러워 여름밤의 서늘한 초승달 빛으로 묘사하며 술잔 속의 여유와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이강주의 뛰어난 맛은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우선 햇밀을 거칠다 싶게 빻아 물로 고루 버무려 포로 덮은 후 곡자틀에 넣어 힘있게 밟아 단단하게 형을 뜬다.

형을 뜬 곡자는 보습이 잘 되는 곳에 놓아 실온 25도정도에서 곡자의 최고 품온이 45도가 넘지 않게 손질한다. 약 10일정도 지나면 차차 품온이 내려가게 되는데 이때는 약 30도 실온에서 7일 정도 보관하고 건조한 곳에서 14일 정도 보관한다. 이 과정이 끝난후 약 2개월 정도 저장하면 이강주에 쓸 수 있는 좋은 누룩이 만들어진다.

이어 백미로 고슬고슬하게 밥을 지은 후 식힌다. 밥이 완전히 식으면 이 고두밥과 누룩을 섞어 술을 담근다.

1주일 된 이 술을 소주고리에 넣고 전통 방식으로 소주를 내린다. 담근술을 다시 솥에 넣고 불을 지피면서 냉각수를 교환해 준다. 찬 기운과 만난 알코올증기가 액화돼, 소주고리에서 높은 도수의 소주가 떨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알코올 도수가 낮아진다.

약 35도로 내린 전통소주에 이강주의 주원료인 배, 생강, 울금, 계피를 넣고 3개월 이상 침출시킨다. 마지막으로 꿀을 가미한 후 숙성시킨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강주는 주도가 높아 오래 갈수록 맛과 향이 좋아진다. 현재 조정형씨의 이강주 제조장에서는 이러한 전통적인 제조법을 현대화해 술을 만들고 있다.

/김종성 기자 jau@sjbnews.com·사진=이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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