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유애사와 유애묘

우리나라 문화재 가운데 ‘유애(遺愛)’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은 단 3가지 뿐이다. 경북 유형문화재 제367호 합천군수 이증영 유애비(李增榮 遺愛碑), 전북 기념물 제18호 유애사(遺愛祠, 정읍), 전북 문화재자료 제57호 유애묘(遺愛廟) 등이 바로 그것이다.
유애(遺愛)는 ‘백성들에게 사랑을 베푼다’는 ‘유애재민(遺愛在民)’에서 유래한 이름이 아니 가 싶다. 합천군수 이증영 유애비(李增榮 遺愛碑)는 이증영(?∼1563)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 비석은 조선 명종 14년(1559)에 세워진 것으로, 비문을 지은 이는 남명 조식이고, 글씨는 고산 황기로가 썼다. 비문에는 1554년에서 1558년까지 합천군수를 지냈던 이증영이 1554년의 극심한 흉년에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여 구휼하고, 청렴하게 관직생활을 했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유애사는 충무공 이순신(1545∼1611)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곳이다. 이순신은 1589년(선조 22년)에 정읍현감으로 부임해 1년 반 정도 근무하다가, 전라좌수사로 벼슬을 옮겨갔다. 유애사는 이 지역 선비들이 이순신의 덕을 추모하여 세운 것으로, 백성들에게 사랑을 베푼다는 ‘유애재민(遺愛在民)’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후 임진왜란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 지역 출신 의병 유희진과 유춘필의 위패를 추가로 모시고 함께 제사지냈다. 이 유애사는 1968년(고종 5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헐린 것을 근래 다시 복원했으며, 한때 <충렬사>라 부르던 이름도 ‘유애사’로 고쳤다. 이곳을 찾는 참배객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이순신 등의 숭고한 희생정신의 참뜻을 되새기고 있다. 
유애묘는 조선시대 남원부사 김희(金凞)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김희는 백성을 다스리되 지극히 인자하였고 송사(訟事)를 처리 할 때면 그 판결이 명백할 뿐아니라 공평무사하므로 김부사의 재임기간동안 주민들은 태평가를 부르며 그의 덕을 찬양하였는데 불행하게도 김희가 중병에 걸려 죽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백성들이 뜻을 모아 이 사당을 세웠다. 김희의 덕을 기리는 제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597년(선조 30년)정유재란 때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영조 때 남원부사로 부임한 이석(李奭)이 다시 지었다. 제사는 4월에는 사당에서, 10월에는 남원 송정리 무덤에서 지낸다. 남원 용정마을에는 사직단(社稷壇)과 남원부사 김희 묘가 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6월 13일에 열리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열기기 뜨겁다. 출마자 모두가 ‘유애재민(遺愛在民)’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보기를 바란다./이종근(문화교육부 부국장)